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26일 목요일

尹 전 총장 "우리 군대 어쩌다 이지경..!? 文정권 책임 통감해야"

尹 전 총장 "우리 군대 어쩌다 이지경..!? 文정권 책임 통감해야"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27일 문재인정부 집권 이후 군의 기강 해이를 비판하며 "참담하다"라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은 이날 서울 대방동 공군호텔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국방포럼'에서 "현 정권은 우리 군을 적이 없는 군대, 목적이 없는 군대, 훈련하지 않는 군대로 만들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잇단 군내 성폭력 사건과 청해부대원 코로나19 집단감염 등을 거론하며 "어쩌다 군이 이 지경까지 왔을까 하는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했다.

그는 "이 정권은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며 "이제라도 군대다운 군대를 만들고,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4차산업 혁명시대에 맞는 새로운 국방전략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며 "첨단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저인력 고효율 국방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국민의례하는 윤석열 예비후보,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예비후보가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공군호텔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국방포럼 세미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2021.8.27 [국회사진기자단]  (서울=연합뉴스) 

윤 전 총장은 "군대의 정신력은 물리적 전투력보다 훨씬 강하다"

"자유월남(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 사례가 이를 입증한다.

이제라도 국가방위 의지를 확고히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 전 총장은 대권 행보를 본격화한 이래 안보 가치를 부각하며 보수지지층과 보조를 맞추는 데 공을 들여왔다.

이날 포럼에는 강원도가 지역구인 권성동 의원이 동행했다.

국방포럼 세미나 참석 마치고 기자 질문에 답하는 윤석열,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예비후보가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공군호텔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국방포럼 세미나 참석을 마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1.8.27 [국회사진기자단]  (서울=연합뉴스) 겸쳐,

이날도 "강력한 안보는 자유와 번영의 전제 조건"이라며 "우리의 목표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자유월남, 베트남 공화국



남베트남은 여기로 연결됩니다.

남베트남 지역에 수립된 북베트남의 괴뢰 국가에 대해서는 남베트남 공화국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자유 베트남은 여기로 연결됩니다. 미국에 망명한 정치체에 대해서는 자유 베트남 정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베트남 공화국/ 표어/ 국가/ 수도/ 정치/ 정부 형태/ 총통1955-631965-75역사 • 정권 교체• 사이공 함락지리1955년 어림 면적인문공용어인구1955년 어림인구 밀도경제통화,

Việt Nam Cộng Hòa



국기


국장
Tổ quốc - Danh dự - Trách nhiệm (1954 - 1967)
조국, 명예, 책임
Tổ quốc - Công minh - Liêm chính (1967 - 1975)
조국, 공정, 청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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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공 10°46′10.56″N,106°41′7.8″E
공화제

응오딘지엠
응우옌반티에우
냉전
1955년 10월 26일
1975년 4월 30일
173,809 (67,108 sq mi)
베트남어
12,000,000명
-69/km2 (178.8/sq mi)
-111.4/km2 (288.6/sq mi)
 (dong)
남베트남의 지도

베트남 공화국(베트남어Việt Nam Cộng Hòa비엣남 꽁호아?) 또는 남베트남은 1955년 10월 26일부터 1975년 4월 30일까지 북위 17도 베트남 군사분계선 이남에 존재했던 나라이다.

군사분계선 이북의 베트남 민주 공화국(북베트남)과 대치하였다.

베트남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종결되면서 프랑스와 비엣민의 휴전으로 1954년 체결된 제네바 협정에 따라 분단되었는데, 베트남 공화국의 전신인 베트남국(1949년 6월 14일 - 1955년 10월 26일)을 남베트남의 역사에 포함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진영에선 정치이념에 따라 북베트남과의 구분을 위해 자유 월남자유 베트남 등으로도 불렸다.


목차,


국명의 변동,


역사,

베트남국,

이 부분의 본문은 베트남국입니다.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다른 지역(안남통킹캄보디아라오스)이 보호령이었던 데 반해 베트남 남부 코친차이나는 사이공을 수도로 하는 식민지 지위에 놓여 있었다. 

1862년 프랑스에 합병된 후, 프랑스 국회에 보낼 대표자 선거가 치러지기도 했다.

따라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다른 지역에 비해 프랑스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중에 프랑스는 코친차이나를 베트남의 다른 지역과 독립된 지위를 유지하여 속칭 "인도차이나 연방" 내의 독립국으로 유지하려 했으나 비엣민은 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바오다이 정권,

베트남국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중인 1949년 6월 14일반공주의 베트남인과 프랑스 정부에 의해서 세워져 국가 원수로 전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황제였던 바오다이가 취임했다.

프랑스는 베트남국에 부분적인 자치권을 주었다.

그러나 호찌민이 이끄는 비엣민은 이를 거부하고 베트남의 완전한 독립을 얻을 때까지 투쟁하였다.

1954년 제네바 협정에 의해 베트남국은 북위 17도 이남을 잠정적으로 통치하고, 선거를 통해 통일 정부를 수립하도록 결정되었다.

그러나 선거와 통일은 이뤄지지 않았다.

베트남의 분단이 결정되자 주로 가톨릭을 믿는 약 80만-100만 명의 베트남인들이 공산주의자들로의 박해를 피해 북베트남에서 남베트남으로 이주하였다. 

1955년 10월 26일응오딘지엠이 "베트남 공화국" 수립을 선언하고 바오다이 황제를 폐위시켰다.


베트남 공화국,

베트남 공화국은 1955년 10월에 남베트남에 수립된 나라로, 초대 대통령은 응오딘지엠이었다.

응오딘지엠은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들였고, 베트남 공화국이 프랑스로부터 독립된 나라라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알리려 하였으나, 대부분의 고위 관료 및 군대 중추는 프랑스 치하에서 프랑스를 위해 복무했던 자였기 때문에 정통성 문제에서 북부의 공산국가인 베트남 민주공화국에 밀렸다.

일례로, 베트남 공화국의 정규군인 베트남 공화국군의 장교 중 95% 이상이 프랑스군 및 프랑스의 괴뢰군이었던 베트남 국민군에서 장교를 수행했던 전력이 있었다.

이는 태생적 한계로 작용하였다. 심지어 국체(國體) 전반이 과거 프랑스의 괴뢰국이었던 베트남국의 제도를 그대로 이어받은 상태였다는 점에서도 문제점이 지적됐다.

1956년 응오딘지엠은 토지 개혁을 실시했으나, 이는 토지 분배가 아닌, 소작료 제한책에 그치는 개혁이었기 때문에 지방 농민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심지어, 이러한 소작료 인하는 오히려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시기 월맹 게릴라 조직이 남부 일부 지역에서 실시했던 소작료 인하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의 소작료를 강제하는 것이었기에 오히려 농민의 삶은 이전보다 후퇴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결과로 소작 쟁의가 끊이질 않았다.

한편, 베트남 남부 지역에서 활동했던 공산주의 조직은 이를 파악하여 소작농과 빈민을 규합하였고, 그 결과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베트콩)이 성립되었다.

응오딘지엠의 정책에 미숙성을 이미 알고 있던 미국은 행정 고문관을 보내 농촌 통제 정책을 실시하였으나, 이는 오히려 베트남 공화국에 대한 농민의 반감을 더욱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응오딘지엠 정권의 심각한 부패는 국민 단합을 불가능하게 하는 원인으로 되었다.

이로 인해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영향력이 더욱 커졌다.

이와 더불어, 응오딘지엠은 공산 게릴라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소작농을 탄압했고, 이는 전체적인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응오딘지엠은 군부 관리도 실패하였다.

남베트남군 장교의 대다수는 프랑스 치하에서 장교로 복무했던 전력이 있었는데, 응오딘지엠은 나름 남베트남 정부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프랑스군 출신 인사를 최대한 배제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는 군부 지지의 하락으로 이어졌다.

1963년에 군부 실세이자 군사 최고 고문이었던 즈엉반민이 쿠데타를 감행하였고, 응오딘지엠은 살해되었다.

그러나, 권좌를 잡은 즈엉반민도 다른 군부에 의해 쿠데타로 물러나게 되었으며, 이후 연이은 쿠데타로 정상적인 국정 운영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기나긴 혼란 끝에 응우옌반티에우가 1966년에 군부의 지지를 받는 데에 성공하였고, 1967년에 그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베트남 공화국의 행정 혼란은 다소 낮아졌다.

그러나, 고질적인 부정부패, 행정 무능, 권위주의 등의 문제가 청산되지 않았다.

특히, 미군, 대한민국 국군을 비롯한 수많은 지원군이 베트남 공화국을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국토의 대부분을 맡고 있는 베트남 공화국군의 전쟁 수행 능력은 최악이었기에 게릴라 군대에 불과한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에 빈번하게 패배했다.

1973년 1월 27일 파리 평화 협정을 통해 베트남 전쟁이 종전되었다. 이에 따라 남베트남 지역에 주둔했던 외국 군대는 모조리 철수하였다.

그러나, 산악 지대는 이미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과 공산 세력인 남베트남 인민혁명당이 지지력을 확고히 확보한 후였으며, 남베트남의 무능, 부패, 빈부격차 등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북부 베트남이 총공세를 펼쳤고, 1975년 4월 30일 수도 사이공이 함락하였다. 이로써 베트남 공화국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정부,

정부 조직,

베트남 공화국에는 다음과 같은 정부 조직들이 존재했다.

  • 문화교육부 (Bộ Văn hóa Giáo dục) 주소 : 33–5 Lê Thánh Tôn
  • 외교부 (Bộ Ngoại giao) 주소 : 4–6 Rue Colombert (현재의 4–6 Alexandre de Rhodes)
  • 보건부 (Bộ Y tế) 주소 : 57–9 Hong Thap Tu (현재의 57-9 Nguyễn Thị Minh Khai)
  • 사법부 (Bộ Tư pháp) at 47 Lê Duẩn
  • 국방부 (Bộ Quốc phòng) at 63 Lý Tự Trọng
  • 국가경찰사령부 (Bộ Tư lệnh Cảnh sát Quốc gia) 주소 : 258 Nguyễn Trãi
  • 공무통신부 (Bộ Công chính và Truyền thông) 주소 : 92 Nam Kỳ Khởi Nghĩa


남베트남의 지도자 목록,

베트남국의 국가 원수,


베트남 공화국의 국가 원수,


같이 읽기,


외부 링크,

베트남 공화국

 베트남 공화국군

베트남 전쟁

베트남 전쟁 연표v • d • e • h

베트남의 역사이전 시대

베트남 공화국1955년 ~ 1975년다음 시대

베트남국 남베트남 공화국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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