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도 광산 세계유산 추천서에 '조선인 강제노동' 기간 제외, 군함도에 이어 사도광산까지? 군함도에서의 조선인의 삶, 사도광산(사도섬)은 어떤 곳? 사도광산, 이번에도 역사 왜곡? 한 일에 있어 역대 최악인 여기에 또 아베가!? "역사 싸움 피할 수 없다"… 역사 왜곡 준동,'강제노역 알린다' 약속하고 "조선인이 더 좋은 것 먹었다" 뒤통수, 일본 사도광산, 군함도처럼 제국주의 침략 역사 세탁하려는 꼼수”"사도광산 역사왜곡 막아달라"…일본어 SNS 배포,,,!!!
군함도에 이어 사도광산까지?
사도광산?
"역사왜곡 꼼수,
"지켜지지 않은 약속,
군함도,
端島하시마 섬, 군칸지마군함도란?
1937년, 군함도 강제 징용 시작,
군함도에서의 조선인의 삶,
2015년 군함도 유네스코 등재,
사도 광산,
사도광산(사도섬)은 어떤 곳?
사도광산(사도섬)은 제2의 군함도?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등재?
사도광산, 이번에도 역사 왜곡?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철회 가능성은?
연혁,
한 일에 있어 역대 최악인 여기에 또 아베가!? "역사 싸움 피할 수 없다"… 역사 왜곡 준동,
'강제노역 알린다' 약속하고 "조선인이 더 좋은 것 먹었다" 뒤통수,
한국, 등재 저지 외교…일본에 군함도 약속 이행 압박,
사도 강제 노역 부인하는 일본…아베 "역사 싸움 피할 수 없다"
좌시할 수 없는 한국…일본, 군함도 어기고 '뒤통수'
등재 저지·약속 이행 압박…한일 대형선거 변수,
일본 사도광산, 군함도처럼 제국주의 침략 역사 세탁하려는 꼼수”
일본 정부가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사도 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 대상 기간에서 일제강점기를 사실상 빼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강제 노동 논란을 피해가기 위해 기간을 일제강점기 이전으로 한정해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려는 꼼수를 동원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1일(현지시간) 사도 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추천서를 제출했다.
일본 정부는 추천서에서 대상 기간을 일제강점기를 제외한 19세기 중반까지로 삼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연합뉴스가 14일 보도했다.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해온 지자체와 일본 정부는 앞서 공개한 설명자료에서 ‘16~19세기’, ‘에도 시대(1603~1867년)’ 등 기간을 한정해 사도 광산의 가치를 설명한 바 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으로 선정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일본이 주장하는 대상 기간이 추천서를 제출할 때 달라지지 않았다면서 “16세기에서 19세기 중반에 걸친 생산 기술이나 생산 체제 등에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추천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측이 반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추천서에 일제강점기를 왜 반영하지 않았는지를 묻자 “(사도 광산이 세계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는 대상은 주로 에도시대”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세계유산으로서 가치가 인정될 대상이 아니더라도 ‘한반도 출신 노동자가 사도 광산에서 일했다’는 사실이 추천서나 관련 자료에 언급됐냐는 질문에는 “추천서는 비공개이므로 대답을 삼가겠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이는 일본 정치권의 움직임을 통해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지난 12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의 첫 정식 대면 회담에서 “(조선인들이 강제 노역했다는) 한국 측의 독자적 주장은 수용할 수 없다”며 “유감이라고 재차 항의했다”고 말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지난달 28일 외무성, 문부과학성 등 관계 부처와 협의 끝에 사도광산을 세계유산 후보로 추천하겠다는 방침을 굳혔다고 밝혔다.
일본이 지난 2015년 군함도(하시마섬) 등재 때와는 달리 비교적 덜 노골적인 명칭을 사용했다는 점이 특이점으로 꼽힌다.
외무성 관계자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사도섬 금광’이라는 이름으로 추천서를 제출했다.
지난 2010년 사도 광산을 세계유산 추천 잠정 목록에 올릴 때 쓴 ‘금을 중심으로 하는 사도 광산의 유산군’이라는 이름과 다른 명칭을 쓴 것이다.
이를 두고 강제 동원을 노골적으로 부정하지 않는 이름으로 대체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일본은 지난 2015년 군함도 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할 때는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바 있다.
1868~1912년에 해당하는 메이지 시대를 명칭에 포함시켜 조선인 강제 노역의 역사를 배제하려고 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군함도 등재 때와 마찬가지로 일본 정부가 강제 노역의 역사를 부정하고 있다는 점은 변하지 않은 만큼 명칭과는 상관없이 역사 논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정상적인 절차를 따른다면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에는 최소 1년6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군함도에 이어 사도광산까지?
일본 정부가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 현장인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천하기로 했습니다.
2월 1일까지 공식 추천서를 제출하면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_유네스코 자문기관)의 심사를 거쳐 2023년 등재 여부가 결정됩니다.
사도광산?
일본 니가타현의 사도광산은 에도시대(1603~1867년) 세계 최대 규모의 금 생산지였다고 합니다.
이후 태평양 전쟁 기간(1941~1945년) 동안에는 구리, 철 등의 전쟁 물자를 확보하는 광산으로 이용되었는데요.
당시 수많은 조선인들이 강제 동원되어 급료도 받지 못하고 노동했습니다.
1949년 2월 25일에 조선인 1140명에 대한 미지급 임금으로 23만 1059엔 59전이 공탁됐다
당시 기록된 일본 니가타노동기준국의 공문서에 따르면 최소 1100명의 조선인이 강제 동원되어 일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역사왜곡 꼼수,
강제징용 시설이 문화유산으로 등재 가능해?!
日 : ‘에도시대까지만~’
일본의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추천 발표 이후 우리나라 정부는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후보 신청 대상 기간을 에도 시대로 한정해 태평양 전쟁 이후 조선인 강제동원 역사와는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강제동원이라는 역사적 사실은 교묘히 피해 가려고 한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켜지지 않은 약속,
2015년 군함도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당시, 일본은 ‘군함도에서 한국인이 강제 동원되어 노동한 사실을 인정하고, 해당 시설에 정보센터를 세워 희생자들을 기리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하지만 유네스코 조사 결과, 군함도와 관련된 왜곡된 역사를 전시했을 뿐만 아니라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조치조차 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죠.
의도적으로 역사를 은폐하고 축소했다는 유네스코의 지적을 받았지만 여전히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사도광산과 군함도 문화유산 등재와 같은 일본과의 역사 갈등은 계속될 전망이며,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장기적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군함도,
端島하시마 섬, 군칸지마,군함도는 일본 나가사키현 근처에 위치한 야구장 2개 크기의 섬이다.
1916년 미쓰비시가 세운 일본 최초의 철근콘크리트 건물이 빽빽이 들어서 있어 멀리서 보면 건물들의 모습이 마치 군함 같다고 해서 군함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전범 기업 미쓰비시는 해저탄광이 있는 이 섬에서 조선과 중국 등으로부터 노동자들을 강제 동원했다.
1943년에서 1945년 사이 약 500~800여 명의 조선인이 징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은 ‘비(非) 서구지역에서 최초로 성공한 산업혁명 유산’이라는 점을 내세워 2015년 군함도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해 성공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의 뼈아픈 과거가 미래에도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일본은 과거 제국주의 확장정책을 펴면서 본격적으로 조선인을 강제 징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일본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은 113만 명에서 146만 명 정도로 추정됩니다.
오늘은 조선인 강제징용의 역사를 담고 있는 군함도란 어떤 곳이었는지, 군함도 위치, 군함도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의 삶 등을 알아보고 2015년 군함도 유네스코 등재를 살펴보며 일본의 뻔뻔한 역사 왜곡이 어떤 식으로 자행되고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군함도란?
군함도는 나가사키 현 근처에 위치한 섬으로 일본의 군함을 닮았다고 해서 군함도라고 불렸습니다.
원래는 무인도였지만 다량의 석탄이 발견되자 1890년 미쓰비시 중공업은 군함도를 매입합니다.
이후 1960년대까지 광업도시로 번영을 누리다가 1974년 폐광된 이후 무인도가 됐습니다.
석탄산업이 절정일 때 일본은 광부 유치를 위해 많은 시설을 세웠습니다.
군함도 크기는 둘레 1.2km, 면적 63,000평방미터로 축구장 두 개 크기에 불과했지만 학교, 병원, 목욕탕, 영화관 등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한 때 군함도의 인구는 5300명에 달했으며 이는 도쿄의 9배에 달하는 인구밀도였습니다.
1937년, 군함도 강제 징용 시작,
일본의 제국주의적 야욕으로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합니다.
전쟁과 함께 일본의 군수산업이 급속도로 팽창하였고 일본 기업은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게 됩니다.
일본 기업은 부족한 노동력을 메꾸기 위해 조선인을 데려올 것을 일본 정부에 요청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여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하고 대대적인 강제징용을 시작했습니다.
노동 현장에는 성인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이나 노인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 동원됐습니다.
이렇게 동원된 이들은 탄광·군수공장·건설현장 등으로 끌려갔습니다.
그중에서도 군함도는 석탄을 채굴하는 곳으로 지옥섬이라고 불릴 만큼 노동강도가 높았습니다.
군함도에서의 조선인의 삶,
이때 그들이 먹은 것이라곤 콩 찌꺼기로 만든 주먹밥 2개가 전부였습니다.
또한 높은 층의 일본인 숙소와 달리 조선인 숙소는 지하에 위치했습니다.
숙소는 항상 악취가 풍겼고 탈출을 막기 위한 쇠창살 박힌 창문이 밖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습니다.
아프다고 일을 쉬겠다고 하면 무자비한 폭력을 당했습니다.
군함도가 육지와 떨어진 섬이었기 때문에 탈출을 하다 사망하거나 붙잡혀 고문을 당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군함도에서 죽은 조선인들의 화장 인허가 신청서에는 '외상으로 인한 복부 내장 파열', '매몰에 의한 압사', '자살'과 같은 조선인의 매우 비참한 죽음을 암시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2015년 군함도 유네스코 등재,
2015년 군함도는 유네스코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되었습니다.
서구와의 기술 교류를 통해 비서구 국가 최초의 산업화를 이뤘다는 점을 인정받은 것입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이를 고려하여 각 시설 전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고 유네스코 일본 대사는 한국인과 중국인, 연합국 포로가 강제로 동원됐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관련 내용을 담은 이행경과보고서에 강제노역을 '일본 산업 지원 한반도 출신 노동자'로 표현하는 등 역사 왜곡을 하고 있었습니다.
현재 군함도나 군함도 전시관에서 조선인 강제동원에 관한 자료는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자신들의 과거를 철저히 은폐하고 군함도가 산업혁명의 모습을 간직한 '관광지'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역사를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사도 광산,
사도 금광(일본어: 佐渡金山 사도 킨잔[*])은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의 사도 섬에 위치한 금광이다.
광석은 주로 '은흑'(銀黑)이라고 불리는 석영 중에 맥상에 존재하던 휘은광 및 자연 자연금의 미립자였다.
1601년에 금맥이 발견된 이래 에도 시대 기간 동안 중요한 재원으로써 개발되었다.
에도 시대 초기의 전성기에는 금이 1년 동안 약 400kg, 은이 약 40톤 이상 채굴된 일본 최대의 금광산으로, 은 생산에서도 일본 유수의 광산이어서 은 화폐의 제작을 위한 재료를 공급하는 중요한 광산 구실을 했었다.
그 중 아이카와 광산은 에도 막부가 직할 경영하여, 대량의 금은을 산출한 사도 금광의 중심이었다. 산출하여 제련한 철심과 회취은은 막부에 상납되어, 이를 긴자에 맡겨 화폐를 주조하였다.
또한 은은 특히 생실 등의 수입 대가로써 청나라 등에 대량 수출되어, 사도 산출의 회취은은 세다 은으로도 불렸다.
현재는 광산이 고갈되고, 금의 가치와 노동자 임금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여 수지가 맞지 않아 채굴이 중지되어, 금광은 관광지로 활용되고 있다.
갱도의 총 연장은 약 400km에 이르지만, 그 중 관광 노선으로 개발된 구간은 300m 정도이다.
이 밖에, 매년 7월 25일 ~ 7월 27일 사이에 금광 축제가 열린다.
일본이 사도광산(사도섬)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2015년 군함도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과정에서 일본은 조선인 강제동원 사실을 포함시키기로 약속했습니다.
일본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군함도를 산업화의 흔적을 담고 있는 훌륭한 문화유산으로 미화했습니다.
오늘은 제2의 군함도가 될 수 있다는 사도광산(사도섬)에 대해 알아보고 역사 왜곡이 어떤 식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철회될 가능성은 없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사도광산(사도섬)은 어떤 곳?
사도광산은 니가타현 사도시 사도섬에 위치한 일본 최대의 금산(金山)입니다.
사도광산의 금광맥은 동서 3,000m, 남북 600m, 깊이 800m에 퍼져있습니다.
사진을 보면 산이 V자 모양으로 크고 깊게 파여있는데 과거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금이 채굴됐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1601년 사도광산에서 처음으로 엄청난 양의 금맥이 발견되었고 이후 일본의 가장 중요한 재원으로 개발되었습니다.
1869년에는 조선인 강제징용을 한 것으로 잘 알려진 일본의 미쓰비시 합자회사가 사도광산을 인수했습니다.
그러다가 1989년 자원고갈로 인해 폐광되었습니다.
388년 동안 산출된 금은 78톤, 은은 2,330톤에 달했습니다.
사도광산(사도섬)은 제2의 군함도?
일본은 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노동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일본은 부족한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해 조선인을 강제로 동원했고, 이들은 탄광, 군수공장 등으로 끌려갔습니다.
그중에서 사도광산으로 끌려간 조선인의 수는 최소 1,200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사도광산에서 조선인의 삶은 비참했습니다.
노동 환경이 열악하고 강도가 센 탄광 내부는 조선인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습니다.
하지만 군함도와 달리 사도광산과 관련된 연구자료는 국내에 한건밖에 존재하지 않고 영화나 책으로도 알려진 적이 없어 사도섬의 조선인 강제징용 역사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사도섬이라고 하면 우리나라 여수의 사도섬을 떠올리는 분도 있습니다.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등재?
사도광산이 세계문화유산 잠정 후보 목록에 처음 오른 건 2010년입니다.
그동안 4차례나 후보 선정을 노렸지만 번번이 탈락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유네스코에 정식 추천서를 제출하는 2022년 2월 1일을 앞두고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후보로 선정해 등재절차에 들어갔습니다.
사도광산, 이번에도 역사 왜곡?
10년 넘게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해온 일본은 그 시기를 '에도시대'로 한정지었습니다.
조선인 강제징용이 시작된 1930년대 이후 근대는 제외한 것입니다.
한국이 조선인 강제징용을 문제 삼을 것을 대비해 이 같은 조치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 니가타현과 사도시가 2007년 발행한 제안서에는 '광업의 근대화', '근대 채굴 구성 자산', '조선 유학생이 사도 기술을 배웠다.' 등의 근대와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군함도 역사 왜곡 논란이 거셌던 2020년에 제출한 추천서에는 근대와 관련된 내용이 모두 삭제됐습니다.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철회 가능성은?
외교부는 주한 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장을 불러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 절차 철회를 요구했습니다.
일본은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여론을 의식해 즉답을 피하고 "일본 정부의 종합 검토 후 확정"하겠다는 답변을 했습니다.
사도광산은 강제징용 피해자가 조선인으로 한정되어 있고 관련 내용을 증언해줄 피해자를 찾기 어려워 일본의 결정을 막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입니다.
정부가 관련 조사와 연구를 진행하는 등 역사 왜곡을 막기 위한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연혁,
- 1601년 - 쓰루코 긴자의 산사(山師) 3인에 의해 발견되었다.
- 1603년 - 사도부교 오쿠보 나가야스가 관할을 맡았다.
- 1868년 - 공부성의 소유가 되었다.
- 1889년 - 궁내성 어료국의 소유가 되었다.
- 1896년 - 미쓰비시 합자회사가 인수하였다.
- 1918년 - 미쓰비시 광업 주식회사(지금의 미쓰비시 마테리얼)이 관리권을 넘겨받았다.
- 1967년 - 사도 금광 중 아이카와 광산 관계 유적이 '사도 광산 유적'으로써 일본의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 1989년 3월 31일 - 광산이 고갈됨에 따라 채굴이 중단되었다. 미쓰비시 마테리얼의 자회사인 주식회사 골든 사도가 경영권을 넘겨받았다.
- 2007년 - 일본의 지질 100선에 선정되었다.
군함도에 이어 사도광산까지…한일 다시 '역사전쟁'
한 일에 있어 역대 최악인 여기에 또 아베가!? "역사 싸움 피할 수 없다"…역사 왜곡 준동
'강제노역 알린다' 약속하고 "조선인이 더 좋은 것 먹었다" 뒤통수,
한국, 등재 저지 외교…일본에 군함도 약속 이행 압박,
2015년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 등을 세계유산에 등록해 놓고도 '조선인 강제 노역의 역사를 함께 알리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일본이 다시 역사 왜곡을 준동하는 양상이다.
사도 강제 노역 부인하는 일본…아베 "역사 싸움 피할 수 없다"
형식은 '모집', '관(官) 알선', '징용'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본질적으로 강제 동원이며 조선인이 특히 위험한 작업에 다수 투입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사도 광산 추천을 결정하기 전부터 이를 부정하는 태도를 취해 왔다.
사도 광산이 조선인 강제 노역 현장이라는 비판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집권 자민당 주요 정치인의 움직임을 보면 일본이 사도 광산을 세계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해 결국 역사 왜곡에 나설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는 27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2015년에 군함도 등을 세계유산에 등록할 때 "최종적으로는 한국과 합의해 등록했지만 지금도 싸우고 있다"며 "역사 싸움을 걸어온 이상 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그는 자민당 국회의원 단체인 '보수단결의 모임' 회의에서는 "사실에 토대를 두고 (한국 측에) 반론해야 한다"고도 했다.
좌시할 수 없는 한국…일본, 군함도 어기고 '뒤통수'
한국은 일본의 역사 왜곡을 좌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작년 12월 28일 일본 문화심의회가 사도 광산을 세계유산 후보로 선정하자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이 "매우 개탄스럽다"며 즉각 철회를 요구한 바 있다.
그는 또 "본인(강제동원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노역이 이루어진 장소가 이에 대한 충분한 서술 없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지 않도록 유네스코 등 국제사회와 함께 단호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2015년 군함도를 세계유산에 등록할 때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 물밑 타협이 이뤄졌는데 이번에는 당시와 같은 합의 도출이 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군함도 등재 때 내놓은 약속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일본은 등재 심사 직전까지 한국과 협의를 거듭한 끝에 합의점을 찾아 군함도 등을 세계유산에 등재할 수 있었다.
일본 정부 대표인 사토 구니(佐藤地) 당시 유네스코 주재 일본 대사가 2015년 7월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하에서 노역을 했다"고 언급하고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하지만 이후 일본이 군함도 등에 관해 안내하기 위해 도쿄에 설치한 산업유산정보센터는 방문자들이 일제 강점기 강제 동원의 역사를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전시물을 구성했다.
심지어 산업유산정보센터 관리자인 일본 관변단체 산업유산국민회의는 8살 때부터 하시마에 살았다는 일본 남성(1933년생)이 "조선인이 훨씬 좋은 것을 먹었다"고 말하는 장면이 담긴 '증언 영상'을 공개하는 등 강제 동원 피해자들의 경험과 동떨어진 정보를 유포하고 있다.
이런 선전 등의 영향으로 일본에서는 역사 문제에 관한 혐한(嫌韓) 여론이 확대하는 상황이다.
유네스코는 일본의 약속 불이행을 비판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산업유산정보센터 등 일본의 후속 조치를 점검하고 작년 7월 31일 자로 내놓은 결정문에서 일본 정부가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는 데 대해 '강하게 유감'(strongly regrets)을 표명하고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그들의 의지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에서 일하기를 강요받았다는 것과 일본 정부의 징발 정책에 관해 이해하도록 하는 조치" 등 약속을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등재 저지·약속 이행 압박…한일 대형선거 변수,
한국 정부로서는 군함도의 세계유산 등재에 합의할 때처럼 '강제 동원의 역사를 알린다'는 방식으로 합의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본이 이미 신뢰를 배반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약속 불이행을 지적하며 사도 광산의 등재를 저지하기 위해 외교력을 집중해야 할 수도 있다.
일본의 역사 왜곡에 맞서 사도 광산에서 동원된 조선인들이 사실상 선택의 자유가 없는 상황에서 위험한 노역을 강요받았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하는 상황이다.
아울러 일제 강점기를 제외하고 에도 시대(1603∼1867년)까지를 대상으로 세계유산에 등재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이나 객관적 진리 등 유네스코의 가치에 어긋난다고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을 설득할 것으로 보인다.
사도 광산 등재 심사를 지렛대로 역이용하는 전략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일본 사도광산, 군함도처럼 제국주의 침략 역사 세탁하려는 꼼수”
일본정부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사도광산을 등재시키기 위한 최종 신청서를 제출할 마감시간이 약 20일 남은 상황입니다.
20일동안 일본인을 대상으로 사도광산 세계 유산 반대를 위한 포스터를 제작해 SNS 홍보합니다.
일본 문화청 문화심의회가 2021년 12월 28일 니가타현 사도시에 있는 사도광산(佐渡島の金山)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천 후보로 선정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사도광산은 태평양 전쟁 당시 일제가 조선인 1,200여 명을 강제동원한 장소입니다.
하지만 일본 문화청에 제출된 자료에는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후보 신청 대상 기간을 근대 이전인 에도 시대(16~19세기)로 한정해, 일본이 1940년대 태평양전쟁시 사도광산에서 조선인을 강제동원한 역사를 숨기고 은폐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정부가 과거 조선인의 강제징용 사실을 숨기고 유네스코 유산에 등재시킨 '군함도'처럼, 사도광산또한 제2의 군함도처럼 제국주의 침략 역사를 세탁하는 도구로 유네스코를 이용하고자 하는것입니다.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정식 신청하려면, 세계유산 등재 절차에 따라 2022년 2월 1일까지 유네스코에 최종 신청서를 내야 합니다.
2022년 1월 10일 기준으로 일본정부가 유네스코에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으로 정식 신청하기위해 남은 시간은 약 20일정도입니다.
앞으로 20일동안 일본정부가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으로 신청하는것을 막을수 있도록, 전세계인들을 대상으로 홍보할동을 추진하고 있으며, 특히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여론형성도 중요합니다.
실제로 일본 시민단체인 '강제동원 진상규명 네트워크'에서 사도 광산에서 일한 조선인 천 백여 명에 대해 23만 엔 넘는 돈이 지급되지 않았다는 문서를 폭로한 바 있습니다.
이에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를 최종적으로 제출하지 않을 수 있도록, 디지털 포스터 2장을 일본어로 제작해 SNS를 통해 일본인들에게 알려나갑니다.
일본 정부가 과거 군함도를 유네스코 유산에 등재시키는 과정에서 국제사회에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는 나라라는 이미지가 널리 알려졌는데, 이번에 사도광산을 통해 다시한번 침략역사를 세탁하는 나라라는 인식이 부각되면 일본인들또한 부끄러운 세계시민이 될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일본정부가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끌려가 강제로 착취당한 사도 광산에 대해, 조선인 강제 노역 사실을 누락시켜 일본의 자랑스럽고 찬란한 세계 유산으로 등재시키는 행위는 21세기 평화로운 지구촌을 만드는데 심각한 문제가 되는것을 일본 국민 스스로도 알아야 합니다.
일본어로 제작된 2장의 포스터는 "일본의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에 반대합니다.
일본이 세계유산 제도를 이용하여 강제노역 과거를 세탁하는 것을 막아주세요!"
내용과 "거짓을 말하는 자!
거짓의 무게를 견딜 수 없습니다.
사도광산을 통해 조선인 강제징용, 제국주의, 친략전쟁, 역사왜곡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내용입니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일본의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글로벌 청원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2500명이 글로벌 청원에 참여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일본이 군함도의 강제 노역을 알리는 조치를 하도록 압박하고 향후 상황에 관해 협상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노무 동원은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지의 문제이면서 한국 대법원의 징용 판결 등에 관한 여론의 움직임에도 영향을 주는 이슈라서 양국 정부의 합의가 쉽지 않아 보인다.
외교가에서는 한국이 3월 대선, 일본이 여름에 참의원 선거를 각각 앞두고 있어 정치 지도자들이 타협할 여지가 적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도 광산의 세계유산 등록 여부는 내년 6∼7월에 최종 결정된다.
한국과 일본에서 대형 선거가 종료한 후 양국 외교 라인이 접점을 모색할 여지는 남아 있다.
*** 논란 : 일제강점기때 군함도, 사도광산에 한국인들 강제노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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