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사(雲門寺)
불교유적,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호거산(虎踞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원광대사가 중건한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제2차 중창은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후삼국의 통일을 위해 왕건을 도왔던 보양(寶壤)이 오갑사(五岬寺)를 중창하였다.
943년 고려 태조 왕건은 보양의 공에 대한 보답으로 운문선사(雲門禪寺)라 사액하고 전지(田地) 500결을 하사하였다.
제3차 중창은 1105년(고려 숙종 10) 원응국사가 송나라에서 천태교관을 배운뒤 귀국하여 운문사에 들어와 중창하고 전국 제2의 선찰로 삼았다.
943년 고려 태조 왕건은 보양의 공에 대한 보답으로 운문선사(雲門禪寺)라 사액하고 전지(田地) 500결을 하사하였다.
제3차 중창은 1105년(고려 숙종 10) 원응국사가 송나라에서 천태교관을 배운뒤 귀국하여 운문사에 들어와 중창하고 전국 제2의 선찰로 삼았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때 당우 일부가 소실되었다.
1690년 (숙종 16) 설송(雪松)대사가 제4차 중창을 한 뒤 약간의 수보(修補)가 있어 왔다.
1835년 운악(雲岳)대사가 제5차 중창을, 1912년 긍파(肯坡)대사가 제6차 중창을 하였다.
1913년 고전(古典)선사가 제7차 수보하였고, 비구니 금광(金光)선사가 제8차 수보를 하였다.
1977에서 98년까지 명성스님이 주지로 있으면서 대웅보전과 범종루와 각 전각을 신축, 중수하는 등 경내의 면모를 한층 일신하였다.
1690년 (숙종 16) 설송(雪松)대사가 제4차 중창을 한 뒤 약간의 수보(修補)가 있어 왔다.
1835년 운악(雲岳)대사가 제5차 중창을, 1912년 긍파(肯坡)대사가 제6차 중창을 하였다.
1913년 고전(古典)선사가 제7차 수보하였고, 비구니 금광(金光)선사가 제8차 수보를 하였다.
1977에서 98년까지 명성스님이 주지로 있으면서 대웅보전과 범종루와 각 전각을 신축, 중수하는 등 경내의 면모를 한층 일신하였다.
현재는 30여 동의 전각이 있는 큰 사찰로서 규모를 갖추었다.
운문사는 1958년 불교정화운동 이후 비구니 전문강원이 개설되었고, 1987년 승가대학으로 개칭되어 승려 교육과 경전 연구기관으로 수많은 수도승을 배출하고 있다.
이칭: 대작갑사(大鵲岬寺), 작갑사(鵲岬寺)분야불교유형유적시대고대-삼국성격사찰건립시기560년(진흥왕 21)소재지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1789
역사적 변천
560년(진흥왕 21) 한 신승(神僧)이 대작갑사(大鵲岬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고, 591년(진평왕 13) 원광(圓光)이 크게 중건하였다. 원광은 세속오계(世俗五戒)를 지어 이곳에서 아주 가까운 가슬갑사(嘉瑟岬寺)에서 귀산(貴山) 등에게 주었다고 전한다.
937년(태조 20)에는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후삼국의 통일을 위해 왕건을 도왔던 보양(寶壤)이 중창하고 작갑사(鵲岬寺)라 하였으며, 이 때 왕이 보양의 공에 대한 보답으로 쌀 50석을 하사하고 ‘운문선사(雲門禪寺)’라고 사액한 뒤부터 운문사라고 불렀다.
1105년(숙종 10)에 원응국사(圓應國師) 학일(學一)이 송나라에서 천태교관(天台敎觀)을 배운 뒤 귀국하여 이곳에 머물면서 중창하였다. 그 뒤 조선시대에 들어와 1690년(숙종 16)에 설송(雪松)이 중건한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임진왜란 때 당우 일부가 소실되었으나, 현재 대웅보전·작압전(鵲鴨殿)·미륵전·오백나한전·금법당(金法堂)·만세루(萬歲樓)·관음전·명부전·강원·요사채 등의 옛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전체 17동의 전각이 있는 큰 사찰이다. 이 중 대웅보전은 보물 제835호로 지정되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193호로 지정된 금당 앞 석등을 비롯하여 보물 제316호로 지정된 원응국사비(圓應國師碑), 보물 제317호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 보물 제318호인 사천왕석주(四天王石柱), 보물 제678호로 지정된 삼층석탑, 보물 제208호로 지정된 동호(銅壺) 등이 있으며, 오백나한전 안의 나한상은 보기 드문 작품이다.
대웅전 앞에 있는 2기의 3층석탑은 대웅전이 위치한 자리의 지세가 행주형[行舟形: 전복되기 쉬운 배 모양]의 흉맥이라 하여 그 지세를 누르기 위해서 양쪽에 탑을 세운 것이라고 한다. 만세루는 조선 초기의 건물로 우리나라 사찰건물 중 가장 큰 것이라고 한다. 입구에 천연기념물 제180호로 지정된 처진 소나무가 있다.
부속 암자로 절의 동쪽에 청신암(淸神庵)과 약수로 이름난 내원암(內院庵), 북쪽에 북대암(北臺庵), 동남쪽에 사리암(舍利庵), 서쪽에 호거암(虎踞庵)이 있다. 이 절은 1958년 불교정화운동 이후 비구니 전문강원으로 선정되어 승려교육과 경전연구기관으로도 유명하다.
오갑사가 창건된 시기는 신라가 불교를 중흥하고 삼국통일을 위해 국력을 집중하여 군비를 정비할 때였다. 이때 오갑사가 운문산 일대에 창건되고 화랑수련장이 만들어 진다. 그것은 곧 신라가 서남일대 낙동강 유역으로 국력을 신장해가는 과정으로써 운문사 일대가 병참기지로서 당시 신라로서는 전략상의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고려, 조선시대의 운문사[삼국유사] 보양이목조에는 "후삼국을 통일하면서 태조왕건은 운문사에 있던 보양국사의 계책으로 이 일대를 평정하였다. 그 뒤 후삼국의 사회적 혼란을 어느 정도 수습한 왕건은 937년(태조 20년), 대작갑사에 '운문선사'라는 사액과 함께 전지 500결을 하사하였다." 고 한다.
이 때부터 대작갑사는 운문사로 개칭되었고, 경제적 기반을 튼튼히 구축한 대찰로서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1105년(고려 숙종 10) 원응국사 학일이 제3차 중창한 후 왕사로 책봉되었다. 원응국사는 1129년(인조 7) 부터 이 절에 머무르실 때 운문사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1277년 일연선사는 고려 충열왕에 의해 운문사의 주지로 추대되어 1281년까지 머무르셨다. 이 곳에서 일연은 『삼국유사』 의 집필을 착수하였다. 운문사의 절 동쪽에는 일연선사의 행적비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조선시대인 18세기 중반, 운문사는 설송 연초대사가 제4차 중창할 때와 19세기 전반 헌종 년간에서 운문사의 사세는 상당했다. 운문사의 제5차 중창주인 운악화상은 1839년에 오백전을 중수하였다. 이듬해 응진전과 명부전, 미타전, 내원암, 북대암등을 중건하였다. 그리고 다음해에는 청신암을 창건하였고, 1842년 금당을 중건하였다.
근현대의 운문사해방이후 제 1세 김상명 스님에서 제 4세 박상웅스님까지 잠시 대처승이 거주하였다. 1950년대 교단정화 이후 비구니 정금광 스님이 1955년 초대 주지로 취임하여 제 8차 보수.중창하였다. 이후 2.3대 유수인, 4대 배묘전 , 5대 이태구, 6대 안혜운, 7대 위혜안 스님을 거쳐 8대부터 12대까지(1977~1998) 전명성 스님이 운문사 주지와 학장을 겸임하면서 제9차 중창불사를 이룩, 대웅보전과 요사 등 29동을 신축하고, 만세루 등 기타 전각들을 중수하는 등 명실공히 대가람으로서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이어 1998년부터 제13대 주지로 송혜은 스님이 부임하면서 선원을 신축하여 교와 선을 아울러 익힐 수 있는 도량으로 가꾸었다. 2002년부터 제14대 주지는 흥륜강사스님이 소임을 사셨으며, 15대는 2010년까지 진성스님이 주지를 맡았다. 2014년까지 일진강사스님, 2018년까지 진광강사스님이 소임을 살았으며 현재는 운산강사스님이 주지 소임을 살고 있다.
1997년 비구니 강사를 양성하는 전문 교육기관으로는 최초로 승가대학원이 개설되었다. 1958년 비구니 전문강원이 개설된 이래 수많은 졸업생을 배출하였고, 1987년 승가대학으로 명칭이 바뀌고 전문교과 과정과 교수진을 확보하여 승가대학의 명분에 걸맞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대략 160여 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이곳에서 경학을 수학하고, 계율을 수지봉행하고 있으며,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백장 청규를 철저히 실천하고 있다. 운문승가대학은 국내 승가대학 가운데 최대의 규모와 학인수를 자랑하고 있다.
신라시대 이래 이 군의 사원으로서 작갑사 이하 크고 작은 사원은 삼국이 난리로 인하여 망해갈 즈음 대작갑,소작갑,소보갑,천문갑,가서갑 등 5갑의 절이 모두 파괴되고, 5갑의 기둥을 합쳐서 대작갑사에 두었다. 조사 지식(知識: 위의 글에서는 보양이라고 하였음)이 대국에서 불법을 전수받고 돌아오다 서해 가운데 이르렀을 때 용이 궁중으로 맞아들여 불경을 외게 하고 금실로 수놓은 비단가사 한 벌을 주었다.
겸하여 한 아들 이목을 주어 받들어 모시고 뒤따라가게 하면서 부탁하기를, “지금 삼국이 소란하여 불법에 귀의한 군주가 없지만, 만약 내 아들과 더불어 본국의 작갑으로 가서 절을 짓고 거처하면 적병을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 몇 년 안에 반드시 불교를 보호하는 어진 임금이 나와 삼국을 안정시킬 것이요.”라고 하였다. 말을 마치자 서로 이별하고 돌아와서 이 골짜기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스스로 원광이라고 일컫는 노승이 인궤(印櫃)를 안고 나타나서 전해 주고 사라졌다.
살피건대 원광은 진나라 말기에 중국으로 들어갔다가 개황 연간에 동쪽으로 돌아와서 가서갑에 머무르다가 황룡사에서 죽었으니, 계산해 보면 청태 초에 이르기까지 무려 300년에 달함. 이제 여러 갑사가 모두 황폐한 것을 비탄하다가 보양이 와서 장차 일으키려고 한 것을 기뻐하여 고한 것이리라].
이에 보양이 황폐해진 절을 일으키려고 북령에 올라가서 바라보니 뜰에 5층 황탑이 있었으므로 가서 찾아보았으나 자취가 없었다. 다시 올라가서 바라보자 여러 마리의 까마귀가 땅을 쪼고 있었다. 이에 바다의 용이 작갑이라고 한 말이 생각나서 찾아 파보니 과연 무수한 벽돌이 남아 있었으므로 모아서 높이 쌓아 탑을 완성하자 남은 벽돌이 없었다.
이에 이곳이 전대의 절터였음을 깨닫고 절을 세워서 건주하며 인하여 작갑사라고 이름하였다. 얼마 후 태조가 삼국을 통일하였는데, 법사가 이곳에 절을 짓고 산다는 말을 듣고 5갑의 전답 500결을 합하여 이 절에 주고, 청태 4년 정유에 운문선사란 액호를 내렸으며 가사의 영음을 받들었다.
이목이 항상 절 옆에 작은 못에 살면서 불법의 교화를 도았는데, 어느 해 갑자기 가뭄으로 밭의 채소가 타게 되자 보양이 이목에게 명하여 비를 내리게 하였다.
그러자 한 경내에 흡족하게 비가 내렸는데, 천제가 자신도 모르게 하였다며 장차 죽이려고 하였으므로, 이목이 법사에게 급히 고하였다. 법사가 이목을 상 아래에 숨겼는데, 얼마 후 하늘의 사자가 뜰에 이르러서 이목을 내놓으라고 청하니, 법삭 뜰 앞에 있는 배나무를 가르키자 벼락을 내리고 하늘로 올라갔다.
벼락을 맞은 배나무는 부려졌는데, 용이 어루만져주자 즉시 소생하였다(또는 보양이 주술로써 살렸다고 함). 그 나무가 근년에 쓰러지자 어떤 사람이 방망이를 만들어서 법당과 식당에 두었는데, 그 방망이 자루에 명(銘)이 있었다.
처음에 법사가 당나라에 들어갔다가 돌아와서 먼저 추와의 봉성사에 머물렀는데, 마침 태조가 동쪽 지방을 정벌하여 청도 땅에 이르렀을 때 산적이 견성(犬城: 우뚝한 산봉우리가 물가에 있는데 오늘날 세인들이 그 이름을 좋지 않게 여겨서 견성으로 고쳤다고 함)에 모여서 교만하기 짝이 없었다.
태조가 산 아래에 이르러서 법사에게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술책을 물으니, 법사가 답하기를, “대저 개라는 동물은 밤에는 지키고 낮에는 지키지 않으며, 앞쪽은 지키지만 뒤쪽은 잊어버립니다. 그러니 마땅히 낮에 그 북쪽을 공격하면 됩니다.”라고 하였다. 태조가 그 말대로 하여 과연 패배시키고 항복을 받았다.
이에 태조가 그 신모(神謀)를 가상하게 여기고 해마다 가까운 현의 조세 50석을 주어서 향화를 받들게 하였기 때문에, 절에 태조와 보양 두 성인의 진용을 안치하여 봉성사라고 이름하였다. 후에 법사가 작갑사로 옮겨서 크게 창건하고 그곳에서 세상을 마쳤다.
법사의 행장은 고전에 실려 있지 않다. 속전에 말하기를, “석굴사 비허사[備虛師: 혹은 비허사(毗虛師)로도 되어 있음]와 형제가 되고, 봉성사,석굴사,운문사 세 절이 봉우리를 맞대고 나란히 있어 서로 왕래하였다.”라고 한다. 후세 사람이 신라의 <수이전>을 개작하면서 함부로 작탑과 이목의 일을 원광법사전에 기록하고 견성에 관계된 것을 비허전에 실은 것은 잘못이다. 또 <해동승전>을 지은 자가 그것을 따라 윤문함으로써 보양의 전이 없게 하여 후세 사람이 의혹을 품게 하였으니, 그 얼마나 무망한가.
"운문사는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호거산에 있는 사찰로 대한 불교 조계종 제 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청도군에 속해 있으나 교통 편의상 대구와 생활권이 밀접해 있다. 서기 560년 (신라 진흥왕 21년)에 한 신승(神僧)에 의해 창건되어 원광국사, 보양국사, 원응국사 등에 의한 제8차 중창과 비구니 대학장인 명성스님의 제9차 중창불사에 의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주소/ 문의/ 홈페이지/ 추천/ 여행시기/ 이용 시간/ 쉬는날/ 이용요금/ 편의시설/ 주차 시설/ 키워드/ 2019 03 16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길 264(운문면) |
054-372-8800 |
http://www.unmunsa.or.kr/ |
봄, 여름, 가을, 겨울
|
04:10 ~ 20:00 |
연중무휴 |
성인 2,000원, 청소년, 군인 1,000원, 어린이 500원(단체: 성인 1,500원, 청소년.군인 800원, 어린이 400원) |
장애인 주차공간 있음 |
대형 3,000원, 소형 2,000원, 경형 1,000원 |
#청도여행 #도보여행 #우정여행 #등산하기좋은곳 #가을엔편지를하겠어요 #단풍명소 #오빠랑 #사진찍기좋은곳 #가을단풍산행 #애들이랑갈만한곳 #솔바람길 |
찾아오시는길,
주소: 경북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길 264번지/ 전화번호054)372-8800
자가용 이용시
경산IC(하행선) → 진량 방면 → 자인 방면 → 운문사
서울IC(상행선) → 언양 방면 → 운문사
KTX 이용시
동대구역 → (환승) → 경산역 → 경산2번(시내버스 2코스) → 경산시외버스터미널 → 운문사
청도역 → 청도버스터미널 → 운문사(1시간정도 소요)
버스 이용시
동대구 고속버스터미널 → 신세계백화점 맞은 편 농협 앞 909번 → 경산 시외버스터미널 하차 → 운문사
경산시외버스터미널 → 운문사
부산 출발 → 사리암 도착 운행버스
출발/ 도착/ 타는 곳/ 시간비고
부산
|
사리암
|
부산진역 8번 출구 범일동 방면으로 나와서
도보로 50m 지점의 렌터카 옆 |
AM 10시
|
매일
|
부산역 앞 - 스타일 웨딩예식장
부산 동구 중앙대로 188번길(부산 동구 초량동 1215-10)
|
PM 7시 30분
|
매주 금, 토, 그믐날
| ||
사리암
|
부산
|
사리암 주차장, 운문사 통제소
|
AM 6시
|
매주 토, 일, 초하루
|
PM 4시 30분 / 토요일만 PM4시
|
매일
|
- 사리암 버스기사님 연락처 : 011-507-8801 / 버스요금 : 편도 7,000원
기차 이용시
경부선 하행 이용시: 동대구역에서 남부터미널까지 버스로 20분이 소요되며, 남부터미널에서 운문사행 시외버스를 갈아탄다.
경부선 상행 이용시: 경부선을 타고 청도에서 내린다 버스편을 이용할 때와 같이 청도 시외버스 터미널
출처 ^ 참고문헌
- [삼국유사(三國遺事)
- [한국사찰전서 (권상로 편,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 [조선사찰사료(朝鮮寺刹史料)』(조선총독부,1911)
-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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