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 비판을 주도한 교수단체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에교협)’ 내부에서 폐지론이 제기됐다.
올 5월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탈원전 정책이 백지화 수순을 밟게 된 만큼 제 역할을 다했다는 판단에서다.
협회 일각에선 차기 정부에서도 에너지 정책 합리화를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19일 학계와 업계에 따르면 에교협이 최근 개최한 회의에서 일부 교수는 단체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교협의 주 목적이었던 ‘탈원전 정책 폐기’를 달성해 단체가 존속할 명분이 사라졌다는 게 폐지론을 주장한 교수들의 시각이다.
에교협 관계자는 “최근 단체 내부에서 해체 의견이 나온 건 사실”이라며 “다만 회원들 사이에서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에교협은 지난 5년간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해온 교수단체다.
탈원전 기조가 속도를 내던 2018년 출범해 최근까지 원전·에너지 전공 교수 등 학계 인사 250여명이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정부 에너지 정책을 꾸준히 비판하며 국내 원전 여론 형성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 에교협 회원의 의견이 정책에 반영된 사례도 있다.
에교협에서 원전 관련 논의를 이끌었던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가 대표적이다.
주 교수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원전 전문가로 윤 당선인 대선캠프에서 원자력·에너지 정책을 설계했다.
윤 당선인은 대선 출마 선언 직후인 지난해 7월 주 교수를 찾아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차기 정부에서 탈원전 비판 여론을 주도한 에교협 역할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이유다.
이 같은 전망은 ‘에교협의 정치화’를 우려한 일부 회원이 폐지론을 제기한 배경이기도 하다.
에교협이 특정 정부 정책에 적극 기여하면 정치적 색채를 띠게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다만 에교협 내부에서는 폐지론 반대 목소리가 더 높은 상황이다.
에교협의 목적은 탈원전 폐기가 아닌 ‘에너지 정책 합리화’에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에교협 주축인 위원회 구성원들도 해체 보류에 잠정적으로 결론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에교협 공동대표인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에교협 결성 당시 주 목적은 ‘합리적 에너지 정책 수립’이었다”면서 “탈원전을 집중적으로 비판한 건 출범 당시 워낙 시급한 과제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인수위원회의 에너지 정책 자문 등 정치 참여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에교협은 주 교수 등 일부 회원의 활동은 단체와 무관한 개인적 영역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이 교수는 “단체 차원의 정치적 참여는 검토한 바 없다”면서 “에교협 이름으로 인수위 등에 협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차기 정부에서도 에너지 정책에 문제가 확인되면 비판적 목소리를 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재오 "권성동, 김경수 사면 못하게 초쳐…느닷없이 용산? 말 되나"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이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기겠다는 것은 '풍수지리설' 영향 때문이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다며 날을 세웠다.
윤 당선인 최측근 권성동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이 틀림없이 MB(이명박)와 김경수 전 경남지사를 동시 사면할 것"이라고 장담한 건 김 전 지사 사면을 막으려 초를 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재오 "얼마전까지 광화문 노래해놓고 용산?…누가 봐도 풍수지리설 믿는 것"
이 고문은 17일 밤 CBS라디오 '한판승부'에서 청와대 용산이전을 반대했다.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이 고문은 "첫 번째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국방부로 가면 제왕적 권력을 강화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며 두 번째는 역사적으로 볼 때 용산은 1882년에 임오군란 때 일본군의 공관 수비대 주둔부터 조선군 주차사령부, 일본군 전시사령부, 일본군 사령부 등 뼈아픈 곳이기 때문이다"라는 점을 들었다.
따라서 "용산 일대는 정말로 대통령이 가면 안 될 자리다"라며 "개인 살림집 옮기는 게 아니라 나라의 대통령의 집무실을 옮기는데 무슨 풍수지리설 따라가듯이 용산으로?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고문은 "누가 봐도 용산으로 간다는 것은 풍수지리설를 믿는 것"이라며 "이달 초까지 광화문 내내 노래해 놓고 느닷없이 무슨 용산? 말이 되는 이야기냐"고 불편해 했다.
권성동 "MB·김경수 동시 사면 장담"…김경수 사면 못하게 초친 것,
진행자가 "권성동 의원이 김경수, 이명박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 말은 당선인이 직접 하셔야 되는 말 아닌가"라고 묻자 이 고문은 "윤석열하고 친하다,
실세다 이런 것 아닌가"라고, 권 의원이 과시하려 한 행동이라고 분석했다.
또 "권성동이 '틀림없이 (MB를) 김경수하고 같이 묶어서 (사면) 하려고 할 것이다'고 이야기 했는데 그것은 김경수 사면을 못 하게, 초를 치는 것"이라며 "저렇게 이야기해 놨는데 김경수를 사면할 수 있겠는가, 못 한다"라며 권 의원이 노림수를 갖고 던진 말이라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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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충은 누에, 한자로 잠(蠶)이라고 하며, 이것을 기르는 양잠(養蠶) 행위를 순우리말로 누에치기라고 한다.
'누워있는 벌레'라는 뜻의 '누웨'에서 유래했다.
편리를 위해서 인간이 오래 전부터 사육한 대표적인 가축 곤충으로, 1만~5천 년 전 중국에서 견사를 얻을 목적으로 기르기 시작하였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의 손에 길들여져서 현재는 인간이 먹이를 줘야 하는 등 돌봐주지 않으면 자연상태에서 생존할 능력이 없다.
분배와 풍요,
곤충에 정통한 과학자들은 몇 에이커나 몇 평방 마일의 면적을 넘어서는 곤충의 개체 수를 추정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있으며, 수치는 곧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많은 개체수와 다양한 종류의 곤충들은 그들의 작은 크기, 높은 번식률, 그리고 적절한 먹이 공급의 풍부함 때문에 관련이 있기도 하고, 곤충은 열대지방에 다양한 종류와 개체수 모두 풍부하며,
곤충(어린이와 성체 포함)을 비옥한 습윤 지표면의 평방 야드(0,84 평방미터)에서 측정하면 500마리는 쉽게 발견되고 2,000마리는 북부 온대 지역의 토양 표본에서 드물지 않고, 이것은 1개의 습윤 에이커에 무려 약 4백만 마리의 곤충에 달하며 이러한 지역에서는 곤충들 사이에서 초거성인 나비, 범블비, 또는 큰 딱정벌레만이 눈에 띄었을 것이지만 사람의 농작물, 소떼, 생산물을 공격하는 종과 질병을 옮기는 종 등,
수천 종만이 방제책이 필요할 정도로 심각하게 인간의 삶을 방해하면서 곤충은 사막에서 정글, 빙하 밭과 차가운 산줄기, 정체, 저지대 연못, 온천에 이르기까지 먹이가 가능한 모든 육지와 담수 서식지에 적응해 살고 있으며, 대부분은 해수 염도의 10분의 1까지 기수에서 살고, 몇몇은 해수 표면에서 살며, 일부 파리 유충은 원유 웅덩이에서 살 수 있고, 떨어진 다른 곤충을 잡아먹는다.
중요도,
곤충은 자연에서의 역할이 있으며, 많은 중요하며, 그들은 박테리아, 곰팡이, 그리고 다른 유기체들을 유기물의 분해와 토양 형성에 도움을 주며,
예를 들어, 주로 박테리아에 의해 야기된 사체의 부패는 살 파리와 날파리의 구더기에 의해 가속화되기도 하고, 박테리아를 분포시키고 소비하는 이들 유충의 활동에는 털과 깃털을 분해하는 나방과 딱정벌레의 활동이 뒤따르며,
곤충과 꽃은 함께 진화해 왔는데 많은 식물들이 수분을 위해 곤충에 의존하고, 어떤 곤충들은 다른 곤충들의 포식자입니다.
상업 의미,
어떤 곤충들은 꿀, 비단, 왁스, 염료, 색소 등 상업적으로 중요한 제품들의 원천을 제공하며,
이 모든 것들은 인간에게 직접적인 이익이 될 수 있으며,
곤충은 많은 종류의 유기물을 먹기 때문에 농업에 상당한 피해를 줄 수 있으며,
해충은 밭이나 저장고에 있는 식량이나 목재의 작물을 먹어치우고, 농작물, 농장 동물, 사람에게 전염성 미생물을 옮기는데 이러한 해충 퇴치를 위한 기술은 농업 및 산림 곤충학, 저장품 곤충학, 의료 및 수의 곤충학, 도시 곤충학의 응용과학으로 구성된다.
원료로서의 곤충,
식량을 모으는 원시인들에게 곤충은 중요한 식량원이었고, 메뚜기 전염병, 흰개미 떼, 큰 야자 바구미 유충, 그리고 다른 곤충들은 여전히 몇몇 나라에서 단백질의 원천이며, 타마 리스크나 낙지 나무의 메마른 비늘 분뇨는 시나이 사막의 만나의 근원이며,
콕 시드는 한때 진홍색 염료 커 메스의 멕시코 선인장에서 발견되는 닥틸로피우스 비늘 곤충에서 나온 코치닐, 즉 카미네는 아즈텍인들이 죽어가는 천에 사용되었고 오늘날 식품, 화장품, 약품, 그리고 직물에 염료로 사용되었고, 몇몇 곤충 왁스는 상업적으로 사용되며, 특히 밀랍과 락 왁스가 그러하고, 이를 위해 배양된 라크 곤충 케리아 라카의 수지 생성물이 상업적 셸락이다.
누에와 꿀벌,
가장 중요하게 길들여진 곤충들 중 두 가지는 누에와 꿀벌인데 어떤 거친 비단들은 큰 야생 누에 종의 고치에서 생산되고, 그러나 대부분의 상업용 비단들은 누에인 봄 박스 모리에서 유래하며, 이 곤충은 야생 상태에서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문화권에서만 존재하고, 수천 년 전에 중국에서 길들여졌고, 특히 중국과 일본에서 선택적 번식이 많은 전문 변종을 만들어냈으며,
꿀벌은 현존하는 야생벌과 가까운 친척이며, 중세 시대에 꿀은 유럽의 가장 중요한 감미료였고, 밀랍과 꿀은 여전히 상업 상품인데 그러나 꿀벌의 가장 중요한 점은 과일나무와 다른 작물들의 수분이다.
환경,
곤충은 사막에서 정글, 빙하 밭과 차가운 산줄기, 정체, 저지대 연못, 온천에 이르기까지 먹이가 가능한 모든 육지와 담수 서식지에 적응해 살고 있으며, 대부분은 해수 염도의 10분의 1까지 기수에서 살고, 몇몇은 해수 표면에서 살며, 일부 파리 유충은 원유 웅덩이에서 살 수 있고, 떨어진 다른 곤충을 잡아먹으며, 죽은 나무를 부러뜨리는 곤충이 건물의 구조용 목재에 침입하면 해충이 되고,
생태적으로 사체에 늦게 접근해 털과 깃털의 각질을 분해할 수 있는 진피 벌레, 각종 타이 네이드 나방 등의 곤충이 그렇고, 이러한 곤충들이 피부, 털, 양털 옷이나 카펫을 침범할 때, 그것들은 인간에게 문제가 될 수 있으며,
북아프리카나 인도의 평야와 같이 덥고 건조한 기후에서는 밭의 익은 곡식이 특정한 딱정벌레와 나방에 의해 침범되며, 곡식을 수확할 때, 이 곤충들은 곡식 저장소에서 번성하고, 그것들은 상업적으로 전 세계로 운반될 수 있고 저장된 곡물, 말린 과일, 담배, 그리고 다른 상품들의 보편적인 해충이 되었으며, 곡물 수출국으로부터 이러한 곤충의 수입을 통제하기 위해 검역과 소독 방법이 사용된다.
누에의 먹이,
겨울에 잎이 지는 떨기나무이며, 누에를 치기 위하여 심어 기르고, 잎은 어긋나고 달걀 모양이며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으며 부드러운 털이 있고 모양의 변이가 많아 한 가지에서도 서로 다른 모양으로 잎이 자라는데 잎을 따면 흰 즙이 나오며, 암수딴그루로 5~6월에 꽃이 피고, 어린 가지의 잎겨드랑이에 꽃이삭이 달리며, 수꽃은 길이 4~7cm 정도이고,
암꽃은 0.5~1cm 정도이고, 5~6월에 타원형의 열매가 여는데 검게 익으면서 이 열매를 오디라 하는데 맛이 달고 부드러우며, 잼으로도 만들어 먹으며 비슷한 나무로는 산에서 저절로 흔히 자라는 산뽕나무가 있고, 뽕나무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비슷한데, 산뽕나무의 잎은 끝이 꼬리처럼 길고, 뽕나무의 잎은 끝이 점점 뾰족해지며, 역시 산에서 자라며 가지에 굵고 거친 털이 나고 잎 앞면도 털이 나 거친 돌뽕 나무도 있습니다.
곤충이 인간의 삶을 방해하는 걸까, 인간이 곤충의 삶을 방해하는 걸까 이것에 대한 정답이 있을까 싶습니다만 확실한 것은 인간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입장에서만 고민하고 생각하고 결론을 지어버리는 방향과 경향으로 살아가며, 이러한 부분들을 주의하면서 공존해 나가는 삶이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과거에는 누에를 치는 양잠업이 국가기간산업으로서 큰 역할을 했는데, 실제로도 조선시대에도 왕이 선농단에서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를 모시는 제사를 지낸 후 백성들 앞에서 농사를 짓는 시범을 보일 때 왕비는 선잠단에서 역시 잠신(蠶神) 서릉씨(西陵氏)에 올리는 제를 올린 후 백성들 앞에서 뽕을 따서 누에를 치는 시범을 보였던 기록이 있다.
아버지가 돌아오길 기다리다 지친 딸은 말에게 네가 아버지를 데려와주면 내가 네 아내가 되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들은 말은 기뻐하며 크게 울고는 정말로 아버지를 찾아 집까지 데리고 왔다.
하지만 딸은 아무리 그래도 말이랑 결혼할 순 없어서 약속을 까맣게 잊지만, 약속을 기억하는 말은 계속 딸이 있는 곳만을 보면서 구애하는 듯한 행동을 보인다.
이에 의문을 품은 아버지가 딸에게 말이 왜 저러냐고 묻자 딸은 그제서야 예전에 자기가 말과 했던 약속을 말한다.
이에 화가 난 아버지는 짐승 주제에 자기 딸을 탐한다면서 말을 죽이고, 가죽을 벗겨 말리기 위해 마당에다 펼쳐놓았다.
말가죽을 보던 딸은 "짐승인 네가 어찌 날 사모할 수 있냐, 이렇게 가죽까지 벗겨 죽어있는 것이 지금도 날 아내로 삼을 생각이냐." 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자 말가죽이 딸을 덮쳐서 둘둘 싸매버리더니 회오리바람을 타고 멀리로 날아가버렸다.
놀란 사람들이 말가죽과 딸을 찾아냈을 때 그것은 뽕나무 가지에 걸려 커다란 누에고치로 변해 있었다.
이후 사람들은 이 누에를 키워서 지금까지 양잠을 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뽕나무 상(桑)자가 곧 상례 상(喪)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 누에가 된 딸이 나중에 양잠을 담당하는 여신 마두낭이 되어 중국 삼황오제 중 한 명인 황제가 치우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나서 전승연회를 열 때 황제의 부인 중 한 명에게 비단옷을 지어주었다는 설화도 있다.
이자나기의 세 자식 중 하야스사노오노미코토(速須佑之男命)가 여신 오오케츠히메노카미(大氣都比賣神)에게 음식을 달라고 했다.
그러자 오오케츠히메는 코와 입, 그리고 엉덩이에서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끄집어내어 여러 가지 요리를 만들어 바쳤다.
그런데 스사노오가 그 모습을 엿보고 음식을 더럽힌 후 자기에게 바치는 것으로 생각하여 즉시 그 오오케츠히메를 죽이고 말았다.
그런데 살해당한 신의 몸에서 머리에서 누에가 생기고 두 눈에서는 볍씨가 생기고 두 귀에서는 조가 생기고 코에서는 팔이 생기고 음부에서는 보리가 생기고 엉덩이에서는 콩(大豆)이 생겼다.
그러자 카미무스히노미오야노미코토(神塵集日細祖命)가 이것들을 모아 각기 그것들의 씨앗으로 삼았다.
다른 설화에선 스사노오의 형제 혹은 자매인 달의 신 츠쿠요미노미코토(月読命)가 곡물신 우케모치노카미(保食神)가 음식을 자기에게 바치는 모습을 보고 더럽다 생각해 죽였더니, 우케모치노카미의 머리에서 소와 말, 이마에서 조, 눈씹 위에서 누에, 눈에서 피, 배에서 벼, 음부에서 보리, 콩, 팥 등이 각각 생겼다고 한다.
아무튼 일본 신화에서 누에의 기원은 오오케츠히메노카미 혹은 우케모치노카미이며, 누에는 이들의 시체에서 생겨났다고 설명한다.
한편 일본에서 누에와 관련된 설화로는 오오케츠히메노카미(大氣都比賣神) 혹은 우케모치노카미(保食神)라는 신과 관련된 것이 있다.
누에가 인간과 함께 한 역사가 5천년이나 된다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단군시대이래 3천년을 함께 해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하니 정말 대단하다.
나중에 커서 알았지만 안동, 상주 지역에 양잠업이 발달했고, 어릴 적 안동에 살았었던 기억에 엄마가 한 번씩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모여 뭔가 작업했었던 그 일이 누에고치와 관련이 있었던 것임을 알았다.
그 당시에는 간장 양념이 베인 번데기를 먹었었지만, 번데기가 누에임을 알고 난 후 입에도 대지 않는다.
몇 년 전, 5령 된 누에가 누에고치를 만들고 번데기가 되고 고치에서 나와 나방으로 날개를 펼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관찰키트를 집에 둔 적이 있었다.
애벌레도 처음 봤지만, 고치 만드는 모습도 신기했고, 나중에 상상도 못했던 아주 두툼한 나방이 나와서 놀라기도 했다. 그 놀라움도 잠시 얼마 되지 않아 누에나방이 죽었다.
누에나방을 이렇게 죽이나 싶어 잘못 키웠다는 생각에 죄책감도 있었다.
그런데 누에의 한 살이에서 누에나방의 운명은 그런 것이라 하니, 누에나방의 임무는 번식이 끝이라 하니 죄책감은 사라졌지만, 무슨 운명이 그런가 싶어 속상하기도 하다.
검붉은 오디를 입에, 손에 묻혀 가며 먹으면서도 뽕나무와 누에고치를 연결시키지도 못하고 뽕나무 밭 주인이 열매가 아닌 뽕잎 망가질까 봐 화를 냈었던 것을, 밭주인 아저씨 속상한 마음은 나보다 더 하셨겠지. 진즉에 말 좀 해 주시지...
세밀화로 유명한 작가님의 섬세하고 친근감 있는 그림 감상도 좋고, 누에나방 한 살이도 잘 설명되어 있어서 좋았다.
뒤에 누에 관련한 여러 가지 설명글도 좋았다.
누에가 인간 삶에 끼치는 다양한 역할과 인간에게 준 풍족함을 생각하게 되었고, 5천 년 전에 어찌 누가 이렇게 알았는지 참 대단한 것 같다.
감탄이 절로 난다.
누에의 일생,
누에! 49일간의 신비로운 일생,
- 49일만에 몸무게가 1,000배나 증가하는 놀라운 성장,
- 누에 특별전시회 농진청 농업과학관서 직접 확인하세요 ,
고작 49일을 살면서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제품을 제공하는 신비의 곤충 누에를 만나보자.
누에섶에 하얀 고치를 지은 모습이다.
앙증스러운 갓 태어난 개미누에.... 요즈음, 누에 먹이인 뽕나무 잎이 하나 둘 씩 나오기 시작할 무렵이면 누에도 누에알에서 나와 아주 짧은 약 49일간의 삶을 시작 한다.
누에 알 껍질을 갉아먹고 나온 어린누에를 ‘개미누에’라고 부른다. 뽕잎을 찾아 부지런히 주변자리를 이리저리 앙증맞게 돌아다닌다.
알을 갉아 먹고 갓 태어난 개미누에. 3mm 정도의 크기로 눈에 보일듯 말듯 꿈틀거린다.
잠을 자고 쑥쑥 크는 누에... 뽕잎을 먹기 시작한 누에는 자라는 동안 4번의 잠을 잔다. 한번 잠을 잘 때마다 한 살씩 나이를 먹는다.
한 잠을 자고 난 후 부쩍 큰 2령누에(좌). 누에가 오줌을 누고 있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우)
두 살누에(2령), 세 살누에(3령), 네 살누에(4령), 다섯 살누에(5령)라고 부른다.
갓 태어난 개미누에의 크기는 3mm로 눈에 보일 듯 말 듯 아주 작았던 개미누에는 다섯 살(5령)누에가 되면 몸무게가 무려 10,000배나 무거워 진다.
두 잠을 자고난 3령누에의 모습, 이때부터는 뽕잎을 많이 먹으며 눈에 보일 정도로 쑥쑥큰다.
놀랄만한 건 한 살(개미)누에가 다섯 살(5령)누에가 되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약 20~25일이라고 하니 자라는 것이 보일 정도이다.
누에는 자라는 동안 오직 뽕잎만 먹고 자라는 데 누에가 크면서 뽕잎을 갉아먹는 소리가 요란할 정도로 먹성이 좋다.
며칠 사이에 무척 커버린 4령누에. 이제 먹이를 주면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먹이를 먹는다.
누렇게 익은누에는 입에서 실을 토해낸다. 다 자란 다섯 살(5령)의 익은 누에는 뽕앞 먹기를 멈추고, 머리를 이리저리 저으며 열심히 실을 토해내 길고 둥그스레하게 집을 짓는다.
바로 이것이 누에고치이다.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며 실을 토해내고 있는 5령 익은누에.
고치에서 명주실을 뽑는다. 누에고치는 명주실을 뽑기도 하고 번식을 위해 활용하기도 한다.
실을 뽑기 위해서는 누에고치를 삶은 후 뽑는다.
누에고치 한 개로 뽑을 수 있는 명주실의 길이는 보통 1,000~1,500m나 된다.
누에고치를 짓고 난 후 실을 뽑지 않고 고치상태로 그대로 두면 약 15일 정도가 지나 고치를 뚫고 나방이 나온다.
삶은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을 직접 뽑아보는 아이들. 신기한 듯 마냥 돌린다.
누에를 이용한 기능성 제품들이 출시되고 있다. 이제 누에고치는 비단 옷감을 생산하는 입는 산업에서 다양한 기능성 제품 개발의 원료로 이용되는 먹고 바르는 산업으로 바뀌고 있다.
누에를 이용한 기능성 제품으로는 동충하초, 누에그라, 당뇨병 치료제(5령 냉동건조분말), 실크화장품, 실크비누까지 소비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입는누에에서 먹는누에로 변신하면서 개발된 다양한 제품들. 누에그라, 누에가루, 동충하초, 실크비누, 뽕잎냉면, 뽕잎아이스크림 등 그야말로 기능성 제품이 즐비하다.
칼라누에 특별전시회 구경오세요 수원에 위치하고 있는 농촌진흥청 농업과학관에서는 '신비의 곤충 누에랑 풍뎅이랑 친구하기' 특별전시회를 오늘부터 7월 21일까지 개최한다.
살아있는 누에를 보고 만지며 자라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으며,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을 직접 뽑아 볼 수도 있다.
특히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칼라누에와 장수풍뎅이, 물방개 등을 함께 전시해 아이들에게 좋은 학습체험의 기회가 되고 있다.
신비로운 누에 특별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농촌진흥청 농업과학관. 형형색색의 칼라 누에를 어린이들이 신기한 듯 관찰하고 있다.
가족 주말나들이 코스로 인기 짱! 우리나라 농업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수원에 위치한 농촌진흥청 농업과학관은 무료로 개방하고 사진도 마음대로 찍을 수 있다.
특히 8천평의 넓은 잔디운동장과 인공폭포, 바로 앞에 펼쳐진 서호와 서호공원은 가족이 함께 공놀이와 배드민턴 등을 즐기며 하루의 멋진 추억을 만들기에 더없이 좋다.
농업과학관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하며, 자세한 문의 전화는 031-299-2458로 하면 자세히 안내받을 수 있다. 누에고치를 뚫고 나오는 나방의 힘찬 날개짓. 생명의 신비를 느낄 수 있다.
종족보존을 위해 교미를 하는 누에 나방. 숫누에나방으로 담근 술은 남성들에게 특히 좋다.
신비의 곤충 누에의 생활사. (나방-알-성충-번데기) 과정을 거치면서 49일간의 생을 마감한다.
인류와 함께 한 잠업의 역사는 기원전 1만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이 오랜 기간 동안 누에의 번식은 사람의 손을 거쳐왔기에 지금에 이르러서는 인간의 도움 없이는 세대를 이어가기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양잠업은 우리 산업의 큰 부분을 차지했었다.
아다시피 잠실과 잠원동은 조선시대 때부터 나라에서 운영하는 양잠소가 있던 지역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어렸을 적 먹을거리가 귀한 시절에는 누에고치 번데기를 솥에 삶아서 즐겨 먹었었다.
지금의 중년 세대라면 그 짧쪼름하고 닭고기 같은 맛을 기억할 것이다.
현재도 명맥을 이어가면서 번데기 통조림은 계속 생산이 되고 유원지 근처에서는 다슬기와 뻔데기를 판다.
누에는 인간에 의해 가축화 되었지만 아직도 몇몇 종은 야생에서 살아간다.
뜨게질로 고치집을 만드는 누에나방,
누에나방류는 몹시나 독특한 고치를 만들며 외관이 풍성하고 수려한 편이다.
성충의 입은 흔적만 있고 소화기관이 없어서 수명이래봤자 일주일 정도에 불과하다.
밤나무산누에나방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밤나무 잎을 씹어 먹지만 광식성이라 다른 나무도 가해하는 녀석이다.
참나무(졸참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등) 잎도 갉아 먹고 때로는 과수원에 출현하여 사과와 배를 먹으므로 과수농가의 미움을 받는다.
아랫날개에 부엉이의 눈과 같은 검은색 원형 무늬가 있다.
평소에는 감춰 두었다가 위협을 느끼면 활짝 펴서 공격자를 놀라게 만든다.
그물망과 같은 번데기 집을 만드는데 처음에는 테니스 라켓줄과 같은 투명한 흰색이었다가 진한 밤색으로 굳는다.
질기기가 이를 데 없어 손으로는 결코 찢어낼 수 없고 칼을 대도 잘라내기가 어렵다. 이 질긴 고치를 어떻게 뚫고 나오는지가 궁금증을 유발한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입에서 뭔가 분비물을 내어서 녹이고 나오는 것이 아닐까 추측할 수 있겠으나, 직접 날개돋이 과정을 보니 그 합리적인 구조에 유레카를 연발하게 된다.
분비물은 전혀 없었다. 반 가르기를 해서 살펴봐도 그 원리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았다.
고치를 보면서도 한쪽이 뚫려있다는 것을 우화가 진행되는 순간까지 눈치챌 수 없었으니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진화의 산물이다.
고치의 한쪽 면은 완전히 봉합하지 않았기에 안쪽에서는 밀고 나올 수 있지만, 바깥쪽으로는 침입할 수 없는 설계다.
직접 관찰하면서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자연과학이 주는 혜택이다.
10월 중순경에 날개돋이 했다.
한여름이 다 가도록 소식이 없기에 기생당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밤중에 뭔가 빠작빠작 비스킷 부셔지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리더니 녀석이 드디어 세상을 향해 나오기 시작했다.
우화 후에는 애벌레 시절에 몸에 쌓아두었던 노폐물을 배출하는데, 녀석도 예외는 아니라서 연한 황토색의 물똥을 쏟아내었다.
몸집이 크니 그 양도 상당히 많다.
번데기집에서 탈피한 암컷은 곧바로 짝짓기 페로몬을 풍겨 수컷을 부른다.
빗살 모양의 크고 잘 발달된 더듬이를 가진 수컷은 암놈의 페로몬에 이끌려 와 세대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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