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8일 수요일

합천 해인사,[ 陜川 海印寺 ]

합천 해인사,[ 陜川 海印寺 ]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伽倻面) 치안리 가야산에 위치한 해인사()의 창건 유래 전설. 가야산 남서쪽에 있는 사찰.
지정/ 종목/ 지정번호/ 지정일/ 소재지/ 종류/분류크기/
사적
사적 제504호
2009년 12월 21일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등 지도
사찰
56,469㎡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로서 2009년 12월 21일 사적 제504호로 지정되었다. 신라 제40대 애장왕(哀莊王) 때의 순응(順應)과 이정(利貞)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우두산(牛頭山:가야산)에 초당(草堂)을 지은 데서 비롯된다. 그들이 선정(禪定)에 들었을 때 마침 애장왕비가 등창이 났는데 그 병을 낫게 해주자, 이에 감동한 왕은 가야산에 와서 원당(願堂)을 짓고 정사(政事)를 돌보며 해인사의 창건에 착수하게 하였다. 순응이 절을 짓기 시작하고 이정이 이었으며, 그 뒤를 결언대덕(決言大德)이 이어받아 주지가 되었다. 918년 고려를 건국한 태조는 당시의 주지 희랑(希郞)이 후백제의 견훤을 뿌리치고 도와준 데 대한 보답으로 이 절을 고려의 국찰(國刹)로 삼아 해동(海東) 제일의 도량(道場)이 되게 하였다.
원래 존재했던 가야산 해인사의 창건 유래는 구전되면서 그 생명력을 잃고, 해인사의 대장경판 조성담이 해인사 창건담으로 대체되어 구전되고 있다.
"신라 합천에 사는 이거인(李居仁)은 성품 좋은 이서(里胥)로 눈이 셋 달린 강아지[三目狗]를 주워 애지중지 키운다. 기른 지 3년째 되던 해 가을 삼목구가 갑자기 죽어 장례를 잘 치러 준다. 다시 2년 후 이거인은 갑자기 병이 들어 죽는다. 이거인은 저승에서 삼목귀왕(三目鬼王)을 만나는데, 삼목귀왕은 자신이 예전에 잘못을 저질러 3년 동안 이승의 축생계로 쫓겨났던 삼목구라고 한다.

삼목귀왕은 이거인에게 염라대왕을 만나거든 인간 세상에서 대장경을 조성하려 했지만 목숨이 다하여 이루지 못했다고 하라 한다. 이거인이 그 말을 따름으로써 다시 인간 세상에 돌아와 보니, 실은 한바탕 꿈이었다. 꿈을 깬 이거인은 삼목귀왕이 시킨 대로 공덕문을 짓고 관인(官印)을 받아 기다렸다. 이듬해 신라의 공주 자매가 마마에 걸렸는데, 대장경 화주가 와야만 살 수 있다고 한다. 임금의 명령에 따라 입궁한 이거인은 대단월(大壇越)로 대장경을 조성하여 그것을 해인사로 옮겼고, 공주들의 몸에 들었던 삼목귀왕이 떠나자 공주들의 병도 나았다. 이후 이거인 부부는 극락왕생했다.
1398년(태조 7)에 강화도 선원사(禪源寺)에 있던 고려팔만대장경판(高麗八萬大藏經板)을 지천사(支天寺)로 옮겼다가 이듬해 이 곳으로 옮겨와 호국신앙의 요람이 되었다. 그 후 세조가 장경각(藏經閣)을 확장·개수하였으며, 그의 유지를 받든 왕대비들의 원력(願力)으로 금당벽우(金堂壁宇)를 이룩하게 되었다. 제9대 성종(成宗) 때 가람을 대대적으로 증축했고, 근세에 이르러서는 불교 항일운동의 근거지가 되기도 하였다.

합천 해인사 법보전 비로자나불좌상 경남 합천군 해인사 법보전에 있는 조선의 불상. 높이 125cm. 보물  제1777호.

이 사찰은 창건 이후 일곱 차례의 대화재를 만나 그때마다 중창되었는데, 현재의 건물들은 대개 조선 말엽에 중건한 것들로 50여 동에 이른다. 창건 당시의 유물로는 대적광전(大寂光殿) 앞뜰의 3층석탑과 석등 정도가 있을 뿐이다. 특히 국보 제32호인 대장경판과 제52호인 대장경판고(大藏經板庫) 및 석조(石造) 여래입상(보물 264)은 유명한데, 불가사의한 일은 몇 차례의 화재를 당하면서도 팔만대장경판과 장경각만은 화를 입지 않고 옛 모습 그대로 있는 일이다. 그 밖에 주요 문화재로 보물 제518호인 원당암 다층석탑 및 석등, 보물 제128호인 반야사 원경왕사비(般若寺元景王師碑)도 있다.

경남 합천 해인사 전경(출처: 게티이미지 코리아)

불가에서는 부처님[], 경전[], 스님[]을 세 가지 보물[]이라 하고,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통도사를 불보()사찰, 고려조 16대 국사를 배출한 송광사를 승보()사찰, 그리고 팔만대장경판()을 봉안하고 있는 해인사()를 법보()사찰이라 부른다. 그러나 원래부터 해인사에 팔만대장경판이 모셔진 것은 아니었다. 대장경판은 원래 경남 남해에서 새기고, 강화도에 옮겨져 선원사()에 보관하고 있던 것을 조선 태조 7년(1398)에 해인사로 옮겨왔다.

통도사(通度寺:佛寶사찰)·송광사(松廣寺:僧寶사찰)와 더불어 삼보(三寶)사찰 가운데 하나로 법보(法寶)사찰로 유명하다. 현재는 불교학원인 해인총림(海印叢林)이 있어 많은 학인(學人)들로 붐빈다. 말사(末寺)는 150여개에 달하고 부속 암자로 백련암(白蓮庵)·홍제암(弘濟庵)·약수암(藥水庵)·원당암 등이 있다.
해인사의 창건 연기()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최치원의 『신라가야산해인사선안주원벽기()』(900)로 중국에서 석덕[]을 사사한 순응()과 이정()이 해인사를 세웠다고 했다. 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설화 창작으로 이어진다. 『가야산해인사고적()』(943)에는 순응과 이정이 양나라 보지공()의 법을 전해 받고 돌아와 해인사를 창건했다고 했다.

왕후가 등창이 나 두 스님이 준 오색실로 병을 낫게 하는 모티프가 있는데, 이는 위 이야기와 유사하다. 그런데 1662년(현종 3)과 1874년(고종 11)에 쓰인 『가야산해인사고적』이나 조선 후기 작자 미상의 『동국승니록()』에는 이거인을 주인공으로 한 해인사 장경 연기를 더욱 흥미롭게 전하고 있다.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실린 <해인사의 유래>라는 설화는 염라왕의 ‘해인()’이라는 도장을 받아온 이 진사가 용의 득천을 돕고 해인사를 세운 것으로 변이되었다. 대장경이 판각된 인연을 담은 문헌 설화가 구전되면서 해인사 연기설화로 변이된 결과라 하겠다.
해인사가 자리하고 있는 가야산은 신라시대부터 국가적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산악으로 정견모주(正見母主)를 산신(山神)으로 모셨고, 신라 말의 염세적 천재 최치원(崔致遠, 857∼?)이 이 산으로 들어와 산신이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현재 해인사 진입부에 국사단(國師壇)이라는 건물이 서 있는데, 가람을 수호하는 토지신을 모신 곳이다. 이는 가야산이 산악신앙, 지신신앙, 풍류도 등 토착신앙의 성지임을 알려주는 흔적들이다. 반면 가야산의 이름은 석가모니가 큰 깨달음을 이룬 인도의 부다가야(Buddha Gaya)에서 유래한 것으로, 후대에 들어온 불교가 토착신앙들을 아울렀던 역사적 궤적을 보여준다.

해인사는 802년 의상의 증손뻘 제자인 순응(順應)에 의해 창건되어, 의상계 화엄종의 중요 사찰인 화엄십찰이 되었다. 후삼국시대에는 왕건 편에 섰던 '북악파'의 핵심으로, 930년 왕건의 복전(福田)이었던 희랑(希朗)대사가 크게 중창하여 전성기를 맞았다. 조선 초 팔만대장경을 옮겨온 후 1488년 대적광전과 장경판전, 종루, 불이문(不二門)과 26동의 요사(寮舍)채 등을 중건함으로써 현재와 유사한 모습을 갖추었다.

가람 전체는 크게 3단으로 나뉘는데, 아랫단은 일주문(一柱門)-봉황문(鳳凰門)-불이문이 연달아 배열된 진입부이다. 일주문에서 봉황문에 이르는 경사진 한 줄기 길의 양 옆에 의도적으로 심은 키 큰 소나무들이 자연스럽게 벽을 이루고 그 끝에는 봉황문이 위치한다. 봉황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으로는 국사단이 있고, 그 왼쪽 위로 불이문(해탈문)으로 오르는 계단이 중첩된다. 3개의 문과 그 사이 공간들은 매우 흡인력 있게 구성되어 최고의 진입공간을 이룬다.

봉황문에서 해탈문으로 향하는 길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국사단이다. [출처 : 관조스님]

중간단은 구광루(九光樓)와 대적광전을 중심으로 승방들이 배치된 구역이다. 강당인 구광루는 정면 7칸의 긴 건물로, 예전에는 아래층의 동쪽 두 번째 칸을 통해 중심 마당으로 출입할 수 있었다. 중심 마당에는 육중한 삼층석탑이 서 있는데, 석탑은 마당의 정중앙에서 동쪽으로 약간 치우쳐 있다. 구광루 밑을 통과하면 마당의 동쪽 모서리에 서게 되는데, 이때 동쪽으로 치우친 석탑이 오히려 대적광전의 중앙에 놓인 듯 보인다. 그러나 1990년대 중창불사 때 구광루의 누하 출입을 막아버렸고, 구광루의 기단과 건물의 격식이 변화되어 이처럼 치밀한 공간 계획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화엄종 최고의 부처는 비로자나불이고, 비로자나불을 모신 주불전을 대적광전이라고 부른다. 해인사 대적광전은 원래 2층 전각이었으나 1917년 단층으로 재건하였다. 때문에 내부에 모신 거대한 불상에 비해 천장이 낮아 공간이 답답해 보인다. 대적광전 서쪽으로는 나한전 등 보살전들이 산재하여 예불공간을 이룬다.

대적광전

가장 뒤편의 높은 단은 팔만대장경판을 보관하는 장경판전 영역이다. 정면 15칸의 긴 건물들이 남쪽과 북쪽에 나란히 놓이고, 그 사이의 동쪽과 서쪽에 정면 2칸의 작은 건물들이 세워져 일곽을 이룬다. 남쪽 창고를 수다라장이라고 하고, 북쪽 건물을 법보전(法寶殿)이라 부르는데 이 두 건물에는 팔만대장경판들이 보관되어 있다. 또한 동서쪽 작은 창고에는 해인사에서 자체 제작한 판본들을 보관하고 있다.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사간판전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사간판전, 합천 해인사에서 간행한 서적의 목판을 보관하는 경판고 건물. 조선 전기 1488년(추정), 정면 2칸 측면 1칸의 건물 2동, 맞배 지붕, 1488년경, 국보 제52호.

4개의 건물이 이루는 동서로 긴 마당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낯선 외부공간으로, 해인사 진입로의 좁고 긴 공간을 90도 틀어놓은 것 같은 모습이다.

수다라장과 법보전은 1488년 창건된 건물로, 유일하게 현존하는 조선 초의 창고 건물이다. 정면 15칸, 측면 2칸의 각 165평 규모이며, 날카로운 초각을 가진 초익공(初翼工)계 구조이다. 지붕은 우진각지붕이며, 내부 환기를 위해 기둥 사이 각 칸 위아래에 살창을 설치하였다. 이 살창은 크기와 위아래 조합 배열이 두 건물의 앞뒷면 모두 다르게 짜여져 있다.

장경판전인 법보전

경판전은 보물 중의 보물인 대장경판을 보관하는 창고이기 때문에 통풍과 환기가 가장 중요하다. 환기창의 모양과 크기를 각 면마다 달리한 까닭도 내부 공기의 원활한 흐름을 고려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내부 바닥은 흙바닥 아래에 숯과 횟가루, 소금을 섞어 다져 습도를 조절하고 해충을 방지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동·서 판고 건물은 아예 벽면 전체를 살창으로 처리하였다.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장경판전은 국보 제32호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을 보관하는 경판고 건물이다. 중정을 사이로 둔 장방형의 두 건물은 장경판전이며, 사이에 보이는 전면 2칸의 작은 건물은 해인사에서 간행한 서적의 목판을 보관한 사간판전이다. 조선 전기 1488년(추정), 장경판전은 정면 15칸 측면 2칸의 건물 2동(사간판전은 정면 2칸 측면 1칸), 1488년경, 국보 제52호.

이러한 여러 가지 장치를 통해 경판들을 오랜 세월 원형대로 보존할 수 있었다. 실제 실내 환경을 측정한 결과, 내부 온도는 외부에 비해 0.5∼2도 정도 낮게 유지되며, 습도 역시 5~10% 정도 낮게 유지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경판전은 경판들을 보관하는 내부 판가들을 건물 구조체와 일체화하는 방법을 취해 구조적 안전도 꾀하고 있다.

장경판전 내부

해인사 연기설화(緣起說話)는 사찰 창건과 고려대장경 판각이라는 두 가지 설화가 문헌과 구비를 넘나들며 전해진 것이다. 이 가운데 해인사의 대장경이 판각된 이야기 관련 설화는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삼목구와 ‘이거인’이라는 역사적 인물들을 내세우면서 명부와 인간계 어디나 팔만대장경이 담은 불법의 가없는 법력이 미친다는 주제를 드러내고 있다.
해인사 연기설화는 엄격하게 따진다면 해인사 장경 연기설화라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겠다. 그리고 『가야산해인사고적』에 실린 작품은 명부와 이승을 오가는 환상적, 전기적 성격의 서사 전개와 불교적 의미화를 적절하게 수행하면서 소설적 면모까지 취하고 있어 주목된다.

합천 해인사 중정. 중앙의 삼층석탑과 석등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요사, 우측에는 구광루가 자리하고 있다.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9세기 초창, 석탑과 석등을 제외한 건물들은 조선 후기에 중창. 

합천 해인사 삼층석탑 전경:
1) 합천 해인사 중정. 중앙의 삼층석탑과 석등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요사, 우측에는 구광루가 자리하고 있다.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9세기 초창, 석탑과 석등을 제외한 건물들은 조선 후기에 중창.

해인사 대적광전 앞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탑. 3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갖춘 모습

2)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 대적광전 앞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탑. 3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갖춘 모습이다.

합천 해인사 홍제암, 가야산에 있는 절. 해인사의 산내암자로서 창건연대 및 역사는 전래되지 않고 있으나, 사명대사가 입적한 곳으로 유명하다. 보물 제1300호.

합천 해인사 홍제암: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가야산에 있는 절. 보물 제1300호. 해인사의 산내암자로서 창건연대 및 역사는 전래되지 않고 있으나, 사명대사가 입적한 곳으로 유명하다.

합천 해인사 사명대사 부도 및 석장비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홍제암에 있는 조선시대의 비와 부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45호. 홍제암은 해인사 일주문의 서편 200m 지점에 위치,

합천 해인사 사명대사 부도 및 석장비: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홍제암에 있는 조선시대의 비와 부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45호. 홍제암은 해인사 일주문의 서편 200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데, 사명대사가 임진왜란이 끝난 후 이곳에서 은거하다가 1610년(광해군 2)에 입적하자, 광해군이 비를 세우게 했다고 한다.

해인사 홍제암에 있는 사명대사의 탑. 보물 제1301호.

합천 해인사 홍제암 사명대사탑: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 홍제암에 있는 사명대사의 탑. 보물 제1301호.

홍류동 해인사 입구 농산정 가야산 맑은 물이 홍류동 계곡에 구비쳐 흐르고, 세월의 풍상에 씻긴 바위들의 부드러운 곡선이 유월 햇살에 눈부시다.

참조항목,
역참조항목,
카테고리,
출처 ^ 참고문헌,
[네이버 지식백과] 합천 해인사 [陜川 海印寺] (두산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doopedia.co.kr
[출처 : 관조스님]
[합천 해인사 (한국 미의 재발견 - 불교건축, 2004...,)
[한국의 미 산책 ]
[대한민국 구석구석]
[게티이미지 코리아]
[대한민국 여행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해인사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
[사찰문헌설화에 나타난 소설담론성 연구(어문연구43, 어문연구학회, 2003년)
[東國僧尼錄
[가야산해인사지(지관, 가산불교문화연구원, 1992)
[한국 구비문학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1988) 1-1, 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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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7일 화요일

운문사 (雲門寺), 1

운문사 (雲門寺), 1
비구니 수행도량,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호거산(虎踞山)에 있는 이다. 운문댐 남쪽에 위치하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부속 암자로는 사리암 등이 있다.

대웅보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 2기는 대웅전이 위치한 자리의 지세가 행주형(行舟形)의 흉맥이라 하여 그 지세를 누르기 위해서 세운 것이라는 전설이 있다. 입구에 천연기념물 제180호로 지정된, 매년 막걸리를 부어주는 행사가 있는 처진 소나무가 있다.

비구니 수행도량이라 사찰의 절반 정도는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되고 대웅보전, 비로전, 명부전, 만세루 정도만 개방된다.
560년(진흥왕 21)에 창건된 것을 608년 원광국사(圓光國師)가, 신라 말기에는 보양국사(寶壤國師)가 중건하였다. 1105년(고려 숙종 10) 원진국사(圓眞國師)가 중창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당우 일부가 불탔고, 현재 대웅보전(보물 835)·작압전(鵲鴨殿)·미륵전·오백나한전·금법당(金法堂)·만세루(萬歲樓)·관음전·요사채 등이 있다.
수려한 경관속의 운문사가는 솔밭길,
경내에는 보물 제193호인 금당 앞 석등, 보물 제208호인 동호(銅壺), 보물 제316호인 원응국사비(圓應國師碑), 보물 제317호인 석조여래좌상, 보물 제318호인 사천왕석주(四天王石柱), 보물 제678호인 삼층석탑, 천연기념물 제180호인 운문사의 처진 소나무가 있다.
운문사에서 가장 유명한 처진 소나무,
운문사 인근에는 유원지가 있다. 운문면 소재지에서 운문사로 올라오는 길에는 펜션과 민박이 즐비하고 운문사 입구에는 캠핑장과 인공암벽체험장이 있다. 인근의 운문과 연계하여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명산은 사찰을 품고있다. 명산의 자락에 자리한 고찰, 대찰. 등산도 하고 수려한 경관속의 사찰도 둘러보고 문화유적 답사도 할 수 있는 사찰,
대중교통만 이용해서 방문하기에는 많이 빡세다. 청도역에서는 운문면이 완전 반대편에 있어서 철도 교통만으로 접근하기가 어렵다. 본 경내 외에 여러 암자들을 가려면 운문사 버스 터미널에서 내린 후 한참 걸어가야 한다.
신라 시대인 560년(진흥왕 21) 대작갑사(大鵲岬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 591년(진평왕 13) 원광(圓光)이 크게 중건하였다. 
고려가 건국되고 나서, 937년(태조 20)에는 보양(寶壤)이 중창하고 작갑사(鵲岬寺)라 하였다. 이 때 왕이 보양의 공에 대한 보답으로 쌀 50석을 하사하고 ‘운문선사(雲門禪寺)’라고 사액한 뒤부터 운문사라고 불렀다.
운문사 입구 주차장에 운문사 버스 터미널이 있다. 운문사터미널에서 동대구경산언양으로 가는 경산버스의 완행 시외버스와 청도 읍내로 들어가는 3번 농어촌버스가 있긴 한데, 동대구/언양/청도행은 배차간격이 안습. 한때 가장 많이 다녔던 대구 쪽 기점은 대구광역시 관내 시외버스 터미널 중에서 가장 낙후된 남부정류장이었다.

2016년 12월 12일 통합 동대구터미널 개장과 함께 남부기점 노선들의 대다수가 경산으로 단축되어 대구 방면은 크게 안습이 됐다. 경산행은 1시간에 1대 꼴로 있는 편이지만, 버스 터미널 사용료 등의 문제 때문인지 모든 남부기점 노선들이 동대구터미널로 이전하지 못했다.
운문사, 부처님오신날, 식사준비 모습, (공양간)
가장 편수가 많은 경산행은 자인, 금천면 동곡리, 운문면 방음리, 대천리, 신원리 경유로 소요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 중간에 남산면(갈지리, 갈고개)을 경유하는 시간대가 있고, 용성면(곡란리)을 경유하는 시간대가 있으므로 중간 경유지를 확인할 것. 대개 남산면을 거쳐서 간다. 남부정류장이 폐쇄된 2016년 12월 12일 이후에는 언양/울산완행 및 청도 0번을 제외한 나머지 남부착발 노선들이 경산착발로 단축되어 동대구터미널에서는 1일 4회 운행하는 언양 완행의 중간 경유지로만 운문사로 다니며, 운문사에서 출발하는 동대구터미널 방면은 이보다 더 횟수가 적어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빼도박도 못하고 대부분은 경산에서 내린 후 시내버스를 이용(혹은 사월역/정평역 환승)해야 한다.

동대구/경산 - 운문사 노선은 모두 경산버스가 운행한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철도를 이용할 예정이라면 경산역 하차 후 경산터미널로 이동하여 운문사행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운문사에서 남부정류장을 앞두고 연료를 채우러 만촌2동 대일버스 차고지 옆에 있는 담티주유소에 잠시 들어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 때 한정으로 비공식적이지만 담티역에서 중간 하차할 수 있었다.[3] 물론 동대구터미널 이전 이후에는 무열대를 앞두고 고모로에 진입해서 운행하므로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이다.
소나무,
희귀한 처진 소나무가 자리잡고 있다. 꽤나 거대하고 굵은 이 소나무에게 매년 봄, 비구니들이 막걸리를 주고 있다. 은근 성장에 도움이 되는듯 하다.
 바로 밑에서 보면 이런 모습, 1년에한번 마걸리를 준다고 합니다,
"유명한 운문사 솔밭길을 걸으며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운문사 금당 앞 석등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93호로 지정되었다.
운문사는 청도군 운문면 호거산(虎踞山)에 있는데 신라 때인 560년(진흥왕 21)에 신승(神僧)이 창건한 뒤 여러 차례 중창하였다
운문사 암자 사리암(邪離庵),
사리암(邪離庵)은 고려 초의 고승 보량(寶樑) 국사가 930년에 창건하였고, 1845년(헌종11)에 정암당(靜庵堂) 효원대사가 중창하였다. 1924년에 다시 증축한 뒤 1935년에 중수하였다.
사리암입구, 표지석,
이곳은 특히 나반존자(那畔尊者) 기도처로 널리 알려져 있읍니다,
나반존자는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뒤 미륵불이 세상에 나타나기까지 중생을 제도하려는 원력을 세우고 천태산 위에서 홀로 선정을 닦았다고 한다.
나반존자는 법당인 관음전 바깥쪽 높은 계단 위에 있는 천태전에 봉안되었다.
사리암 천태전,
사리암 천태전
높은 계단위 천태전에 나반존자, 후면에는 독성탱화와 산신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나반존자,
사업하시는 분들이 많이 찾을만큼 영험한 사리암!
영화배우 엄앵란이 기도했던 사리암!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운문사에 딸린 작은 암자인 사리암이다. 사리암은 운문사에서 남쪽으로 3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계곡에서 1 km 정도 떨어진 해발 500 m 정도의 산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경사가 심한 바위 절벽에 위치하고 있다. 전각으로는 관음전을 비롯하여 천태각, 산령각, 요사채 등이 있다. 특히 천태각 아래 사리굴은 운문사 4굴 중 하나로 손꼽히는 기도처이다.
신라 진흥왕 때 운문사를 비롯하여 5곳에 절이 세워졌는데 그때 남쪽에 세워졌던 천문갑사는 아니지만 그 역할을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리암은 고려초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구한말 1845년에 승려 효원이 중창하였다. 이후 나반존사상을 봉안하면서 나반존자의 기도처로 알려졌다. 나반존자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은 성자를 일컫는 말로 독성이라고도 부른다. 미륵불이 출현하기까지 중생을 제도하라는 가르침에 따라 열반에 들지 않고 미륵불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나반존자부처님을 모셔놓은 천신각,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산신각으로 가는길 [출처] 청도 운문사 사리암|
운문사에서의 울컥거림과 공양준비하는 모습들의 잔상이 강했던지라...서리암에서는 그냥 평이한 느낌뿐이었다. 다음 기회에는 사리암에서의 108배를,,,
운문사 주차장에서 사리암 주차장 까지는 걸어서 약 1시간정도.. 다시 사리암 주차장에서 사리암까지는 빡센 등산로 길로 약 40분 정도...왕복 걷는 시간이 약4시간 정도는 잡아야 합니다.
나한 존자상이 있는 옆의 바위 암자다. 여기서도 기도와 절을 불자들이 열심히,,,
운문사야 아름다운 절집으로 널리 알려지 있는 사찰이라 더 이상 미사여구가 필요 없는 곳이고 이곳에서 한참이나 올라가야 만나는 사리암은 이번에 처음 들렸는데 많이 놀랐습니다.운문사에 10명의 관광객이 찾아 둘러보고 있다면 이곳 사리암에는 100명의 기도객이 찾아서 붐비는 곳이네요. 대구 팔공산 갓바위가 기도처로 뮤명하여 밤낮 사람들로 붐비는데 이곳 사리암도 만만찮습니다.
사리암(邪離庵)이란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버린다는 뜻의 이름으로 이곳에서는 나반존자(那畔尊者)의 기도처로서 아주 유명한 곳입니다. 나반존자는 석가여래 사후 미륵불이 출현하기 전까지의 공백기에 이 세상의 구원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곳 사리암이 나반존자의 기도처로서 가장 유명하다고 합니다.
 소나무와 겹쳐 황소뿔이,,,
운문사와 사리암은 목적, 마음, 훌훌 비우고 한가하게 거니는 것으로 눈에 보이는 실상을 반눈으로 잠그고 물소리와 새소리를 벗하여 참으로 여유 마음껏 느끼고 하는것도!!!
운문사, 사찰내 소나무 방향 한컷,
각자 신발들에는 주인들만 알 수 있는 표식이 그려져 있읍니다... 
사리암주차장에서 사리암까지는 먼저 경사길을 조금 걸어가면 돌계단이 나타나는데 이런 계단 1008개를 올라가서야 사리암에 도달합니다.
1008개의 계단을 올라가는 것이 내게는 힘들었지만 늦가을에 또 가보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 입구주차장 ∼ 운문사 ∼ 사리암주차장 ∼ 사리암 : 왕복 10.5km(소요시간 4시간 40분)
사리암 장독대가 단아한 자태를 풍기며 옹기종기,
출처 ^ 참고문헌,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안내문, 청도 운문사, 2020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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