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28일 금요일

관세음보살 (觀世音菩薩), 1

관세음보살 (觀世音菩薩), 1

불·보살은 이와 같은 자비가 광대하므로 대자(大慈) 대비(大悲)라 하며 이 대자대비로써 한량 없는 중생들을 제도하는 것이다. 곧 중생에게 인자한 마음으로 즐거움을 주면서 제도하고 또 가없이 여기는 마음으로 고통을 덜어 주면서 구제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자비는 불·보살이 다 지니고 있고 또 광대한 대자 대비를 모두 갖추셔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므로 어느 불·보살에게나 다 공통한 것임을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도 특히 관세음보살만을 지칭하여 자모요 대비보살이라 하며 또 대자 대비에서 으뜸은 으례 관세음보살이라 하는데, 그것은 명호 그대로 세간(世)의 소리(音)를 관찰(觀)하는 보살이기 때문이다.

관세음보살은 원래 관세음·관음 등으로 한역(漢譯) 하였고 또는 관세자재(觀世自在) ·관자재(觀自在)라고도 하였다. 이것은 범어의 아바로기데스바라(AVAL0KITESVARA)를 한역한 것으로 오늘날에는 관세음보살이라고 통칭하고 있으며 관음은 관세음의 준말이다.

이 관세음이라 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이 보살의 이름을 부르는 이가 있으면 그 부르는 음성을 관세음보살이 두루 잘 관찰하여 들으시고 구제하여 준다는 뜻이요 관자재라 한 것은 세상을 잘 관찰하면서 모든 중생의 고통을 덜어 줌과 동시에 즐거움과 행복을 베풀어 줌에 있어 자유자재하다는 뜻이다.

또 이 명호는 자비로 중생 제도를 위해 나투는 몸의 양상에 따라 갖가지로 구분하고도 있다. 곧 육도(道)중생을 교화 제도하기 위하여 관음의 화현을 밝힌 육관음이 있고, 33신(身)에 배대하여 불리워진 33 관음이 있으며, 그 밖에 밀교에서는 25 관음·28 관음·40관음 등의 이름이 있다.

이렇게 자음자재하게 세간 중생을 구제하므로 구세대사(救世大士)라고도 하는데 이 구세에 관계되는 관음의 경전은 〈관음경〉을 위시하여 무려 50여 경전에서 직접 간접으로 말씀하고 있다.

이 관세음보살은 과거에 이미 성불하신 부처님인데, 지금은 오직 자비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보살의 몸으로 향하(向下)한 분이라는 것이다. 〈관음삼매경〉에서 부처님은 말씀하기를 「관음은 나보다 먼저 성불하였고 명호는 정법명여래(正法明如來)이시며, 나는 그 부처님의 고행 제자였다」고 했으며,,,

〈천수경〉에서 부처님은 아난에게 말씀하기를 「이 관세음보살은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아승지겁 전에 이미 성불하신 정법명여래이시다. 대비의 위력으로 중생용 제도하기 위하여 다시 지금은 보살의 몸을 나타내고 있다. 너희들은 항상 공양 예찬하면서 그의 명호를 일심으로 부르라. 한량 없는 복을 얻고 한량없는 죄가 소멸될 것이며, 목숨을 마치면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자 나리라」고 했다.

이렇게 과거에 이미 성불하신 부처님이 다시 보살로 향하하여 있음은 오직 대자 대비의 원력으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니, 어찌 그 여느 불·보살보다도 자비가 수승하다 하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이와 같이 수승한 자비를 지닌 관세음보살은 고해(苦海)에서 헤매는 중생들이 지극한 마음으로 그 이름과 경문(經文)과 주문(呪文)을 외무고 생각하면, 어떻게 그 자비를 드리워서 즐거움을 주거나 괴로움을 없애주면서 소원이 성취되게 하는가를 <관음경〉과 〈능엄경〉에 의거하여 개략적으로 설명하여 보자.

무수한 중생들이 생사의 고통을 받아 육도를 돌고돌아 쉴 사이가 없으므로 관세음보살은 이러한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몸으로 그에 알맞게 나투어서 법을 말하여 그들로 하여금 성취되게 한다.

만일 보살로서 삼매에 들어 무루의 법을 닦아 수승한 지해(知解)가 뚜렷이 나타난 이에게는 부처의 몸을, 유학(有學)으로서 고요하고 묘하게 밝아서 그 묘함이 뚜렷이 나타난 이에게는 독각(獨覺)의 몸을, 유학으로서 12인연을 끊고 인연이 끊어진 성품에 수승한 묘함이 뚜렷이 나타난 이에게는 연각(緣覺)의 몸을, 유학으로서 4제(四諸)가 공하여지고 도제를 닦아 멸제에 들어가려 할 적에 수승한 성품이 뚜렷이 나타난 이에게는 성문(聲聞)의 몸 동을 각각 나투어서 설법하여 해탈케 한다.

만일 모든 중생들이 음욕의 마음을 밝히 깨닫고 범치 아니하여 청정하려 하면 법왕(贊王)의 몸을, 하늘의 주인이 되어 모든 하늘들을 통솔하려 하면 제석(帝釋)의 몸을, 몸이 자재하여 시방에 다니려 하면 자재천(自在天)의 몸을, 몸이 자재하여 허공에 날아다니려 하면 대자재천(大自在天)의 몸을, 귀신을 통솔하며 국토를 보호하려 하면 천대장군(天大將軍)의 몸을, 세계를 통솔하여 보호하려 하면 4천왕(天王)의 몸을, 하늘 궁전에 나서 귀신을 부리려 하면 4천왕천의 태자의 몸등을 각각 나투어서 설법하여 성취케 한다.

만일 모든 중생이 국왕이 되기를 좋아하면 국왕의 몸을, 성바지의 주인이 되어 세간에서 추앙함을 좋아하면 장자(長者)의몸을, 명언을 이야기하며 청정하게 살기를 좋아하면 거사(居士)의 몸을, 정치하고 벼슬하기 좋아하면 재상의 몸을, 술수를좋아하고 위생적으로 살아가려 하면 바라문(婆羅門)의 몸을, 남자가 출가하여 계율을 지니려 하면 비구의 몸을, 여자가 출가하여 금계를 지키려 하면 비구니의 몸을, 남자가 5계를 받아 지니기를 좋아하면 우바새(優婆塞)의 몸을,

여자가 5계를 지키며 살려고 하면 우바어(優婆夷)의 몸을, 여인이 출세하여 집과 나라를 다스리려 하면 왕후나 고관의 아내 몸을, 어떤 남자가 일생 동안 여인을 범하지 않으려 하면 동남(童男)의 몸을, 처녀가 일생 동안 처녀 몸을 유지하려 하면 동녀(童女)의 몸 등을 각각 나투어서 설법하여 성취케 한다.

만일 하늘과 용과 야차와 건달바와 아수라와 긴나라와 마후라가 들이 그의 무지에서 벗어나려 하면, 각각 그들과 같은 몸을 나투어서 설법하여 성취케 한다. 만일 중생들이 사람이 되기를 바라면서 닦으면 사람의 몸을, 사람 아닌 것(非人)들이 그의 무리에서 벗어나려 하면 모두 그 몸을 나투어서 설법하여 성취케 한다

또 중생들이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불에 들어가도 태우지 못하게 하고 물에 표류해도 빠지지 않게 하며, 귀신이나 중생들이 해치지 못하게 하고 천재지변의 해를 입지 않게 하며, 감옥과 형구에서 풀려나게 하고 탐냄 성냄 어리석음을 멀리 여의게 하며, 자식 없는 이에게는 자녀를 점하고 아내를 구하는 이에게는 아내를 얻게 하며 내지 삼매나 열반을 구하는 이에게는 삼매와 열반을 얻게 한다.

〈능엄경〉에서는 「관세음보살 한 분만을 부르는 복덕과 항하모래만치 많은 보살의 이름을 부르는 이의 복덕이 똑같다」고했다. 이와 같아서 관세음보살이 모든 중생구제를 위해 드리우는 자비는 한이 없고 끝이 없다. 이 관세음보살의 자비야말로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여야 다할 것이다. 


범능스님 관세음보살 노래,



관음신앙(觀音信仰)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불교신앙의 하나. 관세음보살을 일심으로 염불하여 현세의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영험을 얻고자 하는 신앙형태이다. 관세음보살은 광세음보살(光世音菩薩) ∙ 관세음자재보살 이라고도 하며, 줄여서 관음보살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인 보살이 위로는 불도를 구하고 아래로는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겠다는 서원을 가지는 데 대하여, 관음보살은 특히 대자대비(大慈大悲)를 서원으로 하는 보살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관음신앙은 주로 화엄경. 법화경. 아미타경. 능엄경을 중심으로 하여 전개된다. 화엄경에 의하면, 관세음보살은 남쪽 바닷가 광명산(光明山)에 머물러서 대자비경(大慈悲經)을 연설하여 널리 중생을 일깨워 제도하고 있다.

대비법문(大悲法門)과 광명의 행을 성취하여 일체중생을 교화하고 성숙하게 하며, 항상 모든 부처님 처소에 머물면서 사섭법(四攝法)으로 중생을 받아들여 제도할 뿐 아니라,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어디에서나 중생과 같은 몸을 나타내어 감싸고 제도한다. 그의 서원은 오직 일체중생을 섭취함(攝取一切衆生)에 있다. 이는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험한 길의 공포와 열뇌의 공포, 어리석음의 공포, 얽매임의 공포, 죽음의 공포와 빈궁의 공포, 불활(不活)의 공포, 쟁송(諍訟)의 공포, 대중의 공포, 살해의 공포, 악도(惡道)의 공포, 윤회의 공포 등 모든 공포를 떠나게 한다. 또, 법화경에 의하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마음에 간직하고 염불하면 큰 불도 능히 태우지 못하고, 홍수에도 떠내려가지 않으며, 모든 악귀도 괴롭힐 수 없다.

칼과 몽둥이는 부러지고 수갑과 향쇄 ∙ 족쇄는 끊어지고 깨어진다. 또, 중생의 마음속에 있는 불안과 두려움을 제거하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삼독(三毒)을 여의게 하며, 아들이나 딸을 바라는 이에게는 뜻에 따라 자식을 얻게 한다. 그리고 방편의 힘으로 33응신(三十三應身)을 나타내어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아미타경에서는 아미타불의 왼쪽 보처(補處)로서 아미타불의 뜻을 받들어 중생을 보살피고 도와줄 뿐 아니라,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자들을 인도하는 구실을 담당하고 있다. 능엄경의 경우, 관음의 현세이익과 중생구제의 내용은 법화경의 설과 거의 같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 관세음보살을 원통교주(圓通敎主)라 칭하고 32응신이라 표현하는 것은 법화경이 아닌 능엄경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모든 경전에 나타나 있는 관세음보살의 공통점은 세상을 구하고 생명있는 자들에게 이익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절대적 자비심인 무연대비(無緣大悲)를 중생에게 베풀어서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권능을 실행하는 힘이 관세음보살이다. 그러므로 모든 불행한 중생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지송하고, 항상 마음속에 새겨서 공경하고 예배하면 해탈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즉, 어떠한 고난이나 재액에서도 관세음보살을 칭념하면 반드시 해탈을 얻게 된다는 것인데, 그 칭념을 통해서 관세음보살과 중생을 일체감을 형성하고, 하나가 된 세계에서 자비로운 원력(願力)작용하여 소원을 성취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관세음보살의 종류로는 성관음(聖觀音) ∙ 천수관음(千手觀音) ∙ 십일면관음(十一面觀音) ∙ 여의륜관음(如意輪觀音) ∙ 마두관음(馬頭觀音) ∙ 준제관음(准提觀音)등으로 분류되는 육관음과 이에 불공견색(不空羂索)을 더하여 칠관음이라 하며, 백의(白衣) ∙ 엽의(葉衣) ∙ 다라(多羅)∙대세지(大勢至)등의 각종 관음을 더하여 32관음 ∙ 33관음이라고 하였다. 이 가운데 성관음은 본신이고 다른 것은 보문시현(普門示顯)의 변화신(變化身)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관음신상사를 통해서 볼 때 가장 많이 나타나는 것은 십일면관음과 양류관음(楊柳觀音) ∙ 천수관음이다.

십일면관음
11개의 얼굴을 가진 관세음보살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실라시대부터 관세음보살의 신앙과 함께 이 보살의 조상이 유행하였으며, 그 대포적인 것이 석굴암의 조각상을 들수 있다.

<십일면관음신주경, 十一面觀音神呪經>에 의하면, 11면이란 본얼굴을 제외하고 두부에 부가된 11가지 모습을 지칭한 것이다. 경에는 두부 전면에 3면이 있고, 그 좌우에 각각 3면, 그리고 후면에 1면, 정상에 1면을 가진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이를 석굴암관음상처럼 부조로 나타낼 쌔는 전면에 화불化佛 1면, 좌우에 각 3면, 정상에 3면, 그 바로 귀에 1면을 표현하게 되는데, 이는 보조의 경우 어쩔 수 없는 일반적인 형태이다. 이 11면은 관세음보살의 다양한 기능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앞의 3면은 자상(慈相; 자비로이 웃는 모습)으로서, 선한 중생을 보고 자심慈心을 일으켜 이를 찬양함을 나타낸 것이다.

왼쪽의 3면은 진상瞋相;성낸 모습으로서 약한 중생을 보고 비심悲心을 일으켜서 고통에서 구하려 함을 나타낸 것이며, 오른쪽의 3면은 백아상출상白牙上出相; 이를 드러내어 미소짓는 모습으로서 정업淨業을 행하고 있는 자를 보고는 더욱 정진하도록 권장함을 나타낸 것이다. 뒤의 1면은 대폭소상大暴笑相;크게 웃는 모습으로서 착하고 악한 모든 부류의 중생들이 함께 뒤섞여 있는 모습을 보고 이들을 모두 포섭하는 대도량을 보이는 것이며. 정상의 불면불면; 부처님의 모습은 대승근기大乘根機를 가진 자들에 대하여 최상의 진리를 설함을 나타낸 것이다. 이 11면을 본얼굴과 합하면 12면이 된다. 이 12면 중 11면은 방편을, 본 얼굴은 진실을 상징하며, 11면은 중생의 교화를 위한 행위와 관련이 있고 본얼굴은 불변의 지혜를 상징하고 있다.

즉, 선한 중생을 교화할 때는 자상을 쓰고, 악한 중생을 교화할 때는 진상을 쓰고, 선악이 뒤섞인 중생들을 교화할 때는 대폭소상을 , 정업의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는 백아상출상으로써 한다. 그러나 이 사바세계에는 선한중생이 적고 악한 중생이 많으르로, 먼저 진상으로 그들의 마음을 조복調伏하여 선심善心을 일으키게 한 뒤 자상으로써 그들을 교화한다. 그리고 한 중생을 교화람에 있어서도 정해진 일정한 상이 없다. 때로는 11면을 다 드러낼 때도 있고 1면만 드러낼 때도 있다. 또, 불면은 1면, 자상과 진상과 백아상출상을 각각 3면. 폭소상을 1면으로 한 데에는 까닭이 있다. 불면이 하나인 까닭은 과보가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상이 3면인 까닭은?,
첫째,고통만 있고 즐거움이 없는 중생에게 즐거움을 얻게 하려는 것이고,
둘째, 복은 있지만, 지혜가 없는 중생에게 지혜와 신통력을 갖추게 하려는 것이며,
셋째, 지혜는 있지만 통달하지 못한 중생에게 지혜화 신통력을 갖추게 하려는 것이다. 진상이 3면으로 되어 있는 것은 첫째는 고통스러운 과보를 떠나려는 욕심 때문에 오히려 고통을 낳는 행위에 빠진자를 보고 노하는 것이고, 둘째는 즐거움의 과보를 받고자 하지만 즐거움의 원인이 되는 선행을 닦을 줄 모르는 자를 보고 노하는 것이며 셋째는 적정寂靜한 이치를 구하려 하면서도 도리어 산란한 경계에 집착하고 있는 자를 보고 노하는 것이다.

백아상출상이 3면인 것은 몸과 마음과 뜻의 삼업三業으로 아무런 죄를 짓지 않는 자의 청정함을 찬양하기 위함이다. 대폭소상은 선악이 뒤범벅된 뭇 중생들을 통틀어 비웃는 까닭에 1면으로 되어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전래되는 십일면관음의 설화 중에는 신라의 국사 경흥憬興의 병을 고친 이야기가 널리 전승되고 있다.

삼랑사三郞寺에 머물러 있던 경흥은 갑자기 병이 들어 여러 달이 경과하였다. 하루는 여승이 나타나서 “경흥의 병이 근심으로 인해서 생긴 것이니 즐겁게 웃으면 나을 것”이라 하고, 열한가지 모습으로 변하면서 춤을 추었다. 그 변하는 모습이 너무나 기괴하여 턱이 떨어질 지경으로 웃고 나자 경흥의 병은 나았다고 한다. 이 여승이 십일면관음의 화신이었다.


양류관음
버드나무 가지를 든 관세음보살로서 33응신 중 하나이다. 관세음보살이 중생의 소원을 좇아 이루게 하는 것이 마치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에 쓸리는 것과 같다고 하여 양류관음이라 하였다. 이 관음은 6세기 전게에 번역된 <다라니집경바羅尼集經>에서 최초로 보인다. 우리나라에는 보통 바다 위에 떠 있는 연꽃모양의 대좌 위에 큰 원형 광배光背를 지고 서 있는 모습으로 많이 묘사된다. 흩날리는 옷자락에 두손에는 각각 감로병과 버드나무 가지를 쥐고 발아래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선재동자善財童子,일명南詢童子를 지그시 내려다보는 모습을 휘하고 있다.

양류관음이 남순동자와 함께 묘사되어 있어서 민간에서는 남순동자를 관음이 점지하는 아들로 착각하고, 흔히 아들을 기원할 때 이 관음에게 기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남순동자는 보타락사산에서 관세음보살의 대비법문大悲法門을 경청하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또한, 이 관음이 흰 옷을 입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에는 백의양류관음이라고 부른다. 백의양류관음으로 유명한 작품은 15세기에 그려진 무위사無爲寺극락전에 벽화와 해인사이 양류관음도가 특히 유명한다.


천수관음
27개의 얼굴과 천개의 손, 천개이 눈을 가진 관세음보살로서 천수천안 관세음보살 또는 대비관음이라고도 한다. 육관음 중 두 번째 관음이며. 온몸이 황금색이다. 그러나 조형 또는 그림에서는 천재의 손, 천재의 눈을 묘사하기 어려우므로, 줄여서 두 준과 두 손을 중심으로 양쪽에 각각 20개의 손을 묘사하고 손바닥마다 한 개의 눈을 나타낸다. 이 40개의 손은 한손마다 각각 25종류의 중생을 제도하므로 40x25의 천수가 되고, 따라서 눈도 천안이 된다고 보고 있다. 이것은 일체중생을 제도하는 큰 작용이 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특히 지옥의 고통을 해탈하게 하여 모든 소원을 성취시킨다고 한다.

천수관음은 654년에 한역된 <다라니집경>에서 나타나는데, 여러 관음들 중에서 가장힘이 있는 수제자로 꼽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8세기경부터 천수관음이 널리 신앙괴어 청수보살의 불화가 많이 그려졌다. 특히. 경주 분황사芬皇寺의 천수관음에 대한 신앙은 <천수경>의 보급과 함께 더욱 보평화 되었고,천수주千手呪의 영험과 함께 그 신앙이 오늘날에까지 활발하게 전승되고 있다


역사
백제-우리나라에 관음신앙이 전래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뿌리를 내린 것은 6세기밀경의 삼국시대로 보인다. 부여 군수리사지軍守里寺址에서 출토된 금동관음보살입상이 6세기 후반의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그뒤 7세기초에 걸쳐서 조성된 백제의 관음보살상은 현재까지 적지 않은 수가 전하고 있다. 또, 제나라 육과陸果의 관세음응험기에 의하면, 백제 승 발정發正이 502~519년 사이에 중국으로 유학가서 30여년을 머무르다가 고국으로 돌아오는 도중 월주지방越州地方의 관음도량을 참배하였다고 한다.

일본측 사료에도 595년 백제의 공장工匠을 시켜 관음상을 조각하였다는 기록과 백제 사문 일라日羅가 583년에 일본으로가서 일본의 태자 성덕과 관세음보살에 관해서 문답하였다는 등의 기록이 있다. 또한 일본 백제사의 본존이 관음상인 것도 백제에 관음신앙이 성행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관음신앙의 중심경전이 법화경이라는 점으로 미루어볼때, 현광玄光이 진나라의 혜사慧思에게서 법화경을 배우고 법화삼매를 증득하였다는 것과 무왕 때의 혜관慧觀이 법화경을 독송하였다는 것 등은 관음신앙의 유포를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것임을 살필 수 있다 고구려의 경우에는 고구려로 유학온 일본 승 행선行善이 고구려에서 관음보살을 염송하였다는 것이 일본의 기록에 나타나고 있을뿐 그밖의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신라-신라의 경우에는 <삼국유사>에서 많은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소판무림은 관음상 천부를 조성하고 아들 얻기를 기원하여 자장慈藏을 낳았다. 신라불국토설의 확립에 지대한 구실을 한 자장의 탄생설화에 관음신앙이 얽혀 있다는 접은 관음신앙이 불국토사사의 형성에 어떤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신라에 크게 관음신앙을 확산시킨 고승은 의상義湘이다. 의상은 당나라에서 귀국한 직후, 관음보살의 진신眞身을 친견하고자 동해의 관음굴로 가서 백화도량발원문白樺道量發願文을 짓고 관음기도를 했다.

발원문은 “세세생생 관음을 친견하기 위해서 귀명歸命하되, 관세음보살이 아미타불을 이마 위에 이고 계심과 같이 관음대성을 이마 위에 모시고 영원한 본사本師로 삼겠다.” 는 신앙고백과, 일체중생이 관음의 이름을 생각하여 함께 원통삼매圓通三眛에 들기를 기원하는 내용을 요지로 삼고 있다. 기도한 지 7일 만에 좌구座具를 새벽 물 속에 띄웠더니 천룡天龍 등 8부신八部神이 관음굴 속으로 그를 인도했다. 굴 속에서 공중으로 향해 예배하자 수정 염주 하나가 손에 쥐어졌고 동해용으로부터 여의주 한 알을 받았지만 관음의 진신은 친견할 수 없었다. 다시 7일 동안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 정진한 뒤 관음진신을 친견하게 되었다.

“쌍죽雙竹이 나은 곳에 불전을 지으라” 는 관음의 지시에 따라 의상은 낙산사를 창건하고 친견한 진신의 모습과 같은 관음상과 수정 염주, 여의주를 불전에 모신 뒤 떠나갔다. 뒤에 원효元曉도 관음진신을 친견하기 위해서 낙산사를 찾았는데, 도중에 원효는 벼를 베고 있는 흰 옷 입은 여자를 보았다. 희롱삼아 그 벼를 달라고 하였더니 여인은 벼가 열매 맺지 않았다고 희롱섞인 대답을 했다. 또 가다가 다리 밑에 이르렀는데, 속옷을 빨고 있는 여인을 만났다. 원효가 먹을 물을 청하자 여인은 핏빛어린 물을 떠 주었다. 그 물을 더럽게 여긴 원효는 냇물을 다시 떠서 마셨는데 소나무에 앉았던 파랑새가 “제호醍醐를 싫다고 하는 화상, 제호를 싫다고 하는 화상”이라 하면서 조롱섞인 노래를 불렀다. 잠시 뒤 여자와 새는 사라지고 짚신 한짝만 남아 있었다.

낙산사에 도착한 원효는 관음상 밑의 냈가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짚신 한짝이 있음을 발견한 뒤, 전에 만났던 여자가 관음굴로 들어사서 진신을 친견하려 하였으나 풍랑이 크게 일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그 뒤 원효는 남해를 면한 현재의 금산錦山이 관세음보상의 수월도량水月道量인 동시에 화엄경 보광전회普光殿會의 관음회상觀音會上임을 확신하고 이곳에서 기도를 올려 관음진신을 친견한 뒤, 683년에 절을 짓고 보광사라 하였다. 이 절은 현재 보리암菩提庵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우리나라 3대관음성지의 하나이다.

신라 관음신앙의 대포적인 영험담은 조신調信의 설화이다. 조신은 서라벌 세규사세규사에 속하여 있는 명주 장사장사의 관리인이 되었다. 이곳에서 고을 태수의 딸을 보고 애정을 느낀 조신은 애타는 마음으로 영험 있는 낙산사 관음보살에게 낭자와 부부연을 맺게 하여줄 것을 지성껏 빌었으나, 그녀는 얼마 뒤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갔다.

조신은 소원을 이루어 주지 않은 관음보살을 원망하여 날이 저물도록 슬피 울다가 관음상 밑에서 쓰러져 잠이 들었다. 문득 낭자가 기쁜 얼굴빛으로 문을 열고 들오와서, 일찍이 조신을 사모하였으나 부모의 명으로 억지로 다른 사람에게 시집갔으나, 이제 그와 부부가 되고자 함을 고백했다. 그뒤 40년을 함께 살아 다섯 자녀를 두었지만, 가난 때문에 굶주림에 시달렸다. 10년 동안 거지생활을 하다가 명주 해현령을 지나는데, 굶주림에 지친 열다섯살의 큰아이가 죽었다. 길가에 묻은 뒤, 옥현에 이르러 초가를 짓고 살았지만, 그들 부부는 이미 늙고 병들고 굶주려서 자리에서 일어나지고 못했다.

열 살된 딸아이가 얻어오는 음식으로 영명하였지만 그 딸도 마을의 개에게 물려 자리에 눕게 되었다. 가족이 모두 물면서 옛 추억과 50년의 인연, 현실의 고통 등을 이야기하고, 부부는 각기 아이 둘씩을 데리고 헤어져 살자고 다짐한다. 막 헤어져서 길을 떠나려 할 때 꿈을 깨었다. 아침이 되니 조신의 수염과 머리털은 모두 흰색으로 바뀌었다.

실제로 한평생 신고를 겪은 것처럼 세상사에 뜻이 없어졌고 탐욕의 마음도 없어졌다. 이 설화에는 조신의 갈애渴愛를 꿈으로 풀어서, 인생이 긴 꿈임을 깨우친 것으로 신라 불교신안의 특징을 뚜렷이 담고 있다. 현실에 대한 단순한 소원의 성취가 아니라. 정법正法에 근거를 둔 관세음보살의 참된 자비를 신라적으로 수용한 대표적인 예이다.


고 려
고려초기에는 금강산 보덕굴에서 관음진신을 친견한 회정懷正이 강화의 보문사普門寺을 서해의 대포적인 관음기도처로 만들었다. 회정은 그곳의 굴에 봉안되어 있던 불상을 살펴보았다. 가운데 좌상은 석가모니불이고 좌보처는 미륵보살, 우보처는 제화갈라보살이었고, 나머지는 18나한상과 송자관음이었다.

회정은 이 22존 중 3존불과 18나한은 굴 숙에 모시고, 송자관음은 따로 관음전을 지어 모시게 한 다음 낙가산 보문사라 부르게 하였는데. 이 송자관음에는 자식을 원하는 사람의 소망을 이루게 하는 신묘한 영험담이 많이 전하고 있다. 또한, 1185년에 병마사 유자량庾資諒이 낙산사 관음굴 앞에서 분향, 배례하자, 청조靑鳥가 꽃을 물고 날아와서 갓 위에 떨어뜨린 고사가 전해되고 있는데, 지금도 이 낙산의 굴 앞에서 지성으로 예배하면 총조가 나타난다고 한다.

특히, 고려시대의 관음신앙에서 주목되는 것은 충숙황 때의 승려 요원了圓이 저술한 <법화영험전>이다. 수록된 1백여편의 영험설화 중 3편만이 신라와 고려의 영험담이며 나머지는 모두 중국인에 관한 것이지만, 이 영험전은 조선시대에도 보성 개흥사開興寺, 고창 문수사文殊寺, 안변 석왕사釋王寺 등의 사찰에서 재판되었는데, 이는 일반인의 생활 속에 관음신앙이 널리 유포되어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관음신앙은 또한 대비원大悲院, 보통원普通院, 제위보濟危寶 등 구호사업기관 운영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

조 선
이성계는 왕이 되기 전에 큰 뜻을 품고 팔도의 명승지를 다니면서 기도를 올렸는데, 남해의 보광사에서 백일관음기도를 드린 뒤 꿈에 관세음보살로부터 금척金尺을 하사받았다. 등극한 뒤 태조는 불은佛恩에 감사하는 뜻에서, 보광산을 금색 비단으로 둘러싸려 하였으나, 비단의 양이 엄청나고 오래지 않아서 썩게 된다는 신하의 말에 따라 산 이름을 금산錦山으로 바꾸어서 천만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는 비단산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산 1660년에는 이 절을 왕실의 원당願堂으로 삼고 보리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이곳에서 관음기도를 지성으로 하면 반드시 올바른 깨달음인 보리를 성취할 수 있다는 데서 기인되었다. 이 보리암에도 수많은 영험담이 전래되고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을 도와서 대승을 거두게 했던 삼련三蓮비구니에 얽힌 설화이다. 삼련은 묘련妙蓮. 보련寶蓮. 법련法蓮 등 세 비구니의 이름이다. 전라도 광양에 살았던 황유초黃維肖에게는 선옥仙玉이라는 딸이 있었다. 그녀는 출가하여 보련이 되었고, 선옥의 유모는 묘련, 선옥의 몸종은 법련이 되었으며, 그들의 스승은 지월指月이었다. 어느 알 이들은 “대도大道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관세음보살의 신력神力 과 가피를 입지 않으면 안되리라.” 고 생각하여 남해 보리암을 찾았다. 그곳에서 1천일을 관음기도를 하다가 어느 날 불상좌대 밑에 있는 고문서를 발견했다. 그 문서에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우리 세 사람은 연화도인蓮花道人을 모시고 십년간을 이 곳에서 관음성호觀音聖號를 부르며 공부하여, 마침내 관음대성의 자비롭고 미묘한 성상聖相을 친견하였다. 기쁨과 감격에 넘치어 세세생생 이곳에 와서 연화도인을 모시고 공부하기를 맹세한다. 정덕무인구월正德戊寅九月 연화도인 지월의 제자 성운性雲. 성련性蓮. 성월性月. 근기謹記”. 이 글에 적힌 연화도인은 현세의 은사 지월이고, 성운은 묘련, 성련은 보련, 성월은 법련으로 화현한 것이다. 세비구니는 더욱 신심을 굳혀서 정진하고 천일의 정진을 회향하여 자재한 신통력을 얻게 되었다. 그 뒤 그들은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손자병법을 익히고 해산열도海山列島의 지세와 해류를 살피는 한편, 거북선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뚜껑을 씌운 배를 만들어 타고 이순신과 함께 군사전략을 숙의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보련은 이순신의 막하에서 참모 겸 지휘자의 구실을 하여 싸움마다 대승을 오리게 하였고, 다른 두 비구니는 뚜껑 배를 타고 왜적을 섬멸하였다. 뒤에 조정에서는 보련에게 자운선의장군紫雲宣義將軍이라는 직함을 내렸다고 한다. 또, 조선 중기의 이창해李滄海는 제주목사의 부임을 위해서 배를 타고 가던 도중에 태풍을 만나서 일본의 지마도志摩島에 이르러 40여년을 살았는데, 어머니와 동생이 관음기도 덕분에 풍랑을 타고 고국으로 돌아와서 동생과 해후하게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그가 제주도로 떠나던 날 어머니는 낙산사 관음상 앞에서 관음의 대비주大悲呪를 외우며 기도하였고, 매년 풍랑을 만났던 날이면 명복을 기리면서 관음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조선시대 말기에 김포에는 판서 벼슬에까지 올랐던 심씨가 살고 있었다. 나이 육순이 넘도록 자식도 없이 살다가 아내까지 사별하게 되자 그 고적함을 달랠 길이 없었다. 그는 보문사로 가서 지성을 다하여 관음기도를 올리면서 아내를 맞게 하고 아들을 점지하여줄 것을 축원하였다.

심판서가 회향하던 날 꿈에 관음보살이 나타나서 배필이 될 여자를 만나게 해주었고, 이들은 아들을 낳아서 단란하게 살다가 해로하였다고 한다. 이밖에도 조선시대의 수많은 고승들은 관음기도를 즐겨 행하였다. 조 선 후기로 갈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지는데, 특히 천수대비주를 통한 기도가 널리 성행하였다.

관음성지 觀音聖地
관세음보살을 통불교적으로 신앙하고 있는 우리나라에는 3대관음성지인 낙산사. 보리암. 보문사 외에도 숱한 관음영험도량이 산재되어 있다. 특히, 금강산에 자리잡은 보덕굴普德窟과 설악산의 오세암五歲庵, 논산의 관촉사灌燭寺, 성덕산 관음사 등은 모두 특이한 이적을 보였던 관음성지이다. 또한, 서울 근교에도 예로부터 관음의 영험도량이 있었다.

동쪽에는 창신동의 안양암安養庵. 서쪽에는 옥천암玉泉庵 해수관음이 있으며, 남쪽에는 관악산 삼막사三幕寺가 있다. 이 세 곳은 오늘날에도 기도참배객들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이들 관음도량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의 명산대천에는 숱한 관음연기와 함께 수많은 관음영험담이 전해지고 있다. 금강산 보덕굴은 우리나라 관음신앙의 홍포弘布에 크게 영향을 미쳤던 영험처로서 관음의 화신인 보덕각시가 출현하였던 곳이고, 고구려의 화상 보복보덕이 관음의 진신을 친견한 도량이며, 고려 의종 때의 고승인 회정이 천수주력千手呪力으로 기도하여 관음의 원통삼매를 성취한 영지이기도 하다.

설악산 오세암은 조선시대 초기에 관세음보살을 어머니로 생각하는 다섯 살 난 어린아이가 겨우내 혼자서 암자에 머물러 있었지만, 관음이 어머니처럼 보살펴주어서 무사히 생명을 건졌을 뿐 아니라 도통하게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용문산 상원사上院寺는 세조에게 백의관음의 모습을 나타내어 세조로 하여금 선정을 베풀도록 회개시킨 곳이며, 은진미륵의 관음상에서는 나라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 온몸에서 땀이 흐른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주요사찰에는 대부분 원통전 또는 관음전이라는 전각을 별도로 건립하고, 그 속에 관음보살을 봉안하고 있다. 보통 관세음보살상은 왼손에 봉오리 상태의 연꽃을 들고 오른손에 감로병을 들고 있다. 왼손에 든 연꽃은 중생이 본래 갖춘 불성佛性을 상징한다. 그 꽃이 활짝 핀 것은 불성이 드러나서 성불成佛하였다는 것을 뜻하나, 현재의 꽃봉오리는 불성이 번뇌에 물들지 않고 장차 필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또 감로병에는 감로수가 들어 있는데. 이 감로수는 불사不死를 뜻한다. 영원히 죽음이 없는 불사의 물로써 중생의 열뇌熱惱를 깨끗이 씻어주고 사악한 기운을 서기瑞氣로 바꾼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또, 관음의 머리에 쓴 보관寶冠에는 부처님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부처는 아미타불이다. 관음은 아미타불을 본사本師로 삼고 향상 모신다고 하였으므로 이를 조형화하여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원통전의 후불탱화로서 주로 아미타삼존탱화를 모시게 되는 것도 여기에서 연유한 것이다.


관음현상기 觀音現相記
1481년 세조 7년에 최항崔恒이 경기도 양평 용문산 상원사上院寺에 나타난 관세음보살을 보고 그 때의 관경을 기록한 책. 1권 1책. 목판본. 1461년에 세조가 경기도지역을 순시하다가 상원사에 유숙하였는데, 그날 관세음보살이 나타났고 상서로운 빛과 아름다운 음악이 들리다가 한참 만에 흩어졌다.

이에 세조는 크게 기뻐하여 그 절에 우상優賞을 내리고 죄인들을 사면하였으며, 정부의 관원들을 축배를 올려 칭하稱賀하였다. 그리고 훈부에서는 관음보살상을 만들고 상원사를 중창하여 봉안하였다. 또 왕은 그때의 장면을 그린 그림을 국내에 두루 반포하게 하고, 초항에게 명하여 이 책을 짓게 하였다. 이 책은 상원사와 우리나라의 관음신앙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규장각도서에 있다.








대자대비 하신 부처님께 귀의 합니다_
대자대비 하신 부처님 법에 귀의 합니다_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 합니다, _^0^_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 합니다_
거룩한 부처님 법에 귀의 합니다_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 합니다, _^0^_


출처 ^ 참고문헌, 
[한국의 미] 7-고려불화-(중앙일보사, 1981)
[고려불화의 연구] (동화출판공사, 1984)
[한국의 미] 16-조선불화-(중앙일보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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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와왕, [ 金蛙王 ]

금와왕, [ 金蛙王 ]

역사를 군주의 정치관련 본기와 신하들의 개인 전기인 열전, 통치제도, 문물, 경제, 자연 현상 등을 내용별로 분류해 쓴 지와 연표 등으로 기록하는 편찬 체재. 현전하는 최초의 기전체 문헌인 삼국사기.
유형/ 시대/ 출생 - 사망/ 성격/ 성별/
인물
고대/초기국가
미상 ~ 미상
생몰년 미상. 동부여의 왕. 금와(金蝸)라고도 표기함.

서기전 1세기에 활동한 것으로 보이며, 그의 행적은 고구려 시조인 동명성왕의 신화를 전하고 있는 ≪삼국사기≫·≪삼국유사≫, 그리고 이규보(李奎報)의 <동명왕편 東明王篇>에 전해지고 있다.

삼국사기(권13) / 고구려본기 동명왕 원년조, 역사를 군주의 정치관련 기사인 본기, 삼국사기.

"{삼국사기(권13) / 고구려본기 동명왕 원년조, 역사를 군주의 정치관련 기사인 본기와 신하들의 개인 전기인 열전, 통치제도, 문물, 경제, 자연 현상 등을 내용별로 분류해 쓴 지와 연표 등으로 기록하는 편찬 체재. 현전하는 최초의 기전체 문헌인 삼국사기}.

부여왕 해부루(解夫婁)는 늙도록 아들이 없어 산천에 후사를 구하러 다녔다. 그러던 중 곤연(鯤淵)이라는 연못가의 이상한 돌 밑에서 금빛나는 개구리(또는 달팽이) 모양의 아이를 발견하고 그를 하늘이 준 자식이라 생각하여 데리고 가서 키웠다.

금와라는 이름은 바로 금빛나는 개구리 모양을 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 뒤 태자로 책봉되어 해부루를 이어서 부여의 왕이 되었다. 그리고 태백산 남쪽의 우발수(優渤水)에서 하백(河伯)에게서 쫓겨난 하백의 딸 유화(柳花)를 발견하고 궁중으로 데려왔다.

그런데 유화가 이상하게도 알을 낳자 이를 버리게 하였다. 그러나 곧 알의 신비함을 인정하고 유화에게 돌려주었는데, 이 알에서 주몽이 탄생하였다. 그의 일곱 아들들이 주몽을 시기하여 그를 처치할 것을 건의하였지만 금와는 듣지 않고 주몽으로 하여금 말을 기르게 하여 그 뜻을 시험하고자 하였다.

그 뒤 주몽이 달아나자 그를 추격하는 군대를 파견하였지만 잡지는 못하였다. 주몽이 고구려 건국을 위하여 남쪽으로 떠난 후에 유화가 24년에 죽자 태후(太后)의 예로서 장사를 치러주었다. 그의 사후 왕위는 아들인 대소(帶素)에 의하여 계승되었다.

금와왕 설화, [ 金蛙王 說話 ]
동부여()의 왕인 금와()의 탄생 설화.
분류
문학 > 이상적인물형 > 군은(君恩)형
• 갈래 : 전설
• 시대 : 삼국이전
• 신분 : 왕족
• 지역 : 기타
• 출처 : 삼국유사 ()
• 내용 :
기원전 59년 4월 8일 아침, 하늘이 열리면서 천제가 다섯 마리의 용을 타고 홀승골성으로 내려와 나라를 세웠다. 국호를 북부여, 이름을 해모수라 하였고, 아들을 낳았는데, 부루라 이름지었다. 해모수왕에 이어 해부루왕이 북부여를 다스릴때였다. 어느날 해부루의 대신 아란불의 꿈에 천제가 나타났다. “장차 내 자손으로 하여금 이곳에 나라를 세우도록 할터이니, 너는 동해가에 가섭원이란 곳으로 가거라. 땅이 기름져 왕도로 삼기에 적당할 것이다.” 그리하여 아란불은 왕에게 권고하여 그곳으로 도읍을 옮기고 국호를 동부여라 하였다. 그 뒤 북부여에서 동명왕이 졸본주를 도읍으로 정하여 졸본부여를 세웠으니 이것이 고구려왕조의 시작이다. 그런데, 해부루에겐 근심이 있었으니, 바로 늙도록 아들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산천에 제사를 지내 대를 이을 아들을 달라고 빌었다.

그날도 왕이 종일토록 기도를 올리고 해질무렵 귀가를 할 때 였다. 갑자기 왕이 탄 말이 곤연이란 연못에 이르자 커다란 돌을 보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멈춰섰다. 이를 본 왕은 이상히 여겨 사람을 시켜 그 돌을 옮기게 했다. 그랬더니 그곳에는 개구리처럼 생긴 황금빛 사내아이가 있는게 아닌가! 왕은 기뻐하며 하늘이 내려주신 아들이라 기뻐하며 말했다.“하늘이 내려주신 아들이로구나. 그 모습이 금개구리와 같으니 금와라 하면 어떻겠느냐.” 그리하여 그날부터 금와를 곁에 두고 길러 금와가 청년이 되자 해부루는 그를 태자로 삼아 자신의 뒤를 잇게 하였다. 부루가 죽자 금와가 왕이 되었고, 금와왕 이후 태자 대소가 나라를 이었으나 고구려의 무휼왕이 쳐들어와 동부여를 정복했다. 그로써 동부여는 멸망하게 되었다.

『삼국사기』 권13, 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 제1 시조 동명성왕조(始祖東明聖王條)와 『삼국유사』 권1, 기이(紀異) 제1, 동부여 고구려조에 나타나 있는 금와왕의 탄생에 얽힌 문헌설화이다. 위의 두 책에 실려 있는 설화 내용은 거의 일치한다.

부여왕 해부루(解夫婁)가 늙도록 아들이 없어 산천에 제사하고 왕위를 이을 아들[嗣子]을 구하였는데, 하루는 왕이 탄 말이 곤연(鯤淵)에 이르러 큰 돌을 보고 마주 대하여 눈물을 흘렸다.

이를 보고 왕이 이상히 여겨 사람을 시켜 그 돌을 들추어 보니 그 밑에 한 어린 아기가 있는데, 빛은 금빛 같고 모습은 개구리와 같았다. 왕은 크게 기뻐하며, 이것은 하늘이 대를 이을 아들을 주신 것이라 생각하고 거두어 이름을 금와(金蛙)라고 하였다. 금와가 장성하자 태자를 삼고 해부루가 죽은 뒤 왕위를 잇게 하였다.

「금와왕설화」는 인간 생명의 용출(湧出)로서의 지생관(地生觀)을 바탕으로 하여 천생관(天生觀)과 대립된다. 이는 또한 자연 발생적 인간 기원을 이야기하여 「견훤설화(甄萱說話)」류의 인위토생적(人爲土生的) 기원론과 대립된다. 한편, 금와왕은 고구려 시조 「동명왕신화」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금와왕은 즉위한 뒤 태백산 남쪽 우발수(優渤水)에서 한 여자를 만나 물으니, 그 여자는 본시 하백(河伯)의 딸로 이름은 유화(柳花)인데, 천제의 아들 해모수(解慕漱)와 사통(私通)하여 부모에게 내쫓기어 우발수에 살고 있었다. 금와가 유화를 데려왔는데, 햇빛이 유화의 몸을 따라다니며 비추었다.

도읍을 옮겨 새로 동부여를 창업한 해부루는 늙도록 아들이 없었다. 

그로 인하여 태기가 있더니 마침내 닷 되들이만 한 알을 하나 낳으니, 금와는 이를 내다 버리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개·돼지·소·말 들이 이 알을 피하여 먹지 않으며, 새들이 보호하려 들자 왕 자신이 알을 깨뜨리려 해도 깨뜨리지 못하게 되니 왕은 알을 어미에게 되돌려 주었다. 이 알에서 태어난 아기가 바로 고구려의 시조 주몽(朱蒙)이다.

부여의 왕 해부루(解夫婁) 때의 재상(宰相) 아란불(阿蘭弗)이 에 천제(天帝)를 만났는데, 천제가 하기를 "내 자손으로 하여금 이 곳에 나라를 세우게 할 터이니 너희들은 이 곳을 피하여 동해 부근의 가섭원(迦葉原)으로 왕도(王都)를 옮기도록 하여라"라고 하였다. 아란불은 곧 왕에게 권하여 그 곳으로 천도(遷都)를 하고 국호(國號)를 동부여라고 하였다.
해부루는 슬하에 아들이 없어 산천에 정성을 다해 제사를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곤연(鯤淵)이라는 곳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타고 있던 말이 큰  앞에 서서 눈물을 흘렸다. 왕이 이상히 여겨 돌을 굴려 보니 그 곳에서 금빛을 두른 개구리 형상의 아이가 나왔다.

왕은 이를 하늘이 내린 축복이라 여기고 그 아이의 이름을 금와라 짓고 고이 길렀다. 이후 금와는 자라서 태자가 되었고, 해부루가 죽은 뒤에 왕위를 계승하였다. 

동부여는 북부여의 왕 해부루가 천제의 명에 따라 도읍을 동해 바닷가 가섭원으로 옮겨 세운 나라이다. 뒷날 태백산(太白山) 남쪽의 우발수(優渤水)에서 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를 데려다가 방에 가두었더니 내리쬐는 햇볕을 받고 잉태하여 알을 낳았는데, 그 알에서 뒤에 고구려의 시조가 된 주몽(朱蒙:동명왕)이 나왔다.

해부루가 나라를 옮긴 이유는 북부여의 도읍에 천제의 자손, 곧 주몽이 나라를 세울 것이라는 천제의 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금와왕은 동부여를 세운 해부루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금와왕은 후에 주몽의 어머니인 유화를 우발수에서 발견하여 궁에 가두었고, 주몽이 태어난 후에는 그의 양육자가 된다. 아들들이 주몽을 두려워하여 죽이자고 했지만 그는 주몽을 시험하기 위해 말을 기르도록 한다.

주몽이 남쪽으로 떠나 고구려를 세운 뒤 동명왕 14년 8월에 유화가 죽자 금와왕은 태후의 예를 갖추어 장사를 지내고 신묘를 세워 준다. 이렇듯 금와왕은 문헌 기록상으로 보면 <주몽신화>의 조연으로 등장한다. 금와왕 스스로 주연인 이야기는 그의 탄생과 왕위 계승에 관한 이야기뿐이다.

이 신화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동명왕편(東明王篇)」 등에 전해지는데 내용상 큰 차이는 없다. <금와왕신화>에서 의미 있는 부분은 둘인데, 하나는 기자치성(祈子致誠)이고 다른 하나는 금와라는 이름의 유래인 ‘곤연의 큰 돌 아래서 나온 금빛 개구리 형상의 아이’이다.

기자치성은 일찍이 건국신화에서부터 나타난다. <단군신화>에서 웅녀는 신단수 아래서 아이를 기원한다. 이때 숭배의 대상은 단수, 곧 나무이다. 해부루는 곤연이라는 연못 안 또는 연못가에 있는 큰 바위에서 기자치성을 드린다. 말이 큰 돌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신화적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곤연이 제사의 장소이고 큰 바위가 숭배의 대상이므로 이는 곧 큰 바위에 빌었다는 뜻이다. 큰 바위는 오늘날까지도 기자석, 여음석, 남근석, 미륵바위 등으로 불리면서 널리 기자치성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금와왕은 바위에 기원하여 얻은 아들, 곧 산천이 점지한 아들이라는 신화적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

<금와왕신화>의 핵심 화소는 금개구리이다. 『삼국사기』에는 금와(金蛙)를 금와(金蝸)로 쓰기도 한다고 했지만, 초점은 달팽이가 아니라 개구리이다. 이 개구리는 아이의 형상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동부여를 상징하는 신화적 동물로 보인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에 따르면 유리왕 29년 6월에 모천(矛川)에서 검은 개구리와 붉은 개구리가 무리지어 싸우다가 검은 개구리가 이기지 못하고 죽은 일을 두고 검은 색은 북쪽의 색이므로 북부여가 패망할 징조로 해석하고 있다. 여기서 북부여는 금와왕을 이어 대소왕이 통치하고 있던 동부여를 가리킨다. 이 기사에서 개구리는 단지 시끄러운 양서류가 아니라 특정 세력을 상징하는 신화적 동물이다.

개구리는 신화적으로는 물, 달, 여성적 원리를 상징한다. 그래서 개구리는 하천 주변의 평야지대에 거주하며 농경에 종사하는 종족의 상징체계 속에 자주 등장한다. 동이계의 신화적 인물인 예(羿)의 처 항아(姮娥)가 불로장생을 원하는 남편을 위해 서왕모의 약을 훔치고는 달로 도망쳐 두꺼비가 되었다는 신화에서 알 수 있듯이 달은 두꺼비, 곧 개구리와 깊은 관계가 있다. 또, 여러 신화에서 개구리는 비를 예고하거나 비를 내리게 하는 동물로 등장한다. <금와왕신화>의 금개구리는 금와가 동부여의 수신계 집단을 상징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금와를 발견한 해부루는 북부여에서 온 해모수의 아들로, 해[日]나 밝음[光]의 상징체계를 지닌 집단, 다시 말하면 태양을 중심으로 한 천신계 집단의 수장이다. 고구려 <주몽신화>에서 천제의 아들 해모수는 아침에 내려와 정사를 보고 저녁에 승천한다고 하여 천왕랑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다. 해모수는 태양신이 인격화된 존재이다. 이 해모수의 아들이 북부여의 해부루인데, 이는 동부여를 세운 주도 세력이 북부여 및 고구려의 주도 세력과 마찬가지로 천신계 집단이라는 것을 뜻한다.

천신계 집단에 속하는 해부루가 수신계 집단을 상징하는 금와를 발견하여 왕위계승자로 삼았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해부루와 금와가 같은 혈통이 아니라는 데서 알 수 있듯 동부여는 서로 다른 세력이 연합한 국가였다는 뜻이 숨어 있다. 그런데 동부여 <금와왕신화>에는 이 연합 관계가 고구려 <주몽신화>처럼 결혼 관계로 표현되어 있지 않다. <주몽신화>에서 해모수와 유화의 결혼은 천신계와 수신계 집단의 연합을 상징한다. 이런 상징성이 <금와왕신화>에서는 왕과 태자의 관계로 표현되어 있다. 왕권이 천신계 집단에서 수신계 집단으로 넘어간 상황의 신화적 표현일 가능성이 있다. 이것이 <금와왕신화>의 두 번째 함의이다.

개구리는 물의 상상계를 대표하는 동물 가운데 하나로 신화나 도상에 자주 나타나는데 <금와왕신화>는 한국의 건국신화나 왕권신화 가운데 유일하게 개구리 모티프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참조항목,

역참조항목,

카테고리,

출처 ^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광개토왕비문」
[금와 [金蛙]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encykorea.aks.ac.kr/
[금와왕설화 [金蛙王說話]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설화문학연구』(서울대학교출판부, 1978)
[금와왕설화 [金蛙王說話] (두산백과)
[금와왕신화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
[문화콘텐츠닷컴 원문보기
[금와왕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한국설화 인물유형), 2005., 한국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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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굴, [ Densely lamellated oyster ]

벚굴, [ Densely lamellated oyster ]

벗굴이라는 이름은 강바닥에 붙어있는 모양새가 벗꽃과 같기도 하고 벗꽃이 피는 시기에 가장 맛이 좋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사새목 굴과의 연체동물. 둥근 부채모양으로 수심 3~4m 아래에 돌이나 바위에 붙어 산다. 맛이 좋아 식용으로 이용된다.

4월 벗꽂 필 무렵, 섬진강 하구 하동 벗굴(토굴)

섬진강 하류,, 하동과 광양에서 잠수부들이 강바닥 밑에 있는 바위에서 하나하나 채취한 자연산굴이 벚굴이지요~ 아까 말씀드렸다시미 짠기가 적기때문에 해감을 안하시거나, 조금만 해주시면 됩니다, 
물론!! 맛은 두말 할 필요가 없이 매우매우매우 맛있어요~

벚굴회
학명/ 계문/ 강목과/ 이칭/별칭/ 멸종위기등급/ 크기/ 몸의 빛깔/ 산란시기/ 서식장소/ 분포지역/
Ostrea denselamellosa
동물
연체동물
부족류
사새목
굴과
방언-퍽굴, 벗굴, 벅굴, 일본어명-이타보가키(タボガキ)
미평가(NE : Not Evaluated, 출처 : IUCN)
길이 약 20~40cm
회갈색 바탕에 자갈색 띠, 내면 흰색
5~8월
수심 3~4m 아래 바위나 암석
한국, 일본, 동중국해
평균적인 크기는 어른손바닥 혹은 휴대폰정도의 크기이며 가끔 큰녀석들은 아이들의 얼굴만하기도 합니다~ 속이 꽉차고 향이 좋아서 별미로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벚굴~

벚꽃이 피는 계절에 맛있고 가장제철을 맞이한다고 하여 벚굴이라 이름 붙여진만큼 제철미식가라면 결코 빼먹을 수 없는 별미중의 별미죠!
가족들과 매일 함께 하는 저녁식사도 특별한 식사로 바꿔주는 별미이지요~ 특히 가족여행, 지인들과의 모임등 캠핑장에서 벚굴구이로 드실때에는 여기저기서 크기에 웃고,, 맛에 놀래며! 추억만들기에도 최고입니다
벚굴 생긴모양,
벚굴은 무엇보다 산란을 앞둔 3, 4월이 영양가가 높고 맛이 좋다고 한다.벚굴을 처음 보는 사람은 크기에 압도당한다. 보통 15∼30cm에 이르고 어떤 놈은 40cm까지 자란다. 어른 신발만 하다. 알맹이를 한입에 넣기가 어려울 정도다,

한국, 일본, 동중국해 등지에 분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남해와 만나는 섬진강 하구, 전라남도 광양시 진월면의 망덕포구와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의 신월포구에서 자란다.
하동 십리 벚꽃길,
껍데기의 크기에 비해 속살이 야무지지 않아 ‘벙’이라는 접두사를 붙여 ‘벙굴’이라 불리거나 강에서 나는 굴이라 해서 ‘강굴’이라 불리기도 한다.
하동 십리 벚꽃길,
벚굴이라는 이름은 강바닥에 붙어있는 모양새가 벚꽃과 같기도 하고 벚꽃이 피는 시기에 가장 맛이 좋기도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벗굴, 소주,
이밖에 ‘벗굴’, ‘퍽굴’, ‘토굴’ 등의 여러 명칭이 있다.
하동 십리 벚꽃길,
생장과 환경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섬진강 하구의 기수역에서 수심 3~4m 아래 바위나 암석에 붙어 자란다. 둥근 부채모양의 중대형종으로 껍데기의 크기가 20~40cm에 달하는데, 일반 굴에 비하면 5~10배 가량 크다.  껍데기는 두껍고 단단하다. 수십 개의 방사상의 주름과 소나무 껍질모양의 각피가 발달하였다.
수분이 마르면 각피가 쉽게 떨어지며 각피가 모두 떨어지면 방사륵만 남는다. 내면은 흰색이고, 꼭대기의 전후 양쪽은 거칠게 들쭉날쭉하다.

산란기는 5∼8월로 새끼를 낳는 태생()이며 한 개체가 암·수로 변화한다.

유생은 태어난 지 28일 정도 지나면 부착생활로 들어간다. 성장에 좋은 염분의 농도는 27∼34%이다.
벚굴
식재료
주로 3~4년산을 식용하며 흰 속살의 벚굴은 바다에서 난 굴에 비해 비린 맛이 적고 짜지도 않다. 또한 식감은 부드러우면서 물컹하고 달달한 감칠맛이 있다. 속살을 발라내 초장, 마늘, 고추, 묵은지 등을 곁들여 생으로 먹어도 좋으며 구이, 튀김, 전, 찜, 죽, 탕 등으로 다양하게 조리하여 먹을 수 있다.

2~4월이 제철로 산란기에 접어드는 5월에는 식중독에 걸릴 위험이 높으므로 섭취에 유의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제철에는 잠수부 한 명 당 300~400kg 정도의 수확이 가능하였으나 최근에는 생태계 변화 등을 원인으로 하여 점점 수확량이 줄고 있는 추세이다.

벚굴
벚굴은 일반적인 석화와는 다르게 크기가 매우 크고 짠기가 적어요,,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곳에서 자생하는 오직 자연산 굴이지요 바닷물과 강물이 섞이는 지역을 기수역이라 부르는데, 이지역에는 풍부한 영양분으로 인해 굴이 굉장히 크게 자란답니다

벚굴,, 벚굴이 바로 기수역이기 때문에 생기는 자연의 선물, ^0^



벚굴, Densely lamellated oyster,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섬진강 하구의 서식, 굴의 속모습,


벚굴과매실의 만남,
매실의 효능은 잘 아실테죠?
살균작용 소화 변비 칼슘 해독력 골다공증예방 스테미너 위장개선등등

​초장 살짝 올리고
그위에 매실 올리면
찰떡궁합 입지요 ㅎㅎㅎ-^0^-

굴과에 속하는 조개. 우리 나라에서는 참굴, 바윗굴, 벗굴 등이 있으며 영양소 높은 칼로리가 함유되어 조리 및 생굴로 먹기도 한다.

굴조개라고도 하며, 한자로는 모려()·석화()·여합()·모합()·여()·호려() 등으로 표기한다. 굴이 식용으로 이용된 역사는 매우 오래되어서, 우리 나라에 분포되어 있는 선사시대의 패총에서 가장 많이 출토된다. ≪동국여지승람≫에도 강원도를 제외한 7도 70고을의 토산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으로 미루어 굴은 우리 나라 연해에 널리 분포되어 있으며 즐겨 먹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납작굴,
형태에 관하여 ≪전어지≫에서는 조석이 드나드는 곳에서 돌에 붙어 살며 울퉁불퉁하게 서로 맞붙어서 방과 같다고 하였고, ≪자산어보≫ 에서는 “길이가 한 자 남짓하고 두 쪽을 합하면 조개와 같다. 생김새는 일정하지 않고 껍데기는 두꺼워 종이를 겹겹이 발라놓은 것 같다. 바깥쪽은 거칠고 안쪽은 미끄럽다.”라고 하였다.

굴과에는 많은 종류가 있으나, 우리 나라에서 나는 주요 종류는 참굴·바윗굴·벗굴 등이다. 참굴은 둥근 형에서부터 가늘고 긴 형에 이르기까지 형태가 일정하지 않으며, 전연안에 분포한다. 난생형()으로 늦봄이나 여름에 산란된 알은 바닷속에서 수정된 뒤 2, 3주일간 부유생활을 하고 곧 부착생활로 들어간다. 만 1년이 되면 성숙하여 어미가 된다.

바윗굴도 형태가 일정하지 않으나 일반적으로는 장타원형이다. 난생형으로 남해안과 동해 남부 연안에 분포하는데, 산란된 알은 바닷속에서 수정된 뒤 3, 4주일간 부유생활을 하고 곧 부착생활로 들어간다. 벗굴은 원형에 가까운 사각형으로 남해안과 서해안에 분포한다. 유생형()으로서 유생이 해수 중에 나와 2, 3주일간 부유생활을 한 뒤 곧 부착생활로 들어간다. 참굴은 양식종으로 많이 쓰이고, 바윗굴과 벗굴은 자연산을 채취하여 이용한다. 그러나 벗굴은 생산량이 적어서 그 이용도가 낮다.
통영군 욕지면 앞바다(굴 양식장)
우리 나라에서 굴양식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정확한 자료는 없다. 1908년경의 조사에 의하면, 광양만 내의 섬진강 하구에서 일부 양식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때의 양식방법이 어떠했는지 밝혀지지 않았으나, 돌이나 패각 같은 것을 바다에 던져넣는 방법인 바닥식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양식 굴,
1908년 이후부터는 일본인에 의해 영산강 하구와 송전만 등에서 양식업이 시작되었다. 양식방법은 주로 소나무·대나무 등을 세우는 홍립식()이었고, 1930년대에 이르러는 수하연을 수직으로 매달아 양식하는 수하식()이 개발되었다.
2018 우리 농산물 공모전 입선작 - 굴(홍휘 作 https://www.grafolio.com/doodling)
수하식은 수면을 입체적으로 이용하므로 생산성이 높고 굴의 질도 좋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굴양식업은 크게 발달하지 못했고 1950년대에 이르러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남해안의 굴 양식,
광복 이후 김수출의 격감으로 곤경에 빠진 김양식 영세어민을 구제하기 위해, 정부에서 굴생산의 증대를 위한 조장책을 강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양식방법도 1950년대 말부터는 뗏목수하식 방법을 사용하여 생산성을 크게 높였으며 1960년대에는 연승수하식 방법도 개발하였다.

1970년대는 수하식 굴양식업의 성숙기로, 충무를 중심으로 한 남해안에서 급속도로 발달하였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도 생산량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갯벌에서 굴을 따는 사람들,
생굴에는 수분이 79.6%, 단백질 10.0%, 지방 3.6%, 탄수화물 5.1%, 회분 1.7%가 함유되어 있으며, 비타민 A·B1·B2·C와 나이아신 등이 함유되어 있다.

또한, 글리신 및 글루타민산이 함유되어 있어서 맛이 좋다. 굴은 생굴로 그냥 먹거나 밥·죽·국·전·젓갈 등 다양하게 조리되어 이용된다.
양식 굴,
1997년도의 생산량은 20만973t에 달하였는데 생산량의 과반수가 국내에서 생굴로 소비되고, 나머지는 건굴이나 통조림으로 가공되어 수출된다.


참조항목

역참조항목

카테고리
출처 ^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doopedia.co.kr
[벚굴 [Densely lamellated oyster] (두산백과)
[굴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동국여지승람』
[자산어보(玆山漁譜)』
[물명고(物名考)』
[전어지(佃漁志)』
[한국수산업사』(태화출판사, 1966)
[천해양식』(새로출판사, 1979)
[해양수산통계연보』(해양수산부, 1998)
[사진으로 보는 전문조리용어 해설
[아하, 그래서 유명하구나!
[문화콘텐츠닷컴
[생물산책
[그랑 라루스 요리백과
[2018 우리 농산물 공모전 입선작 - 굴(홍휘 作 https://www.grafolio.com/dood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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