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1
오세아니아 남동쪽 남태평양상에 있는 입헌군주국. <script data-ad-client="ca-pub-4162949345545299" async src="https://pagead2.googlesyndication.com/pagead/js/adsbygoogle.js"></script>
뉴질랜드(영어: New Zealand) 또는 아오테아로아(마오리어: Aotearoa)는 태평양 남서부에 위치한 섬나라이자 주권국이다. 뉴질랜드는 북섬과 남섬, 그리고 600여 개의 작은 섬들로 구성되어 있다.
뉴질랜드의 총 육지면적은 268,000 제곱킬로미터 (103,500 mi2)이다.
뉴질랜드는 오스트레일리아와 태즈먼해를 사이에 두고 2,000km 정도 떨어져 있고 뉴칼레도니아, 피지, 통가와 같은 태평양 도서와는 남쪽으로 1,000km 이상 떨어져 있다. 해안선의 길이는 15134㎞이다.
영연방의 하나로, 면적은 26만 7710㎢, 인구는 443만 8393명(2015년 현재)이며, 수도는 웰링턴(Wellington)이다. 자치령 및 해외 영토로 남태평양의 쿡(Cook)·니우(Niue)·토클로(Tokelau) 등의 섬이 있다.
지리적 고립으로 인해 뉴질랜드는 인간이 정착한 마지막 땅이 되었다. 또한 오랜 고립 기간 동안, 뉴질랜드에서는 독특한 생물적 다양성이 발전했다.
뉴질랜드의 다양한 지형과 높은 봉우리들은 화산 폭발과 육지의 융기로 인해 형성된 경우가 많다. 뉴질랜드의 수도는 웰링턴이고,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는 오클랜드이다.
1250년과 1300년 사이에 뉴질랜드의 섬에 폴리네시아인이 정착하였고, 독특한 마오리 문화를 발전시켰다. 1642년 네덜란드 탐험가 아벌 타스만이 유럽인으로써 처음으로 뉴질랜드를 발견했다.
1840년, 영국의 대표와 마오리족의 수장들이 와이탕이 조약을 체결하였고, 뉴질랜드의 주권이 영국에 있음을 선언했다.
1841년 뉴질랜드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고, 1907년에는 자치령이 되었으며, 1947년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했지만, 영국의 군주가 국가원수로 남게 되었다. 오늘날, 뉴질랜드의 인구는 총 490만 명으로, 이 중 대다수가 유럽계이다. 원주민인 마오리족이 소수민족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아시아계와 태평양 섬사람들이 그 다음으로 많다.
뉴질랜드의 문화는 마오리 문화와 초기 영국 정착인들의 문화에서 기여된 것이 많지만, 뉴질랜드로의 이주가 증가함에 따라, 문화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뉴질랜드의 공식언어는 영어와 마오리어, 그리고 뉴질랜드 수화인데 영어가 가장 많이 쓰인다.
종족구성은 앵글로색슨계 위주의 백인이 69.6%, 마오리(Maori) 원주민이 14.5%로 이루어져 있으며, 공용어는 영어와 마오리어이다. 종교는 개신교 52%, 가톨릭교 15%, 힌두교 등 기타 33% 등이다.
고도로 발달한 기업적 농업과 축산업이 주요 산업이며, 2015년 현재 국민총생산은 1999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4만 4342달러이다.
이 나라의 정체는 입헌군주제의 의원내각제로서, 의회는 임기 3년의 단원제(120석)이다. 주요 정당으로는 국민당(NP), 노동당(LP), 뉴질랜드 제일당(NZF), 소비자납세자당(ACTNZ) 등이 있다.
뉴질랜드는 10세기경 폴리네시아 문화를 계승한 마오리족에 의해서 최초로 발견되었으며, 서양인으로는 네덜란드의 항해사 타스만이 1642년 최초로 발견하였다.
1769년 영국인 선장 쿡이 탐험하였으며, 1840년 마오리족 대표와 영국 대표 사이에 조약이 체결되어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1907년 9월 26일 독립하여 영국의 자치령이 되었다가 1931년에 영연방 정식회원국이 되었다.
성문헌법이 없는 국가로, 국가 원수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Elizabety Ⅱ)이며, 임기 5년의 총독이 영국 여왕을 대리하지만 실권은 2008년 11월에 취임한 키(John Key) 총리에게 있다.
외교정책의 기조는 중도우파로, 1945년 유엔에 가입하였다. 미국·영국·영연방제국 등과의 유대 강화와 일본·아세안 등 아시아국가와의 협력 증진에 힘쓰고 있다. 또한, 중국·베트남 등을 승인하여 공산권과도 관계를 개선하고 있다.
뉴질랜드의 역사는 700년 전 폴리네시아인들에 의해 발견된 후 시작되었다. 그들이 정착한 후 토지와 혈족 관계를 중심으로 한 마오리족 문화가 자리잡았다.
첫 유럽 탐험가가 1642년 뉴질랜드에 도착했고, 18세기 이후부터 탐험가, 항해사, 상인, 모험가들이 꾸준히 방문하였다.
1840년, 영국과 마오리 추장들 사이에 와이탕이 조약이 서명되면서, 뉴질랜드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고 마오리 사람들은 영국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인정받았다. 20세기 부터는 유럽과 아시아 이민자들이 급증하였다.
전쟁을 거치고 유럽식 경제, 법률이 들어서면서 많은 마오리 소유의 토지들이 파케하(유럽 정부)의 소유로 넘어갔고, 대다수의 마오리들이 힘을 잃고 말았다.
뉴질랜드를 처음으로 찾은 유럽인은 1642년 남섬 서해안에 도착한 네덜란드의 아벌 타스만(Abel Tasman)이었다. 그는 이곳을 고향 제일란트의 이름을 따서 '노바젤란디아'라고 명명하였으며, 뉴질랜드는 이 말의 영어식 번역이다.
타스만 이후 뉴질랜드를 찾은 사람은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James Cook) 선장이었다.
쿡 선장은 1769~1777년에 걸쳐 여러 차례 이 지역을 답사하였다. 이어 1814년 런던에서 선교사가 와서 그리스도교 교화를 시작하였다. 그 무렵 이곳은 뉴사우스웨일스(오스트레일리아)의 식민지로서, 고래와 바다표범잡이의 기지로 이용되고 있었다.
1840년 마오리족은 자신들을 보호해주는 대가로 뉴질랜드의 통치권을 영국에 양도하는 와이탕기 조약을 체결하였다. 그 이후부터 뉴질랜드회사, 오타고협회, 캔터베리협회 등을 통하여 각지에서 이민자가 건너오기 시작하였다.
1880년대 초 냉동선이 개발되자 오지에서도 농목업이 발전하였고, 1852년에는 뉴질랜드 헌법에 따라 뉴질랜드 정부가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영국의 식민화가 진행됨에 따라서 토지매매와 관련하여 마오리족과 영국 간에 분쟁이 생겼고, 1843~1870년 사이에는 두 차례에 걸쳐 마오리전쟁이 일어났다.
이에 영국은 마오리족의 반영(反英) 감정 완화를 위해 힘썼고, 식민지 회의에 마오리족 대표를 참가시키는 등 영국인과 동등하게 대우하려는 노력을 통해, 1870년부터는 인종분쟁이 끝나고 마오리족의 영국화가 시작되었다.
이처럼 마오리족과의 공존관계 설정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고자 한 노력은 다른 식민지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해법이어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 후 뉴질랜드는 개척이 진전됨에 따라 1907년 영국의 자치국이 되었다가 1947년 독립하였다. 제1·2차 세계대전 때에는 영국 본국과 함께 연합국의 일원이 되어 참전·활약하였다.
1949년 7월 한국을 정식 승인하였으며, 1950년 6·25전쟁(한국전쟁) 때에는 총 5,350명이 영국 연방으로 참전하였다. 대한민국과는 1962년 외교관계가 수립되었다. 또한 1964~72년까지 베트남 전쟁에 군대를 파병하였다.
1951년에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미국은 공식적으로 안전보장조약(ANZUS Treaty)을 체결했다. 이는 태평양 지역 방어를 위한 군사동맹이다. 1985에는 비핵화지대(Nuclear freezone)을 선언하였으며 1987년 David Lange가 이끄는 노동당에 의해 뉴질랜드 비핵화지대 선언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결과적으로, 미국 핵추진함에 대한 뉴질랜드 기항불허로 이어져 ANZUS조약의 권리가 중지되기도 했다. 그러나 뉴질랜드는 굴하지 않고 이후 남태평양 국가들과의 비핵화선언인 라로통가 조약(Treaty of Rarotonga)을 체결, 2006년 기준 노동당(Labour Government) 헬렌 클라크(Helen Clark) 총리는 야당인 국민당(National Party)의 지지도 함께 이끌며 뉴질랜드 비핵화지대(Nuclear-free zone)의 입지를 고수하고 있다.
뉴질랜드는 어떤 나라?
뉴질랜드는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서 남동쪽으로 약 2,000km 떨어져 있는 섬나라로, 총면적은 한반도의 1.2배 정도인 267,710km2에 이른다. 두 개의 큰 섬과 여러 개의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큰 섬 두 개는 쿡 해협을 사이에 두고 북섬과 남섬으로 나뉜다.
뉴질랜드 전체 인구의 75% 이상이 살고 있는 북섬에는 수도 웰링턴과 오클랜드 같은 주요 도시가 있으며, 남섬에는 서던 알프스를 중심으로 형성된 빙하 지형을 비롯하여 오염되지 않은 자연 경관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뉴질랜드는 독립한 뒤에도 여전히 영국 연방의 일원으로 남아,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국가 원수를 맡고 있는 입헌 군주국이다.
또 영국 국왕의 대행자인 총독이 5년의 임기로 파견되지만 이것은 정치적 상징일 뿐, 실제로는 뉴질랜드 내에서 선출된 총리와 내각이 이끄는 의원 내각제를 구성하고 있다. 전체 인구는 약 430만 명 정도로, 세계적으로 국토에 비해 인구가 적은 나라이다. 인구의 약 57%가 유럽계 백인이고 7.4%가 마오리족, 그 외 9.7%의 혼혈인과 아시아 이민자들로 구성되어 있다.(2006년 기준)
약 70%의 인구가 로마 가톨릭과 장로교, 감리교 등 기독교 계열을 믿으며, 언어는 영어와 마오리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지구 남반구에 위치한 뉴질랜드는 우리나라 계절과 반대로 12월에서 2월이 여름, 6월에서 8월이 겨울이다. 남극에 가까운 남섬이 북섬에 비해 추운 편이지만, 전체적으로 해양성 기후에 속해 1년 내내 온화한 편이다.
마오리와 파케하,
마오리는 '평범한, 보통'이라는 뜻으로 뉴질랜드 원주민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말이다. 또 파케하는 '얼굴 흰 이방인'이란 뜻으로 뉴질랜드에 온 유럽인을 처음 본 마오리인들이 외친 말이라고 한다. 뉴질랜드는 먼저 이 땅에 살던 원주민인 마오리인과 영국, 네덜란드, 독일 등 유럽 각지에서 이주한 파케하가 함께 살고 있는 나라이다.
서양인들이 처음 뉴질랜드로 이주한 19세기 초반 이후 이민자들의 수는 계속해서 늘었고, 이 때문에 한정된 땅을 둘러싸고 마오리와 파케하 사이에 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분쟁이 전쟁으로 확대되며 마오리족이 큰 피해를 입기도 했지만 공존할 수 있도록 갈등을 해결하여, 지금도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인정하면서 뉴질랜드라는 하나의 문화를 이루고 있다.
뉴질랜드는 선진국으로 분류된다. 또한 삶의 질, 보건, 교육, 시민자유의 보호, 경제적 자유와 같은 국가 성과에 대한 국제적 비교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뉴질랜드는 1980년대 주요 경제적 변화를 겪었고, 경제 역시 보호주의에서 자유 무역으로 선회했다. 뉴질랜드의 경제에서 서비스업이 다수를 차지하며, 산업과 농업이 그 다음으로 많다. 관광은 뉴질랜드의 중요한 수입원이다.
뉴질랜드 의회는 단원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뉴질랜드의 총리가 이끄는 내각이 행정기관의 역할을 한다. 현재 뉴질랜드의 총리는 저신다 아던이다. 엘리자베스 2세가 뉴질랜드의 군주이며, 뉴질랜드의 총독이 여왕을 대신하는데, 현재 총독은 팻시 레디이다. 뉴질랜드의 행정 구역은 11개이며 지방자치를 목적으로 한 67개의 지역 당국이 있다.
뉴질랜드 왕국은 뉴질랜드의 속령인 토켈라우, 뉴질랜드와 자유연합 관계인 니우에와 쿡 제도, 그리고 뉴질랜드가 남극에서 영유권을 주장하는 로스 속령이 포함된다.
뉴질랜드는 유엔, 영국 연방, ANZUS, APEC, ASEAN 플러스 6,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 태평양 공동체, 태평양 제도 포럼의 회원국이다.
유엔 기념 공원의 뉴질랜드 참전 용사 기념비,
한국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45명의 뉴질랜드 군인을 기리는 이 비석에는 영어, 마오리어, 한국어로 비문이 새겨져 있다.
참조항목
카테고리
출처 ^ 참고문헌,
[네이버 지식백과] 뉴질랜드의 역사 (두산백과)
[뉴질랜드 [New Zealand]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doopedia.co.kr
[뉴질랜드 - 지상의 낙원 (뉴질랜드에서 보물찾기, 2011., 곰돌이 co.,)
#뉴질랜드 #뉴질랜드의 역사 #대한민국과는 1962년 외교관계가 수립되었다 #1964~72년까지 베트남 전쟁에 군대를 파병하였다 #1951년에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미국은 공식적으로 안전보장조약(ANZUS Treaty)을 체결했다 #태평양 지역 방어를 위한 군사동맹이다. 1985에는 비핵화지대(Nuclear freezone)을 선언하였으며 #1987년 David Lange가 이끄는 노동당에 의해 뉴질랜드 비핵화지대 선언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미국 핵추진함에 대한 뉴질랜드 기항불허로 이어져 ANZUS조약의 권리가 중지되기도 했다 #뉴질랜드는 굴하지 않고 이후 남태평양 국가들과의 비핵화선언인 라로통가 조약(Treaty of Rarotonga)을 체결 #2006년 기준 노동당(Labour Government) 헬렌 클라크(Helen Clark) 총리는 야당인 국민당(National Party)의 지지도 함께 이끌며 #뉴질랜드 비핵화지대(Nuclear-free zone)의 입지를 고수하고 있다 #마오리전쟁이 일어났다 #영국은 마오리족의 반영(反英) 감정 완화를 위해 힘썼고 #식민지 회의에 마오리족 대표를 참가시키는 등 #영국인과 동등하게 대우하려는 노력을 통해, 1870년부터는 인종분쟁이 끝나고 마오리족의 영국화가 시작되었다 #마오리족과의 공존관계 설정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고자 한 노력은 다른 식민지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해법이어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뉴질랜드는 개척이 진전됨에 따라 #1907년 영국의 자치국이 되었다가 #1947년 독립 #제1·2차 세계대전 때에는 영국 본국과 함께 연합국의 일원이 되어 참전·활약 #유엔 기념 공원 #뉴질랜드 참전 용사 기념비 <script data-ad-client="ca-pub-4162949345545299" async src="https://pagead2.googlesyndication.com/pagead/js/adsbygoogle.js"></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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