2020년 3월 6일 금요일

이슬람, [Islam],

이슬람, [Islam],
7세기 초 아라비아의 예언자 무함마드가 완성시킨 종교.
그리스도교·불교와 함께 세계 3대 종교의 하나이다.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알라의 가르침이 대천사(大天使) 가브리엘을 통하여 무함마드에게 계시되었으며, 유대교·그리스도교 등 유대계의 여러 종교를 완성시킨 유일신 종교임을 자처한다. 유럽에서는 창시자의 이름을 따서 무함마드교라고 하며, 중국에서는 위구르족[回紇族]을 통하여 전래되었으므로 회회교(回回敎) 또는 청진교(淸眞敎)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이슬람교 또는 회교(回敎)로 불린다.

이슬람교는 아랍의 예언자인 무하마드(Muhammad : 570~632)가 만든 일신교로서, 서아시아, 아프리카, 인도 대륙, 동남아시아 등을 중심으로 6억의 신자를 갖고 있는 세계적인 종교다. 이슬람(Islam)을 직역하면 '자신의 모든 것을 인도한다'는 의미로, '유일신인 알라(Allah)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따라서 원래는 '이슬람교'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 '이슬람'이라는 말 자체가 그 종교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슬람교의 신자는 아라비아어로 무슬림(Muslim)이라고 한다. 이들은 분파 활동도 왕성하여 오늘날에는 최대 세력인 수니파를 비롯해 시아파, 알라위파, 드루즈파 등 그 사상과 주장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다.

이칭/ 별칭/ 유형/ 성격/ 설립일시/ 설립자/
회교
단체
종교
610년
무함마드(Muhammad)
1) 알라와 《코란(쿠란)》:알라는 다신교 시대부터 메카에서 최고신으로 숭배되어 왔는데, 무함마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른 모든 신을 부정하고 오직 알라만을 유일신으로 내세웠다. 알라는 만물의 창조주이며, 이와 동등하거나 비교될 존재는 없다. 모든 피창조물과는 엄격한 거리가 있으면서도 사람들의 경동맥(頸動脈)보다도 더욱 가까이 있다. 알라는 이 세상 모든 것을 주지만 아무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마음은 어디까지나 관대하고 자애에 넘쳐 잘 용서하고, 잘 들어 주고, 잘 보아 준다. 알라는 진리이며 빛이며 “동도 서도 알라의 것, 어느 쪽을 향해도 알라의 얼굴은 거기에 계신다. 골고루 존재하며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코란 2:11)고 한다.

알라의 계시를 모은 것을 《코란》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무함마드가 말한 내용으로서, 그가 죽은 뒤 신도들이 수집·정리한 것이다. 현재의 《코란》은 650년경, 제3대 칼리프인 오스만의 명을 받들어 만들어진 표준본이다. 이 경전은 이슬람의 교의(敎義)·제도, 무함마드의 생애와 사상을 알 수 있는 근본 문헌이며, 무슬림들은 이것을 독송할 때마다 법열(法悅)의 경지에 빠져 감격의 눈물을 흘릴 만큼 힘과 미를 갖춘 것이지만 그 진가는 아랍어로 된 원전에 따르지 않고는 좀체로 이해하기 힘들다.

《코란》은 무함마드에게 계시된 바를 해설이 없이 모은 것이므로, 이것을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후세 학자들이 쓴 많은 주석서(注釋書)에 의존해야만 한다. 그렇지만 이슬람의 법학(法學)·신학(神學)의 최고 근원은 역시 《코란》에 있다.

2) 이슬람의 근본신조:이 가르침의 정식 명칭은 ‘알 알이슬람’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유일 절대의 알라의 가르침에 몸을 맡긴다”는 말로서 즉 ‘귀의(歸依)’를 뜻한다. 그 가르침은 모두 명확한 아랍어로 계시되었고 무함마드도 이것을 아랍어로 전달하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알라 이외에 신은 없다”는 것이 이슬람교의 신조이며, 후에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자(라수르)이니라”가 추가되었다. 이 성구(聖句:카리마)를 외는 일은 신도의 중요한 의무의 하나로 되어 있다.

알라의 가르침을 모은 《코란》에는 믿음이란 어떤 것인가에 관하여 “믿음이란, 그대들의 얼굴을 동으로 또는 서로 돌리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란, 알라와, 최후의 날(최후 심판의 날)과, 천사들과, 여러 경전(經典)과, 예언자들을 믿는 사람이다” 라고 말하고 있으며, 이 모든 사항을 믿는 것을 ‘이만’이라고 한다.

오로지 알라만을 믿고 그 외에 아무것도 숭배하지 않으며, 예배·희사(喜捨)·재계(齋戒) 등의 근행(勤行)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만이 알라에 귀의하는 길인데, 이것을 ‘이슬람’이라고 칭한다. ‘이만’을 지닌 사람을 ‘무민’, 이슬람에 입교한 사람을 ‘무슬림’이라고 부르므로, 이것들 모두가 이슬람교 신자의 호칭이다.

3) 이슬람 신앙의 요소:이슬람 신앙을 구성하는 요소는 다음의 셋으로 분석된다. 첫째는 ‘지(知)’인데, 이것은 알라의 계시를 잘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는 ‘언(言)’인데, 마음으로 알고 또한 믿는 바를 말로 표현하는 일이다. 셋째는 ‘행(行)’인데, 이슬람교도로서의 의무(즉 5주 등)를 열심히 실행하는 일이다.

4) 오주(五柱):무슬림에게는 실행해야 할 중요한 의무 다섯 가지가 있다. 이것을 오주(아르칸 알이슬람:Pillars of Islam)라 하며, 이들 의무를 다함으로써 알라에게 봉사하는 일을 ‘이바다트(奉化 또는 勤行)’라고 한다. 《코란》에서는 희사와 단식(斷食)을 중요한 봉사로 들고 있으나, 후세에 이르러 다음의 다섯 가지를 가리키는 것이 상례로 되었다.

① 증언 또는 고백(샤하다):“나는 알라 이외에 신이 없음을 증언합니다. 또 나는 무함마드가 알라의 사자임을 증명합니다”를 입으로 왼다. 신도는 어릴 때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증언을 고백하게 되어 있다.

② 예배(살라트):일정한 시각에 규정된 형식에 따라 행하는 예배를 말하며, 개인적으로 수시로 행하는 기도는 ‘두아’라고 부른다. 예배는 하루에 다섯 번을 일출·정오·하오·일몰·심야에 하며, 특히 금요일 정오에는 모스크에서 집단예배를 행한다. 예배를 드릴 때는 반드시 메카가 있는 쪽을 향하고 행한다.

③ 희사(자카트) 또는 천과(天課):국가재정의 근간을 이루며, 비이슬람 국가에서는 선교기반이 이루어지는 데 필요불가결한 무슬림의 의무중의 하나이다.

④ 단식(샤움):성년인 무슬림은 매년 라마단 월간(月間:제9월) 주간(晝間)에 음식·흡연·향료·성교를 금하고, 과격한 말을 삼가며 가능한 한 《코란》을 독송한다. 단 음식은 흰실과 검은실의 구별이 안 될 만큼 어두워진 야간에는 허용된다. 라마단 월이 끝난 다음 새 달이 하늘에 떠오르면 단식완료의 축제가 시작되는데, 화려한 의상을 입은 군중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서로 축하하는 풍습이 있다.

⑤ 순례(하주):모든 무슬림은 매년 하주의 달(이슬람력 제12월)에 카바 신전 부근 또는 메카 북동쪽 교외에서 열리는 대제(大祭)에 적어도 일생에 한 번은 참가할 의무가 있다. 능력이 없는 자는 하주를 못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 해에 따라 일정하지는 않으나 현재도 매년 약 20만 명에 달하는 신도가 하주에 참가하고 있다. 메카 다음가는 성지는 메디나에 있는 무함마드 묘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 예루살렘의 여러 성적(聖蹟) 등이 있으며, 또 시아파(派)의 무슬림은 알리의 묘(墓)가 있는 나자프, 알리의 아들 후세인의 묘가 있는 카르발라, 이란 동부의 마슈하드 등을 순례하는 사람이 많다.

5) 교도의 일상생활:이슬람 세계는 많은 이민족을 포함하고 있어 그들은 각각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으므로 그 사회의 요소는 지극히 복잡하고 다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대한 지역에 분포하는 많은 무슬림은 하나의 형으로 통일되어 공통의 생활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것은 샤리아(이슬람법)로써 통제되어 있기 때문이며, 샤리아는 《코란》과 《하디스 Hadith》(무함마드와 그의 추종자들의 전설에 관한 서적에 사용되는 명칭)에 입각하여 제정된 이슬람법이다. 무릇, 무슬림된 자는 출생에서 사망까지 이 샤리아에 따라 생활하도록 요구된다.

인간의 행위는 5가지로 크게 나누어지는데, ① 반드시 행해야 하며 이것을 하면 보상을 받고 하지 않으면 벌을 받는 것, ② 가상(可賞)할 행위로, 이것을 행하면 보상받으나 행하지 않아도 벌을 받지 않는 것, ③ 허용된 행위로, 이것은 행하여도 보상도 없고 벌도 받지 않는 것, ④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이것은 행하여도 벌을 받지 않지만 그래도 행하지 않는 편이 좋은 것, ⑤ 금지된 것으로 이것을 행하면 알라의 벌을 받는 것이다(하람, Haram:이슬람법 용어). 예를 들어 돼지고기를 먹거나 음주하거나 하는 일은 하람 ⑤에 해당한다. 그러나 하람에 대하여는 시대와 지방에 따라 의견의 차이가 있어 약간은 허용되는 경우도 있다.

중세 이래 모스크는 교도의 생활중심이 되어 왔으나 11세기 투르크가 각지에서 지배권을 장악한 뒤부터는 오로지 예배장소로만 되고, 그 밖의 기능은 상실하게 되었다. 그러나 모스크를 생활의 중심으로 삼고, 한편으로는 샤리아에 따라 규정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이슬람교도의 일상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슬람이란 ‘절대 순종한다’는 뜻이며, 이슬람신도를 가리키는 무슬림(Muslim)이라는 용어는 ‘절대순종하는 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슬람교는 전지전능한 유일신인 알라(Allah)의 가르침이 대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무함마드에게 계시되어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유대교·기독교 등의 셈족계 제종교를 완성시킨 것이라고 주장한다.

신도 수는 세계 인구의 20%를 점하는 9억 정도이고, 국가 총인구 중 다수를 차지하여 ‘이슬람국가’라고 불리는 나라만도 43개 국에 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슬람교(Islam敎) 또는 회교(回敎)로 불리며, 6·25전쟁 때 UN군의 일원으로 참여한 터키군에 의하여 1955년 소개되어 2009년 기준으로 약 3만 5천여 명의 한국인 신도를 확보하고 있다.

예언자 무함마드는 아라비아반도 중부 메카에서 유복자로 태어나 7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할아버지와 작은아버지 밑에서 성장하였다. 25세에 부호의 미망인 하디자와 혼인하여 한때 시리아 등지에서 대상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당시 아라비아반도 주민들은 종교적으로 여러 가지 다양한 자연신과 신령을 믿는 복합적인 신앙양상을 보이고 있었고, 사회적으로도 급속한 상업경제의 발전으로 인해 많은 부작용과 갈등적 요소를 나타내고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기존의 삶에 대한 깊은 회의를 품고 사색과 명상을 계속하던 그는 40세 되던 610년 경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하느님 알라의 계시를 받은 뒤 마지막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띠고 포교에 나섰다. 이 때 알라로부터 받은 계시를 기록한 것이 『코란』이다. 그러나 보수적 전통이 강한 메카 지도층 코레시아족의 탄압으로 포교에 큰 성과를 얻지 못하고, 622년 9월 메카 북방 400㎞ 지점의 메디나로 옮겨갔다. 이 메디나행을 이슬람에서는 ‘헤지라(聖遷)’라고 부르고 이를 이슬람력의 기원으로 삼고 있다. 여기서 이주한 무하자룬(교도)과 그 지역 협력자들을 모아 최초의 움마(교단)를 조직하게 되는데, 이를 강화하여 나중에 이슬람국가로 발전시켰다. 유사 이래 처음으로 방대한 아라비아지역을 하나의 조직으로 통일한 그는 632년 6월 메디나에서 죽었다.

처음부터 하느님 앞에 완전평등을 주장한 이슬람교는 형제애를 강조하며 영적인 삶과 세속적인 삶을 연결함으로써 신에 대한 인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 및 다른 인간과의 관계까지 강한 공동체적 성격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이중적 성격의 공동체는 신의 뜻을 실현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성전(聖戰지하드)에 임하여 놀라운 성공을 이루었는데, 예언자가 죽은 뒤 한 세기도 안 되어 스페인에서 중앙아시아를 걸쳐 소아시아에 이르는 대제국이 건설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모슬렘으로 개종하는 자가 급속히 늘어갔는데, 이는 신도공동체인 움마내에서는 절대평등을 인정하나 타종교신봉자에게는 인두세를 물리는 등 공적인 차별대우를 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뒤 훨씬 더 대중적으로 이루어진 이슬람의 2차 확장은 12세기 이후 모슬렘신비주의자인 수피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들은 주로 중앙아시아, 터키, 사하라 일대의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지에 이슬람을 전파하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하였다.

그 밖에도 무슬림 상인들은 원거리무역으로 인도 동부연안과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중국 사람들을 개종하는 데에 촉매역할을 해냈다. 이슬람교는 여러 인종과 다양한 문화로 이루어져 있던 거대한 지역에 정치적·경제적·사회적인 내적 차이를 하나의 종교공동체로 포괄함으로써 일체감을 부여해주었다. 특히, 세계사에 있어서 동서대륙의 세계문화 교량역할을 담당하였고, 중세유럽 암흑기에는 그리이스·로마의 고전문명을 훌륭하게 보존하여 르네상스시대가 도래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 그러나 근대 이후 서구제국주의 세력에 대처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점차 종교적·정치적·사회적 제도간에 갈등을 빚게 되었다.

20세기 후반 식민종주국으로부터 얻은 정치적 독립을 유지하는 일과 이슬람공동체를 현대화하는 일로 인하여 서구엘리트와 종교전통고수자 사이에 많은 마찰이 발생하였다. 현재 이슬람교는 여러 가지 해결할 문제점을 지니고 있으나, 하나의 신앙체계로서 여전히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들은 모든 이슬람국가를 결속하고자 범아랍주의라는 이념을 창출하여 현재도 국제사회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슬람의 기본신앙은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그의 예언자”라는 신앙고백에서 출발한다. 또, 『코란』은 “다만 믿는 것으로 그치고, 이를 실천하지 않는 자는 무슬림일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이렇듯 실천을 강조하는 이슬람신앙은 대체로 칠신(七信)과 오행(五行)으로 요약된다.

칠신은 알라·천사·경전·사도(使徒)·내세·정명(定命)·부활에 대한 믿음이며, 오행은 오주(五柱)라고도 하는데, 신앙고백·예배·쟈카드(救貧稅)·단식·순례의 실천을 말한다. 우선 믿음을 보면 유일신 알라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근본을 이루며, 알라가 모든 생명과 죽음의 주인이라는 정명관신앙(定命觀信仰)과 신은 하나이고 무함마드는 신의 사도라는 신앙고백선언이 핵심이다. 구약에서 말하는 아담 이후의 노아·아브라함·모세·이삭·예수·무함마드는 모두 예언자로서 하느님의 사도로서 여겨진다.

무슬림들은 예수를 하느님의 사도로 존경하나, 기독교에서와 같은 예수신성, 십자가와 부활의 개념은 인정하지 않는다. 또 기독교에서의 원죄설도 부인한다. 무함마드는 최후심판의 날까지 인류사를 관장할 임무를 띠고 이 땅에 온 최후의 사도로서 종래의 모든 예언자의 활동을 보완, 완성하기 위해서 왔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믿음에 따른 다섯 가지 주요 의무가 있다. 첫째, 신앙고백을 통하여 하느님의 종임을 확인한다.

둘째, 예배는 하루 다섯 번 메카를 향하여 드리고 금요일 정오에는 집단예배를 드린다.

셋째, 자기수입의 2.5%를 세금으로 헌납하는데, 이것은 국가재정의 기본일 뿐 아니라 가난한 자를 위하여 쓰인다.

넷째, 단식으로 성년무슬림은 매년 이슬람력 아홉번째 달인 라마단기간 동안 해뜰 무렵부터 해질 무렵까지 음식·음료수·담배·성행위와 같은 일체의 본능적 행위를 억제하는 금욕생활을 행한다. 라마단월(月)이 끝나 새 달을 맞게 되면 화려한 의상을 입고 거리로 나와 성대한 축제를 가진다.

다섯째, 성지순례로서 누구나 일생에 한 번은 이슬람력 12월 9일경을 전후하여 메카순례의 의무가 있다. 하느님 앞에서 완전평등이라는 이러한 생활실천은 세계의 방대한 지역과 다양한 민족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또한 음주·간음·돼지고기·고리대금·거짓말 등은 무슬림의 계율로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현대인의 기준으로 보면 이상한 것으로 여길 수도 있는 일부다처제는 이슬람지역의 빈번한 전쟁으로 과다하게 발생한 과부와 고아를 구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보인다. 이슬람공동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코란』과 예언자의 언행록인 『하디스』이지만, 계속된 영토확장으로 그것만으로는 이슬람공동체를 이끌 수가 없었다. 따라서, 공동체내에서 문제가 야기되었을 때에는 전통적 규범인 순나(Sunnah)에 의해 보완된다. 순나를 지지, 이상시하는 자를 순나파라 하는데 대부분의 무슬림은 이 정통파에 속한다. 제국확장과 함께 이질적 종교와 사상이 유입됨에 따라 최초의 하라지리파를 비롯, 많은 분파가 생겼는데, 그 중 주요한 하나의 분파가 바로 시아파이다.

이 파는 초기 칼리프시대 이후 칼리프계승권에 대한 문제로 발생한 분파이다. 시아란 무함마드의 사위인 알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들은 칼리프계승권이 예언자혈통을 이어받은 알리의 후손에게 있다고 하면서 알리의 아들 하산과 후세인의 계승권을 주장한다. 이 시아파는 순나파에 비하면 소수파이지만, 한 때 광대한 제국을 세웠던 페르시아가 사라센 제국에 복속된 뒤에 정통 순나파를 선택하지 않고 시아파를 선택했던 역사적인 연원 때문에 현재의 이란 지역에서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전체 무슬림의 10%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이들은 자기들만이 성스러운 지식과 힘을 가졌다고 주장하면서 그런 힘의 소유자를 이맘(Imam)이라고 불러 존경하고 있다. 또 다른 주요한 유파는 12세기 이후 이슬람신비주의라 일컬어지는 수피즘을 들 수 있다.

수피란 원래 원시이슬람사회 내에서의 금욕수도자·고행자를 뜻하였으나, 뒤에 그리스사상과 유대교·기독교·불교의 신비주의사상까지 수용되어 수피즘이라는 독특한 사상체계가 형성되었다. 이 수피즘은 이슬람신앙의 형식주의, 행위의 결과만 보고 심판하는 이슬람법(샤리아)에 대해 반발하면서 신앙의 내면성을 더욱 강조한다. 무슬림들에게 우리나라가 알려지게 된 것은 거의 1,000년이 넘는다. 서기 850년 경에 나온 중·근동의 사서(史書)와 지리서에 이미 신라(al-Shiilá,ah-Silá)에 대한 기록이 보이고 있다.

이 기록은 유럽인의 우리나라에 대한 최초 기록보다 500∼600년 정도 앞선 것으로, 한자문화권 밖에서는 최초로 언급된 기록이다. 무슬림과의 접촉기록은 우리나라에도 여러 번 나타난다.

고려 때인 1024년(현종 15) 9월에 열라자(悅羅慈, Al-Raga) 등 100여 명, 다음 해 하세라자(夏詵羅慈, Hassah Raga) 등 100여 명과 1040년(정종 6) 11월에 보나합(保那蓋, Barakah) 등이 왔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들은 대식(大食: 중국음으로 Tashih, 페르시아어로 아랍족)국에서 온 사람들로서, 대식이라는 명칭은 12세기에 들어와 회회(回回: 중국음으로 Hui-Hui)라는 명칭으로 대체되었는데, 이는 몽고족이 세운 원나라의 영향으로 이슬람교명칭이 회교 또는 회회교(回回敎)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명칭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용되고 있다. 당시 중동 무역상인으로서 출입한 무슬림은 주로 예성강하구 벽란도에서 교역하였는데, 가지고 온 상품은 주로 수은·향료·약재·소목(蘇木)·동(銅) 등이고 포도·포도주도 이때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한편, 사가지고 간 상품은 금·은·포(布)·면(綿) 등이다.

조선조의 등장과 함께 무슬림상인의 출입이 사라졌으나 문화적 교류는 중국을 통해 계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예로 세종 때에 편찬된 역법서(曆法書)인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이 있는데, 이는 바로 이슬람의 역법인 회회력(回回曆)을 소개한 것이다.

15세기 경에는 중·근동측 기록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 기록에도 무슬림상인들의 우리 나라 출입에 관한 내용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 이유로는 대체로 15세기 이후 유럽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주도하는 지리상의 발견시대로 접어들면서, 지금까지 교량적 무역을 담당하던 아랍무역권이 급격히 쇠퇴한 것과 동북아시아의 정세변동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15세기 이후 한국인들이 무슬림과 재접촉한 곳은 만주이다. 일제가 만주경영을 위하여 한국인들을 반강제로 만주에 이주시킨 결과 그 수가 100만 명에 달하였다.

이 중 극소수는 그 곳에 정착한 무슬림과 접촉, 이슬람을 알게 되고 일부는 그 때 개종한 것으로 보이며, 이들은 일제 패망 뒤 귀국하여 뒤에 우리 나라 안의 이슬람 정착에 선도적 구실을 하였다. 또한, 터키군이 6·25전쟁 때 참전함을 계기로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이들이 이슬람과 다시 접촉하였다.

당시 터키는 우리나라에 1개 대대를 파병하였는데, 이 속에 터키군의 군목인 이맘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만주에서 개종한 몇몇 한국인들이 터키군을 찾아가 성금요예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요청하였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에 무슬림공동체가 형성되었다. 따라서 1953년부터는 한국무슬림을 위한 특별기도회가 터키군 내의 간이모스크에서 이루어졌고, 1955년 9월에는 정식으로 한국무슬림 예배개막회가 결성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인 1955년 10월에 한국이슬람협회(Korea Islamic Society)가 결성되어, 터키군 이맘이었던 압둘 라흐만과 주베르 코치가 이맘으로 선출되었고 초대 회장에 김진규, 사무총장에 윤두영이 취임하였다.

그 해 서울 동대문에 독자적인 예배장소가 마련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협회 대표 2명이 1959년부터 1년간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을 비롯한 여러 무슬림국가들을 직접 살펴보고 한국이슬람의 실정을 소개하였다. 이를 계기로 1962년 한국무슬림 유학생 11명이 처음으로 말레이시아 클랑무슬림대학에 파견되어 6개월 동안 이슬람교리와 의식을 공부하고 귀국, 선교에 종사하였다. 또한, 이 협회는 기구확대와 더불어 1965년 1월에 한국이슬람교중앙연합회(Korea Muslim Federation)로 명칭을 바꾸고 본격적인 선교활동을 하였다.

이 연합회는 1967년 3월에 문공부로부터 재단법인 한국이슬람교의 설립을 인가받아 한국무슬림을 대표하는 공식기구로서 법적 지위를 얻었다. 1970년대 아랍국가와의 관계가 번번해지면서 정부가 이슬람중앙성원의 건립대지를 기증함에 따라 이 연합회는 중·근동의 무슬림독지가들로부터 성금을 모금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정부와 무슬림독지가의 노력으로 1976년 5월 서울에 중앙성원이 완공되어 21개 무슬림국가에서 51명의 대표가 참석하는 성대한 준공식을 가졌다. 이 중앙성원에는 한국무슬림의 의식교육과 선교를 담당하는 이슬람센터도 발족하였는데, 현재도 아랍어 공개강좌를 계속하고 있다.

1970년 후반에는 중동에 진출한 많은 한국근로자들에게 이슬람을 선교하기 위해 최초의 해외지회를 제다에 설치하였다. 1978년 4월에는 경기도 광주군 쌍용리마을의 일부 주민들이 자진하여 이슬람으로 개종하겠다고 밝혀 임시성원을 만들어 사용하다가 1980년 초 경기도 광주에 또 하나의 성원이 준공되었으며, 부산에도 성원이 건립되었다.

1980년 가을에는 한국이슬람사상 처음으로 132명이라는 대규모 성지순례단이 메카를 순례하고, 그 곳 황태자로부터 영접을 받았다. 또한, 1980년 5월 당시 최규하(崔圭夏)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를 공식방문하여 국왕 할리드와의 회담에서 한국에 이슬람대학을 설립하는 데 양국 원수가 상호 협조하기로 하였다.

이 협의에 따라 한국정부는 대학부지를 제공하고 그 기공식까지 가졌다. 이렇게 한국이슬람교중앙연합회는 한국 내 이슬람 포교뿐 아니라 절대 다수가 비무슬림인 한국민에게 생소한 무슬림 세계를 소개함으로써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게 하였고, 나아가 전세계 무슬림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여 양측의 친선과 우호증진에 이바지하였다.

1970년대부터 연인원 100만 명에 달하는 한국근로자들이 중동에 진출하였으며, 한국은 문화적·경제적으로 무슬림국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였는데, 1950년대에 탄생된 한국이슬람이 이런 관계가 이룩되는 데 여러 가지 긍정적인 작용을 해왔다.

1994년 현재 한국에는 약 10만 명의 신자가 있는데, 그 중 한국인은 4만 명 정도이다. 이 숫자는 총 인구에 비하면 극소수에 지나지 않으나 계속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서울 중앙성원과 부산 알파타성원, 경기도 광주 성원 이외에 1986년에 안양 성원과 전주 성원이 개설되어 전국에 5개의 성원이 산재해 있으며 7개의 해외 지부를 두어 선교 활동의 발판도 구축하고 있다.

이슬람교 중앙성원: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에 소재한 이슬람교의 중앙서원. 마호메트가 610년 창시한 이슬람교는 유일신 알라를 섬기며, 대략 43개국 9억명의 신도를 갖고있다. 이슬람이란 '절대 순종'의 의미이다.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에 본부를 두고 있는 한국이슬람교중앙연합회는 교육사업을 전개하기 위하여 대학설립위원회를 구성하여 활동하고 있으며, 아랍어 연수원과 출판위원회 등이 있어 연수원을 운영하고 『무슬림주보』, 『주간 무슬림신문』을 발행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이슬람의 종교적 특성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또한 다종교상황이라든가, 같은 유일신앙인 기독교의 팽창이라든가 하는 종교문화적 환경이 이슬람선교에 유리한 요인은 아니다. 더구나 집단예배를 보는 금요일이 휴일이 아니며, 모스크도 거주지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다.

한국이슬람교는 한국인의 습성과 기호의 차이로 생기는 어려움과 예배의식용어 및 교리의 토착화 등 많은 과제를 안고 있고, 또한 무슬림국가의 도움에 의존하여 성장하다보니 자생력이 약하여 내부적인 갈등이 계속되기도 한다.

아브라함의 종교,
이슬람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바로 그들 스스로 '아브라함의 종교'라고 하는 데 있다. 이것은 유대교기독교를 배경으로 하여 독립한 종교로서 이슬람교의 정체성을 말하는 것이다.

'오늘, 나(신)는 너희들을 위해 종교를 건립했다. 나는 너희들에게 은총을 가득 줄 것이며 동시에 너희들을 위한 종교로서 이슬람을 승인했다.'(코란)

이슬람교의 신 알라는 역사적으로 더듬어보면 처음으로 사람, 즉 아브라함에게 계시를 내린 신이다. 전 우주의 창조주이며 유일무이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일신교를 신봉한 가장 최초의 신앙은 '아브라함의 종교'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유대교와 기독교도 파생해왔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종교'는 근원적인 의미를 가진 '영원한 종교'로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이슬람 측에서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존재를 원칙적으로 부정은 하지 않지만, 이 '영원한 종교'에 대한 이해가 불충분하고 그 때문에 본질적인 내용을 오해하며 역사적인 전개 속에서 왜곡되어버린 종교라고 규정한다. 이슬람은 그런 왜곡된 모습을 본래로 되돌리는 것이야말로 역사적인 임무라고 말한다.

이슬람은 '절대 일신교'다. 이것은 신앙의 대상인 신이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아브라함의 신'이고, 그 신만을 주님으로 정해 '노예'가 되어 섬기겠다는 결의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코란의 성립.
이슬람에서는 아담도 노아도 아브라함도, 그리고 예수도 인류를 내세의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 신이 지상으로 보낸 예언자라고 해석한다. 신은 사람들을 인도하기 위한 표시로 '계시의 책'을 인류에게 주었다. 그것은 모세에게 준 율법의 책(구약성서)과 예수에게 준 복음의 책(신약성서)이다. 그러나 유대교도와 기독교도는 그들에게 주어진 계시의 책을 왜곡하고 은닉했다고 한다. 아브라함은 계시의 책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의 아들인 이스마엘과 함께 메카1)에 카바2)신전을 건설하고 자손 중 하나를 사도로 보내기 위해 신에게 기도했다. 그리고 제1장에서 소개한 것처럼, 신은 천사 지브릴(가브리엘)을 무하마드에게 보내 계시의 책(코란)을 주었다.

따라서 무하마드가 주장한 것은 아브라함 종교의 부활이며, 코란이야말로 가장 바른 인도의 책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늘의 신 옆에는 한 장의 석판이 보관되어 있고, 이것이 이른바 '계시의 책' 원형이기 때문이다. 코란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잘못된 부분을 고친 뒤에 최후의 예언자인 무하마드에게 내려진 책이다. 이상은 코란에 기록된 유대교기독교에 대한 관점이다.

이슬람의 성전은 물론 코란이지만, 그것을 보조하는 것으로 『하디스(Hadith)』라는 제2의 성전이 있다. 코란은 무하마드가 받았던 계시인 데 비해, 『하디스』는 무하마드 자신이 한 말과 행위를 기록한 책이다. '하디스'라는 말은 아라비아어로 '전승(傳承)'을 의미하고, 무하마드가 죽은 직후부터 구전되다가 8세기에 이르러 수집, 기록된 것이 그 시작이다. 많은 하디스가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부하리(Bukhari)의 하디스』라는 책이다. 여기에는 이슬람의 백과사전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신앙의 행위,
이슬람은 단지 신앙하는 것만이 아니라 행위로 표현할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이슬람의 신앙을 지지하는 다섯 개의 기둥이라는 의미에서 '5주(al-arkan al-khamsa)'라고 한다. 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샤하다(shahada : 신앙 고백)
샤하다는 원래 '증거'를 의미하는 아라비아어다. 구체적으로 "알라 외의 신은 없고, 무하마드는 알라의 사도다"라는 구절을 예배 때마다 소리 높여 외치는 행위다. 이 '신앙 고백'은 이슬람이 각지로 세력을 넓혀 가는 과정에서 이교도들에게 이슬람으로 개종할 것을 촉구하는 증거로서 외치게 했던 것 같다.

2. 살라트(salat : 예배)
이것은 신에 대한 복종의 증명이며 감사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슬람교도의 의무인 예배는 하루에 다섯 번 행해진다. 이 횟수에 대한 규정은 무하마드가 천상 여행을 할 때 신과의 약속으로 정해진 것이다('이슬람교의 천계' 편 참조). 예배 시간은 새벽, 정오, 오후, 일몰, 밤중으로 정해져 있다. 예배 때는 몸을 청결히 하고 의도를 확실히 하며, 메카의 카바 신전 쪽을 향해 행한다. 처음에는 예루살렘을 향해 예배했지만 624년부터 변경됐다. 이 밖에도 자발적인 예배도 권장되었는데, 꼭 모스크(이슬람 사원)에서가 아니더라도 묘지나 도살장 같은 불결한 장소만 아니라면 어디에서 하든 상관없다.

3. 자카트(zakat : 희사, 기꺼이 바침)
자카트의 본래 의미는 '맑게 함'이다. 무하마드는 자카트를 신앙의 증명으로서, 신자의 중요한 덕목의 하나로서 호소했다. 물론 처음에는 자발적인 것이었지만, 후에 이슬람법에서 '정해진 신에 대한 봉사의 의무'라고 제정되면서부터 강제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이른바 세금과 같은 역할을 하며, 일반적으로 신자가 소유하고 있는 돈이나 가축, 과실, 곡물, 상품 등에 대해 일정한 비율로 금액이 정해져 있다. 이 자카트는 궁핍한 순례자, 수행자, 빌린 돈을 갚을 능력이 없는 자, 거지, 궁핍한 여행자 등의 원조에 쓰인다.

4. 사움(sawm : 단식)
무하마드는 메카로 이주(히즈라hijra)한 직후 유대교도의 제도를 모방해 단식일을 정했다. 훗날 '라마단'의 달(9월)은 단식의 달로 정해졌다. 이슬람교도는 이 한 달 동안 일출부터 일몰까지 일체의 음식을 먹지 않음은 물론이고, 흡연, 성교, 침을 삼키는 일조차도 허용되지 않는다. 단 노인, 어린아이, 병자 등은 예외이며, 또 여행중이나 전쟁터에 있는 병사의 경우는 후일로 변경하는 것도 가능했다.

5. 하즈(hajj : 순례)
순례는 개인이 아닌 집단에 부과된 의무로, '여행할 여유가 있는 이상' 순례월(12월) 8일부터 10일 사이에 메카의 카바 신전을 참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는 상세한 규정이 있는데, 순례자는 이음매가 없는 두 장의 흰 천을 몸에 두르고 순례월 7일까지 메카에 도착해야 하며 도착한 날 카바를 일곱 번 돌아야 한다. 그리고 그날 밤이나 다음날 아침에는 메카 동쪽의 성지인 아라하트에 특정한 통로를 이용해 다다르고, 9일에는 아라하트의 라흐마산에서 의식을 행한다, 라는 식으로 매우 자세히 그 내용이 정해져 있다. 만약 이 순서대로 행하지 않았을 경우 순례 경험자에게 붙여지는 '하주'라는 경칭을 인정받지 못한다.

이슬람의 특징적인 신앙 행위로서 또 한 가지 거론하고 싶은 것이 지하드(jihad)라는 말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성전(聖戰)'을 의미하지만, 아라비아어 본래의 의미는 '정해진 목표를 위한 노력'이다. 이슬람교도는 '왼손에 코란, 오른손에 칼'이라고 불릴 정도로 호전적인데, 그 배경에는 지하드의 사상이 있다. 이슬람법에 의하면, 이 세상은 이슬람의 주권이 확립되어야만 하고 그렇지 않다면 '전쟁 상태'로 여긴다. 따라서 이슬람의 주권이 확립될 때까지 '성전'은 계속된다고 규정한다. 물론 이 의무는 병사에게만 부여된 것은 아니며, 자금을 제공하는 것 등도 성전에 참가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지하드에서 순교한 자에게는 천국이 약속되어 있다.

무슬림에게는 인사도 신앙의 증명이 된다. 코란과 『하디스』에는 다음과 같은 인사말이 기록되어 있다.

"앗살람 알라이쿰(al-salam alaykum : 당신에게 평안을)." 그러면 답을 하는 측도, "와 알라이쿰 앗살람(wa-alaykum al-salam : 당신에게야말로 평안을)." 이라고 말한다. 이때 몸짓이나 작법(作法), 또는 어느 쪽이 먼저 인사하는가 등의 사항까지 자세히 규정되어 있다. 물론 이교도에 대한 경우의 인사법도 있는데, 이때도 허리를 굽히는 인사만큼은 금지되어 있다. 엄격한 이슬람교도라면 말이다.
수니파, 시아파 무려 1400년간 싸우는 이유는?

참조항목
라마단, 무함마드, 메카, 미나레트, 사다카, 샤리아, 수나, 수니파, 수피즘, 술탄, 시아파, 아잔, 알라, 예루살렘, 와하브파, 움마, 이드알아드하, 이드알피트르, 이맘, 지하드, 핫즈, 헤즈볼라

역참조항목
골콘다 왕조, 교단, 나세르주의, 나스르 왕조, 알라위파, 다룰이슬람, 단식

카테고리
  • 종교 > 이슬람교
출처 & 참고문헌,
[이슬람교 [Islam] (두산백과)
[이슬람교 [Islam, ─敎]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종교연감』(한국종교사회연구소 편저, 고려한림원, 1997)
[이슬람사상사』(김정위, 민음사, 1987)
[이슬람교」(김정위, 『한국인의 종교』, 정음사, 1987)
[이슬람철학사』(앙리 코르방, 김정위역, 대광문화사, 1986)
[이슬람문화사』(김정위, 문학예술사, 1981)
[네이버 지식백과] 이슬람교 [Islam, ─敎]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네이버 지식백과] 이슬람교 [Islam] (천사, 2000. 3. 31., 마노 다카야, 신은진)
[엄마가 들려주는 세계사 이야기] = yutube/ 동영상볼수있는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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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2일 월요일

가죽나무, [Tree of Heaven, 假僧木],

가죽나무, [Tree of Heaven, 假僧木],
소태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교목. 가중나무라고도 하며, 한자어로는 가승목(假僧木)·저수(樗樹)·산춘수(山椿樹)라고 한다. 학명은 Ailanthus altissima SWINGLE.이다. 중국 원산으로 높이가 20m에 달한다. 잎은 어긋나고 기수일회우상복엽(奇數一回羽狀複葉)으로 길이가 60∼80㎝이다. 작은 잎은 13∼25개의 넓은 피침상난형(披針狀卵形)으로 길이 7∼13㎝, 넓이 5㎝이며 차례로 붙어 있고, 작은 잎 아래쪽에는 큰 톱니가 3, 4개 있으며, 표면은 진한 녹색이고, 뒷면은 연한 녹색이며 털이 없다.
잎 부분. 잎자루의 양쪽에 작은 잎이 새의 깃 모양을 이룬 우상복엽(羽狀複葉)으로, 13~25개의 작은 잎으로 되어있다. 작은 잎 아래쪽에는 큰 톱니가 3, 4개 있으며, 표면은 진한 녹색이고, 뒷면은 연한 녹색이며 털이 없다.
유형/ 성격/ 학명/ 생물학적/ 분류/ 출산·개화시기/
동식물
식물, 나무
Ailanthus altissima SWINGLE
소태나무과
6월
꽃은 암수가 따로 있는 자웅이가화(雌雄二家花)로 지름이 7, 8㎜이며, 초록빛이 도는 흰색으로 6월에 핀다. 원추화서(圓錐花序)는 가지 끝에 달리고 길이가 10∼30㎝로서 털이 없다. 열매는 시과(翅果)로 적갈색이고 얇으며, 피침형(披針形)으로 길이 3∼4㎝, 넓이 1㎝로 9월에 성숙하고 봄까지 달려 있다.
번식은 가을에 익은 종자를 채취하여 노천매장했다가 이듬해 봄에 파종해도 되고, 뿌리를 15∼20㎝로 잘라서 삽목하여도 된다. 내한성·내건성이 강하여 전국 어디서나 잘 자라며, 특히 황폐한 곳에서 무성하게 자란다. 내조성(耐潮性)이 강하여 해변가에서도 생장이 양호하며 대기오염에도 강하나, 미국흰불나방의 피해가 심하다. 절에 많이 심는데, 잎을 먹을 수 있는 참중나무와 닮았으나, 잎을 먹지 못하는 데다 용재로서의 가치조차 없어 가승목(가짜중나무)이라고 하여 외면되어왔다.
근래에 가공기술이 발달되면서 쓸모없던 가중나무의 무늬가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되어 가구재 등 치장무늬목으로 널리 각광받게 되었다. 합판·가구용재뿐만 아니라 펄프재로도 양호하며 농기구나 건축의 잡용재로 이용된다.
재질은 나이테가 명료하여 무늬가 아름다우며 재색(材色)은 황백색 또는 연한 황갈색으로, 팽나무 등과 함께 양가구재(洋家具材)·합판재의 적재로 손꼽힌다. 이 나무의 뿌리 내피는 민간약용으로 이질·설사 등의 치료에 사용되고, 잎과 뿌리를 삶은 물은 피부병 치료에 쓰인다.
오염된 공기를 정화시키고 여러 가지 입지에 잘 적응하므로 도시의 가로수와 공원수로 좋으나 반드시 우수한 나무를 선발하여 심는 것이 좋다. 우상복엽으로 13~25개의 작은잎으로 되어있으며 넓은 바소형 달걀모양이다. 잎의 밑부분에 1~2쌍의 크고 둔한 거치가 있다. 꽃은 6~7월에 피며 백녹색의 원추화서로 피며 가지의 끝부분에 달린다. 꽃받침은 5개로 갈라지며 꽃잎은 5개로 끝부분이 안으로 말린다. 수술은 10개이고 암술대는 5개고 갈라진다. 열매는 시과로 9~10월에 익으며 긴 타원모양이고 종자의 양쪽에 날개가 있다.
낙엽활엽교목으로 원산지는 중국이고 한국, 일본, 중국 등에 분포하며 식재하기도 한다.
가죽나물,
참죽 새순 잎의 줄기를 꺽어 데쳐 햇볕에 말린 후 튀김기름에 살짝 볶고 갖은 양념을 한 나물.
참죽나무의 여린잎을 가죽나물이라고 합니다. 이른봄에 올라오는 가죽나물은 독특한 향이 있어 별미 식재료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본정보,
· 구입요령 : 잎이 두껍지 않으며 만져 보아 부드럽고 연한 것을 고르는 것이 좋다. 보랏빛을 띠는 것이 좋다.
· 유사재료 : 두릅 (비슷한 시기에 출하되는 나물로 가죽나물에 비해 푸른빛을 띠며 길이가 짧고 줄기에 가시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 보관온도 : 0~5℃
· 보관일 : 5일
· 보관법 : 수분이 증발하지 않도록 밀봉하여 냉장 보관한다.
· 손질법 : 흐르는 물에서 깨끗이 흔들어 씻어낸다.
· 산지특성 및 기타정보 : 얕은 산지에 많이 분포하며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가죽순,
섭취정보,
· 섭취방법 : 장아찌나 나물부각 등을 만들어 섭취한다.
· 궁합음식정보 : 된장 (콩단백질이 풍부한 된장을 가죽나물과 함께 먹으면 단백질 보충효과를 얻을 수 있다.)
· 다이어트 :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하며 독특한 향이 있어 체중 감량 시 활용 가능하다.
· 영양성분:
니아신
1.00mg
나트륨
9.00mg
단백질
5.90g
당질
6.20g
레티놀
0.00㎍
베타카로틴
3,527.00㎍
비타민 A
588.00㎍RE
비타민 B1
0.14mg
비타민 B2
0.16mg
비타민 B6
0.20mg
비타민 C
54.00mg
비타민 E
4.00mg
식이섬유
0.00g
아연
0.27mg
엽산
21.70㎍

92.00mg
지질
0.90g
철분
1.90mg
칼륨
401.00mg
칼슘
64.00mg
콜레스테롤
0.00mg
회분
1.20g


영양성분 : 100g 기준,
- 탄수화물 : 9.46g
- 단백질 : 5.33g
- 지방 : 0.41g
- 당류 : 0g
- 나트륨 : 5mg
- 콜레스테롤 : 0mg
- 포화지방산 : 0.1g
국가/ 구분/ 주재료/
한국 충청북도, 전라북도, 
찬류
참죽새순 잎
참죽의 새순을 ‘가죽’이라고 하며, 이른 봄에 따서 물에 소금을 약간 넣어 데쳐 말려 가죽나물이나 가죽부각에 이용한다. 참죽은 산중 스님들이 처음 먹기 시작했으며 붉은 빛이 돌면 맛이 좋은 것으로 스님들이 드시는 진짜 나물이라는 뜻에서 '참죽'이라 불렀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가죽의 맛이 덜해 가짜중나물이라는 뜻으로 '가죽'으로 불렀다고 한다. 참죽은 향이 독특하고 해독력이 좋다고 하여 최근 웰빙산나물 요리로 인기가 있는 나물이다.

참죽의 뿌리 껍질을 '저근백피'또는 '춘백피'라 하여 한방에서는 이질과 대하증, 설사를 멎게 하는 지사제로 쓰였으며 민간에서는 이질로 인한 혈변(피와 썩여서 나오는 변)이나 위궤양에 뿌리의 껍질을 진하게 달여 마시기도 하였다. 또한 많이 먹으면 심한 설사를 하며 오심, 허탈감, 두통이 오는 수가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가죽나무잎 줄기를 꺽어 물에 씻은 후 끓는 물에 살짝 데치고 잎만 골라 햇볕에서 잘 말린다. 말린 재료를 튀김기름에 살짝 볶고 갖은 양념을 하여 모양 있게 접시에 담아 놓는다.

가죽나물은 요리법과 저장법에 따라 1년내내 두고 먹을수 있는 산채이며, 옛선인들은 가죽나무를 가마를 메는 가마채로 쓰기도 하였다. (한두 그루씩 은 전국에 있을정도 입니다), 
한번 입맛 들이면 '가죽'에 미쳐버리지!!!
가죽나무와 순,
멀구슬나무과. 참죽나무에서 나오는 어린 순을 나물로 해먹는데 그것을 가죽나물이라고 흔히 한다. 우리가 식용하고 있는 가죽나물은 대부분 중국이 원산지다. 충청북부 아래로 분포하며 토지가 비옥한 사찰이나 인가 주변에서 볼 수 있다. 경상도에는 가죽나무, 전라도에서는 쭉나무라고도 부른다.
"저 나무는 무진장 늙었나봐, 나무껍질이 거칠고 거무스름하네."

새로 얻은 미산동 사무실, 대나무로 뒷담을 삼고 깊은 우물과 텃밭이 달린 옛집이다. 텃밭과 담길, 그 샛길 위로 늙은 가죽나무가 앙상하게 봄을 맞고 있다. 4월이면 잎들이 자라기 시작한다.

고동색 잎이 큰손 단풍잎처럼 뻗어나고 있고, 땅 아래에는 조그마한 새끼 잎사귀들이 여기저기서 오르기 시작한다. 어느 날, 오십대 아저씨들이 긴 막대기로 나뭇가지 사이를 휘저으면서 몸 가까이 가지를 잡아당긴 다음 잎사귀를 한손 가득 따낸다.

"뭐해요?"
낯선 남자들이 남의 집 마당에 들어와 나무를 휘젓는 게 몹시 불쾌했지만 친절하게 물었다.

"이거 가죽나무잖아요."/ "왜 따는데요?"/ "먹으려고. 아주 귀하거든요. 몰라요?"/ "아, 어쩐지……."

일단 아는 척 한 뒤, 그들이 떠나고 나서야 나는 가죽나무 잎사귀를 만져보았다. 몇 주일 동안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먹는 것이라고 하니 그제야 관심을 보인 터. 낯설지 않은 향이 코를 자극한다. 내친 김에 잎을 떼어내 사각사각 씹어본다.

강한 향은 내 입 안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5~6살 무렵, 우리 집 단칸방 앞에 서 있었던 나무의 향이다. 나의 오감은 어린시절의 맛과 향을 잊지 않았던 게다. 추억 속에서 되살아난 입맛 덕분에 나는 그 후로 가죽나무 잎을 계속 뜯어먹기 시작했다. 혹여나 사람들이 뜯어갈까 바깥을 주시하면서. 5월이 되자 가죽나무 뿌리가 텃밭까지 뻗어 와 가죽나무 새순들이 텃밭을 덮어버렸다. 손이 닿지 않는 나뭇가지 대신 나는 텃밭에서 자라는 새순을 따 먹었다.

가죽나무 향은 기가 막힐 정도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 향을 싫어한다. 그러나 한번 심취하면 거의 중독 증세를 보인다. 코와 입을 간질이는 그 향과 맛으로 가죽나물을 먹는가보다. 4월 중순부터 6월까지는 거의 매주 뜯어서 먹을 수 있다. 모양새는 옻나무와 비슷하다. 그러나 가죽나무는 향이 있다. 고목나무부터 어린 나무에 이르기까지 부드럽고 향이 있으며 손을 대어 마디를 부드럽게 꺾을 수 있다. 가죽나무는 '가중나무'라고도 부른다. 가죽나무는 이질에 많이 사용되던 민간 약초로 노인들이 즐겨먹는다.
[먹는방법]
모든 식물이 그러하듯이 날것으로 먹으면 가장 좋다. 하지만 가죽나무에 얽힌 나의 추억은 조금 다르다. 밀가루를 살짝 입혀 그늘에 꼬들꼬들하게 말린 다음 기름에 튀겨 먹으면 향과 맛이 기막히게 어우러진다. 기름을 조금 넣고 전을 부쳐서 먹어도 좋다.

살짝 데쳐서 나물로 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다. 가죽나물은 다른 나물류와 함께 섞어 조리하지 않는 게 좋다. 향이 워낙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생잎으로 먹으면 약간 쓰고 향이 독특하지만 맛에 익숙해지면 반드시 다시 찾는다.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 쌈으로 곁들여 먹을 수도 있고, 무침을 하거나 초고추장에 찍어 먹을 수도 있다. 석쇠에 구어 먹기도 한다. 어떻게 먹든지 '자기 나름대로 알아서' 먹으면 된다.

가죽나물 부각,
가죽나물, 찹쌀가루, 식용유, 통들깨, 고춧가루, 소금을 준비한다. 소금을 물에 넣고 끓여 가죽나물을 살짝 데친 후 채반에 놓고 꾸덕꾸덕하게 말린다. 찹쌀로 맑은 풀을 쑤어 식힌 후 가죽나물을 넣어 쓰윽 바르고 햇볕에 충분히 말린다. 이러한 과정을 두 번 반복한다. 색깔을 넣고 싶으면 고춧가루를 넣어 붉은 색의 찹쌀 풀을 쑤어 식힌다. 식은 후 통깨를 섞어 말린 가죽나물에 빨간 풀을 고르게 바른 후 며칠 동안 볕에 완전히 말린다. 말린 가죽나물을 습기 차지 않게 밀봉 보관하고 꺼내 먹을 때는 튀기거나 굽거나 찌는 등 입맛대로 먹는다.

가죽나물 장아찌, 
가죽나물을 살짝 데쳐 건진 다음 꾸득꾸득하게 말린다. 물에 간장을 7:3 비율로 섞어 반나절 정도 담가 절인다. 건져서 물기를 빼고 꾸득하게 마르면 물엿이나 매실, 야채효소액 약간, 고추장, 고춧가루, 마늘, 통깨를 넣고 버무린다.
참조항목,
역참조항목,
카테고리,
참고문헌,
대한식물도감』(이창복, 향문사, 1980)
[한국동식물도감』식물편(이덕봉, 문교부, 1974)
[야생식용식물도감』(이창복, 임업시험장, 1964)
[조선산야생약용식물』(임업시험장보고 제22호, 1936)
[가죽나무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가죽나무 (국립중앙과학관 - 식물정보, 손에 잡히는 생태수목도감, 조경식물소재도감) 
[가죽나물 (두산백과)
[가죽나물 (쿡쿡TV)
[가죽나물 - 한번 입맛 들이면 '가죽'에 미쳐버리지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약이 되는 잡초음식), 2011.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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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나무,

옻나무,

쌍떡잎식물 무환자나무목 옻나무과의 낙엽교목으로 중국, 한국, 일본에서 자란다. 나무껍질에 상처를 내면 나오는 수액을 옻이라고 하며 공업용 ·약용으로 쓴다.
유형/ 성격/ 학명/ 생물학적/ 분류/ 원산지/ 출산/ 개화시기/
동식물
식물, 나무
Rhus verniciflua STOKES
옻나무과
중국
5월
학명은 Rhus verniciflua STOKES이다. 높이 12m, 지름 40㎝까지 크며, 중국으로부터 도입되어 전국적으로 심고 있는데, 강원도 원주지역에 재배 흔적이 가장 많으며 그 밖의 지역에서는 단목으로 희귀하게 나타날 뿐이다.
꽃은 자웅잡가(雌雄雜家)로서 5월에 연한 녹황색 꽃이 피어 10월에 편구형(扁球形) 핵과가 결실한다. 바람을 막을 수 있는 동남향의 산록지·하안·밭둑 등이 적지이고, 표고 900m까지도 재배가 가능하다. 토심이 깊고, 돌이 섞인 석력토로서 비옥한 곳에서 잘 자란다.
옻나무 - 꽃 핀 모습 (5월),
옻나무는 수액을 채취하여 도료용으로 사용하는데, 옻칠 도료는 최고품으로 어떤 조건에서도 방부가 잘되고 변색이 되지 않아 넓게 사용하던 것이 최근에는 석유화학 도료에 밀려서 옻나무 재배가 소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옻칠을 내는 방법도 시기에 따라 초칠(初漆)·성칠(盛漆)·말칠(末漆)로 불려진다. 최근에는 머리 염색약도 옻칠로 만들고 있다.
옻나무에는 유독물질인 우루시올(Urushiol)이 있어 옻을 유발시킨다. 우루시올은 락크효소(Laccase)의 작용에 의하여 공기 중의 산소를 흡수하여 검은 수지 모양이 된다.
한방에서는 옻칠(주로 乾漆)을 약재로 사용한다. 약성은 온(溫)하고 신(辛)하며 유독한데, 파어(破瘀)·소적(消積)·살균의 효능이 있다고 한다. 주로 어혈제증(瘀血諸症)·경폐(經閉)·심통(心痛)·충적(蟲積) 등에 사용하며, 주요 처방으로는 건칠환·건칠산·이성환 등이 있다.
옻나무는 발아시키기가 조금 어려운데 가을에 익은 열매에 붙은 납을 제거하여야 하며 열매를 절구에 넣고 가볍게 찧은 다음 다시 정미기에서 종피(種皮)를 얇게 갈아서 노천매장하였다가 이듬해 봄에 파종한다.
달걀 모양의 작은 잎은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표면에 털이 있으며, 9~11개가 어긋나게 자란다. 옻나무의 꽃은 녹황색이며 단성화로, 5월에 원추꽃차례를 이룬다. 수꽃은 5개씩의 꽃받침조각과 꽃잎, 수술이 있고 암꽃에는 5개의 작은 수술과 1개의 암술이 있다. 열매는 핵과()로 편원형이며 연한 노란색을 띤다. 털이 없으며 10월에 익는다. 옻나무 종자에는 왁스(wax)가 많이 들어, 이를 채취해 목랍()을 만들기도 한다. 또 옻나무는 가볍고 무늬가 고와서 가구재로 쓰기도 하고, 부목()과 연료로도 쓴다.
수고 20m 정도에 달하며 수피는 회색이고 껍질눈이 있으며 어릴 때 가지에 털이 있다가 없어진다. 어긋나게 달리는 잎은 기수1회우상복엽으로 가지 끝에 모여 달린다. 작은잎은 9~11개로 난형이며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양면에 털이 있다. 가을에 적색으로 단풍이 든다. 암수딴그루 또는 잡성화로 6월에 잎겨드랑이에서 황록색 꽃이 원추화서로 달리는데 밑으로 처진다. 수꽃은 5개의 수술과 퇴화한 암술이 있고, 암꽃은 3개로 갈라진 암술과 5개의 퇴화한 수술이 있다. 열매는 핵과로 광택이 있다. 9월에 초록색에서 갈색으로 익는다.
중국 원산지로 우리나라 강원도 원주지역, 횡성군 및 전남 남원 등 전국적으로 재배 가능한 낙엽활엽소교목으로 드물게 자생하는 것이 발견되기도 한다.
옻나무 껍질에 상처를 내면 옻이라는 수액이 나온다. 옻나무를 심고 4년이 지난 뒤 부터 10년 뒤 까지 옻을 채취할 수 있다. 10년생 나무의 경우 옻을 250g 정도 채취할 수 있다. 옻나무 줄기 외피에 수평으로 상처를 내면 수액이 흘러 나온다. 옻을 채취하는 데는 상처를 적게 내 나무가 죽지 않게 매년 조금씩 채취할 수도 있고 상처를 많이 내어 옻을 최대한 채취하고 나무가 죽으면 베어버리는 방법도 있다. 나무에서 바로 받은 것을 생옻이라 하며 건조시켜 굳힌 것은 마른옻이라고 한다.
채취한 옻은 오래 저장해도 변하지 않으며 산이나 알칼리, 70℃ 이상의 열에 닿아도 변하지 않는다. 이런 특성을 이용해 다른 색소와 섞어 여러 기계의 도료로 이용하고 목제품의 접착제로 쓴다. 또 옻을 바르면 방수효과가 있고 아름다운 광택이 나기 때문에 탁자, 악기, 보석 등의 광택제로도 사용한다.

특히 옻을 칠한 나전칠기는 한국 고유의 공예품으로 세계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또한 옻 속에는 뷰테인(butein)과 설퓨레틴(sulfuretin) 처럼 약효를 나타내는 성분이 있어 약으로 쓰기도 한다.

옻나무의 수액에는 알레르기성 물질인 우루시올(urushiol)이 들어있다. 따라서 옻나무 수액이 묻거나 증기를 쐴 경우 가려움증과 함께 심각한 발진이 일어날 수 있다.
꽃은 자웅잡가(雌雄雜家)로서 5월에 연한 녹황색 꽃이 피어 10월에 편구형(扁球形) 핵과가 결실한다. 바람을 막을 수 있는 동남향의 산록지·하안·밭둑 등이 적지이고, 표고 900m까지도 재배가 가능하다. 토심이 깊고, 돌이 섞인 석력토로서 비옥한 곳에서 잘 자란다.
옻나무는 수액을 채취하여 도료용으로 사용하는데, 옻칠 도료는 최고품으로 어떤 조건에서도 방부가 잘되고 변색이 되지 않아 넓게 사용하던 것이 최근에는 석유화학 도료에 밀려서 옻나무 재배가 소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옻칠을 내는 방법도 시기에 따라 초칠(初漆)·성칠(盛漆)·말칠(末漆)로 불려진다. 최근에는 머리 염색약도 옻칠로 만들고 있다.
옻나무에는 유독물질인 우루시올(Urushiol)이 있어 옻을 유발시킨다. 우루시올은 락크효소(Laccase)의 작용에 의하여 공기 중의 산소를 흡수하여 검은 수지 모양이 된다.
옻나무의 껍질을 약용한 것으로 맛은 맵고 쓰며 성질은 따뜻하다. 독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사지마비, 월경통에 쓰인다. 한방에서는 옻칠(주로 乾漆)을 약재로 사용한다. 약성은 온(溫)하고 신(辛)하며 유독한데, 파어(破瘀)·소적(消積)·살균의 효능이 있다고 한다. 주로 어혈제증(瘀血諸症)·경폐(經閉)·심통(心痛)·충적(蟲積) 등에 사용하며, 주요 처방으로는 건칠환·건칠산·이성환 등이 있다.
옻나무는 발아시키기가 조금 어려운데 가을에 익은 열매에 붙은 납을 제거하여야 하며 열매를 절구에 넣고 가볍게 찧은 다음 다시 정미기에서 종피(種皮)를 얇게 갈아서 노천매장하였다가 이듬해 봄에 파종한다.
개옻나무보다 꽃이 성글게 달리며 잎줄기에 붉은빛이 적다. 진짜 옻나무라고 참옻나무라고도 한다.
역참조항목,
카테고리,
참고문헌,
[천연약물대사전(天然藥物大事典)』(남산당, 1984)
[한국동식물도감 5 -식물편-』(문교부, 1965)
[옻나무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옻나무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약초도감
[국립중앙과학관 - 식물정보
[조경식물소재도감
[옻나무 (두산백과)
[옻나무 [Lacquer tree] (국립중앙과학관 - 식물정보, 손에 잡히는 생태수목도감, 조경식물소재도감)
#옻나무 #효능 #식물 #약초 #참옻나무 #천연약물 #속씨식물 #쌍떡잎식물 #무환자나무목

접시꽃 [Roses trémières],

접시꽃 [Roses trémières],
아욱과에 속하는 이년생 초본식물.
조선 초기에는 이두이름으로 황촉화(黃蜀花)·일일화(一日花)라고 불렸으며,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일일화로 수록되었다. 근래에는 꽃의 모양을 따서 접시꽃이라 하고 껍질의 용도를 보아서 닥풀, 또 약용으로 황촉규라고 부르기도 한다. 학명은 Althaea rosea CAV.이다. 아시아가 원산지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정원에 조경용으로 심고 있다.
키가 커서 2m 가량 되고, 줄기는 원통모양이며 녹색이고 털이 있다. 잎은 서로 어긋나며 긴 잎자루가 있고 손모양으로 5∼7갈래로 갈라지며 가장자리는 톱니모양을 하고 있다.
꽃은 6월에 피며 꽃잎은 5개로서 나선상으로 붙어 있다. 색은 분홍색·자주색·흰색으로 피고, 수술은 단체수술이며 암술은 1개이다. 가을에 종자를 받아서 파종하여 증식한다.
꽃잎을 따서 말린 다음 약으로 쓰는데 그 기원은 당나라부터이다. 성분으로는 디벤조일칼비놀 등이 알려져 있다. 약효는 부인들이 백대하로 인하여 하복부가 차고 아프며, 얼굴색이 누렇고 나날이 몸이 마르고 수척해지는 증상에 투여하면 좋은 치료효과를 얻는다. 또한, 대소변을 보지 못하고 복부가 창만되어 호흡불통인 사람에게 투여한다. 이밖에 얼굴의 주근깨와 술을 많이 먹어서 생긴 코끝의 빨간 증상에도 활용된다.
뿌리는 촉규근이라고 하는데 당류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동물실험에서는 점막 염증의 보호와 완화자극작용을 함이 증명되었다. 약효는 소변을 잘못 보는 증상에 쓰고 자궁출혈과 토혈에 응용된다. 이밖에 맹장염이나 부인의 백대하에 응용되고 있다. 1회의 용량은 40∼80g이다.
분류/ 과명/ 학명/ 꽃피는 시기/ 꽃의 색깔/
속씨식물(쌍떡잎)
아욱과
Althaea rosea
6월~9월
연한붉은색, 흰색/
접시꽃은 역사가 오래된 꽃으로 우리나라 전국에서 자란다. 줄기는 녹색의 원통모양이고 털이 있다. 잎은 서로 어긋나며 긴 잎자루가 있고 가장자리는 톱니모양이다. 봄이나 여름에 씨앗을 심으면 그해에는 잎만 무성하게 영양번식을 하고 이듬해 줄기를 키우면서 꽃을 핀다. 꽃의 색깔은 진분홍과 흰색 그리고 중간색으로 나타난다. 꽃잎은 홑꽃과 겹꽃이 있지만 홑꽃이 더 아름답게 보인다.
접시꽃은 여러해살이풀이며,역사가 오래된 꽃으로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란다고 합니다. 봄이나 여름에 파종하면 그해에는 잎만 무성하고이듬해 줄기를 키우면서 꽃을 피운다, 꽃의 색깔은 붉은색, 분홍과 흰색등 여러가지이고, 꽃잎은 홑꽃과 겹꽃이 있지만 홑꽃이 더 아름답게 보인다고 합니다. 줄기, 꽃, 잎, 뿌리를 한약재로 쓰기도합니다, 마을의 어귀, 길가 또는 담장의 안쪽과 바깥쪽 가리지 않고 잘 적응하고 자라며 할머니들이 좋아하고 한 번 심으면 저절로 번식해서 우리에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보통 2년생이며 때로는 다년생 숙근 초화로 높이는 1~3m 정도 자란다. 줄기는 단단하며 직립한다. 전주에 잔털이 밀생해 있다. 잎은 대형의 심장형이고 긴 엽병이 있고 일반적으로 5~7장으로 깊이 갈라져 있고 둔한 거치가 있다. 꽃은 줄기 중부 이상의 엽액마다 1~2송이가 피며 원추화서는 1m 이상으로 아래서부터 위로 피어 올라간다. 꽃의 직경은 5~7㎝ 정도고 꽃잎 가장자리는 파상 또는 둔한 거치가 있다. 꽃은 흰색, 적색, 연황색, 연홍색, 주홍색, 적자색, 흑홍색, 흑갈색이 있고 홑꽃과 겹꽃이 있다. 개화기는 6~8월에 피며 뿌리는 약용한다. 원산은 북반구 온대에 약 12~15종이 있다.
접시꽃,  씨앗 구하기,
야외의 식당이나, 시골의 담장에 피어 있는 접시꽃을 보면서 좋아하는 색상과 꽃잎을 고른 다음 씨앗을 받아둔다. 씨앗을 취급하는 웹사이트에서 구할 수도 있다. 씨앗이 접시를 닮아서 접시꽃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씨앗은 옆의 사진과 같이 6㎜ 정도의 원형에 두께는 1㎜ 정도다.
준비 및 파종,
접시꽃은 키가 2m 이상 자라므로 구석진 곳이나 밭둑에 심는 것이 좋다. 옮겨 심는 것을 싫어하므로 되도록 오랫동안 기를 수 있는 곳을 선택해 파종한다. 씨앗 심을 곳을 호미로 지름 30㎝ 정도 일구고 퇴비를 한줌 넣어둔다. 2주 후에 씨앗을 3~4개 넣고 흙덮기는 5㎜ 정도 한다. 파종 후 물을 흠뻑 준다. 심는 간격은 40㎝ 정도 유지한다. 자람에 따라 솎아내기를 해 한 구덩이에 두 포기만 자라게 한다.
접시꽃의 파종시기에는 접시꽃은 봄에 파종이 대체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는데요, 씨앗을 뿌리면 이듬해 꽃이 피어나게 되고 노지에 월동하게 된답니다,
[ 주의사항 ]
접시꽃은 옮겨심기를 싫어하지만 전혀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모종의 주변을 삽으로 푹 파내서 뿌리가 덜 다치게 옮겨 심으면 잘 자라는 편이다.
촉규화()·덕두화·접중화·촉규·촉계화·단오금이라고도 한다. 중국 원산이며 길가 빈터 등지에 자생한다. 원줄기는 높이 2.5m에 달하고 털이 있으며 원기둥 모양으로 곧게 선다. 잎은 어긋나고 심장형이며 가장자리가 5∼7개로 갈라지고 톱니가 있다.

꽃은 6월경 잎겨드랑이에서 짧은 자루가 있는 꽃이 피기 시작하여 전체가 긴 총상꽃차례로 된다. 작은는 7∼8개이며 밑부분이 서로 붙는다. 꽃받침은 5개로 갈라지며 꽃잎은 5개가 나선상으로 붙는다. 꽃색은 붉은색, 연한 홍색, 노란색, 흰색 등 다양하고 꽃잎도 겹으로 된 것이 있다. 수술은 서로 합쳐져서 암술을 둘러싸고 암술머리는 여러 개로 갈라진다.

열매는 편평한 원형으로 심피가 수레바퀴처럼 돌려붙으며 9월에 익는다. 뿌리를 촉규근()이라 하고, 꽃을 촉규화라고 하며, 점액이 있어 한방에서 점활제()로 사용한다. 관상용이며 잎·줄기·뿌리 등을 약용한다.
자라는 모습,
접시꽃은 심은 첫해에 뿌리와 잎을 성장시킨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줄기를 키워 꽃을 피운다. 잎을 바짝 땅에 붙여 겨울을 나는 식물이다. 모든 작물들이 그렇지만 어릴 때 풀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가 힘들다. 특히, 접시꽃은 심은 첫해에는 키를 키우지 못하므로 주변 풀과의 경쟁에서 상당히 불리하다. 주변의 풀을 잘 정리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 이듬해는 상황이 사뭇 달라진다. 키를 키우고 잎을 성장시켜 무성한 그늘을 만들면서 풀을 이긴다.
접시꽃 자라는 초기, 파종 4주
풀과 경쟁하는 모습, 파종 6주
겨울을 준비하는 접시꽃, 12월
접시꽃, 6월 말,
씨받기,
접시꽃이 피고 조금 지나면 줄기에 씨앗 뭉치가 달린다. 이 씨앗 뭉치가 잘 마르면서 안의 씨앗을 보존하게 된다. 씨앗으로 이용할 때는 어느 정도 마르기를 기다렸다 받는 것이 좋다. 접시꽃은 모양과 색깔이 여러 가지이므로 씨앗을 받을 때, 색깔과 모양을 기록하면 나중에 도움이 된다.
재배 주의사항,
귀화식물로 화초로 기르는 데 주의사항이 별로 없다. 단지 어릴 때 주변의 풀을 정리해주고 꽃을 보기 위해 한 해를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다. 잎이 무성하고 키가 큰 접시꽃 줄기는 지지대를 세워 묶어준다. 여름 장마철에 닥치는 비바람에 쓰러지는 것을 막아준다. 부용화봉숭아 등과 마찬가지로 퇴비를 주지 않고 기르는 것이 좋다.
화재응용,

길이가 3m나 되는 초화로 중간 부분부터 줄기 위로 향해 꽃을 무수히 달려 피어 올라가고 있는 모습에는 느긋한 아름다움이 있다. 정원 등에 심어져 있는 것을 채집하지만 작은 송이의 것을 골라서 밑에 있는 꽃은 제거하고 위에 있는 꽃이나 봉오리를 살린다. 화기도 키가 낮은 것이 조화를 이루기 쉽고 억새, 베어그라스, 솔새 등 선상의 잎류를 배합시키면 풍정도 좋다. 초화류면 꽃색이나 형태와의 조화를 맞추면서 곁들인다.

물올리기 : 물속 자른 후 자른 곳을 태워 깊은 물에 담근다.

배합 : 억새, 솔새, 산세비에리아, 잎새란, 터어키도라지, 백합류, 옥잠화, 파초일엽, 서양수국, 디펜바키아, 모나르다, 문주란, 몬스테라, 엽란.
씨앗, 열매,
접시꽃은 양지바른 곳에서는 로제트 상태로 겨울을 견디어 내고 이듬해 무성하게 줄기를 곧게 뻗어 잎사귀 사이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데 어려서 열매의 모양이 자동차 바퀴처럼 닮아서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있다.

씨앗이 촘촘하게 바퀴의 타이어모양으로 둘러싸여 여물고 마르면 갈라지고 떨어진다. 어떤 이는 열매의 둥근 모양이 접시를 닮아서 접시꽃으로 불리어졌다는데 꽃의 모양도 접시와 비슷하게 보인다.
구별법,
꽃은 6월경 잎겨드랑이에서 짧은 자루가 있는 꽃이 아래쪽에서 피어 위로 올라간다. 꽃가루가 많아서 벌과 곤충이 즐겨서 찾는다. 멀리서 보면 무궁화꽃과 비슷한 모양이다. 꽃받침은 5개로 갈라지며 꽃잎은 5개가 나선상으로 붙는다. 꽃색은 붉은색, 연한 홍색, 흰색, 등 다양하고 꽃잎도 겹으로 된 것이 있다. 수술은 서로 합쳐져서 암술을 둘러싸고 암술머리는 여러 개로 갈라진다.
접시꽃과 비슷한 꽃이 있는데요. 바로 무궁화를 꼽을 수가 있습니다, 때문에 헷갈리는 분들을 위해 유사종과 구별방법에 대해서도 소개해드려보자면 접시꽃은 꽃받침이 5개로 갈라져나게 되며 꽃잎은 5개가 나선상으로 붙어난다고 해요, 수술은 서로 합쳐져 암술을 둘러싸고 암술머리는 여러개로 갈라져 나게됩니다,
겹꽃 접시꽃이 핀 모양
전해오는 이야기,
흰 접시꽃이 핀 모양
어릴 적 시골에는 유난히 접시꽃이 많았다.

마을에서는 ‘채키화’라는 향명으로 불리어져서 그런 줄 알았으나 한자로 촉규화를 잘못 발음하여 전래되었다고 나중에 알게 되었고, 신라시대부터 최치원이 접시꽃을 소재로 시를 쓴 것이 전해오고 있다. ‘접시꽃 당신’으로 유명한 도종환 시인이 노래한 시의 소재가 바로 이 꽃이라는 것을 알고 더욱 정감을 느끼게 되었다.
접시꽃은 화단에서만 가꾸는 것이 아니라 마을의 어귀, 길가 또는 담장의 안쪽과 바깥쪽 가리지 않고 잘 적응하고 자란다. 할머니들이 좋아하고 한 번 심으면 저절로 번식해서 우리에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줄기, 꽃, 잎, 뿌리를 한약재로 쓴다.
접시꽃은 굉장히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꽃으로도 불리어지는데요, 그도 그럴것이 신라시대의 최치원이 접시꽃을 소재로하여 시를 쓴 것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을 정도라고하니 어느정도로 우리나라에서 오래 알려져있었던 꽃인지 알 수 있겠죠?! 이런 접시꽃은 특징면에서도 굉장히 특이한 부분을 가지고 있는데요. 봄, 여름에 씨앗을 심게되면 그 당해가 아니라 이듬해부터 줄기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것. 바로 이것이 접시꽃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랍니다,
서식지를 살펴보게되면 길가 혹은 빈터에서 자라나며 원산지로는 한국, 시리아, 중국에 해당한답니다, 꽃의 색상은 진분홍, 흰색으로 피어나는 편이며, 높이는 2.5m 정도로 자라난다고 할 수 있어요,
활용법, 먹는법,
​접시꽃 먹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려드려볼게요, 접시꽃을 가장 무난하면서도 확실하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은 물 5L에 흰접시꽃뿌리 100g, 백도라지 100g을 넣고 감초 10조각, 대추 10개씩을 넣어서 끓여주게되면 접시곷을 차로도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답니다,
접시꽃 활용적인 면을 살펴보자면 관상용으로 많이 심기어지기도 하지만 공업용, 약용으로도 많이 쓰여지는 편이랍니다, 약용으로 쓰이게 될 경우에는 꽃, 잎, 뿌리 모두 사용이 가능하며 효능도 꽃의 여러 부위들 마다마다 차이점을 나타낸답니다,
효능,
​앞서서 접시꽃 먹는법에 대해서 알려드렸었는데요,그렇다면 접시꽃 섭취하게 되면 어떤 효능들이 있는 것일까요? 접시꽃은 우선 노폐물과 수분 배출을 시켜주며 수종을 없애는데 큰 도움을 주는 꽃이랍니다, 또한 대장과 소장의 기능을 활성화시켜주고 피부 트러블에도 효과적인 편이라고 알려져있답니다,
접시꽃 꽃말은 단순, 편안(단순한 사랑, 아양떠는 사랑), 다산, 풍요입니다.
다른 꽃,,,
여름철에 피는 재미있는 이름의 꽃,
나팔꽃, 접시꽃, 패랭이꽃, 노루오줌꽃 등 여름철에 피는 재미있는 이름의 꽃을 소개한다. 또한 봉숭아꽃으로 예쁘게 손톱에 물을 들이기도합니다,
카테고리,
출처 & 참고문헌,
[접시꽃 - 시골집의 손님맞이 꽃 (국립중앙과학관 - 우리나라 야생화)]
[한국화재식물도감]
『동의보감(東醫寶鑑)』
『향약채취월령』(안덕균 주해,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83)
『中藥大辭典』(江蘇新醫學院, 上海 科技出版社, 1979)
[[접시꽃 (한국화재식물도감, 하순혜, 탕카)]
[접시꽃 (텃밭백과(유기농 채소 기르기), 2012. 3. 2.,)
[국립중앙과학관 - 우리나라 야생화]
[접시꽃 [hollyhock] (두산백과)
[접시꽃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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