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 한라산 [漢拏山] 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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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1,950m으로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제3기 말∼제4기 초 용암이 분출하여 형성되었다.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줄기는 제주도 중앙에서 동서로 뻗는다. 남쪽은 경사가 심한 반면 북쪽은 완만하고, 동서쪽은 비교적 높으면서도 평탄하다.
정상에는 둘레 약 3㎞, 지름 500m의 화구호인 백록담(白鹿潭)이 있으며, 주위 사방에 흙붉은오름[土赤岳]·사라오름[砂羅岳]·성널오름[城板岳]·어승생오름[御乘生岳] 등 360여 개의 측화산을 거느리고 있다.
한라산은 예로부터 삼신산의 하나로 신성시해왔다.예로부터 부악(釜岳)·원산(圓山)·진산(鎭山)·선산(仙山)·두무악(頭無岳)·영주산(瀛州山)·부라산(浮羅山)·혈망봉(穴望峰)·여장군(女將軍) 등 많은 이름으로 불렸고, 민간 신앙에서는 금강산·지리산과 함께 삼신산(三神山) 가운데 하나로 치기도 한다.
한라산 자체가 신이 거주하는 상주처라 여겼는데, 그중에서도 백록담과 영실, 물장올은 더더욱 신성하게 생각했다.
1002년(고려목종 5)과 1007년에 분화하였다는 기록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나오는데, 1455년(조선세조 1)과 1670년(현종 11)에는 지진이 일어나 피해가 컸다는 기록도 있다.
가장 최근의 폭발 흔적은 서귀포시 상창리 인근에 있는 것으로 약 5천 년 전 폭발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한라산은 백두산,금강산과 함께 3대 영산으로꼽힌다. 한라 라는이름은 하늘의 은하수를 잡아서 다일만큼 높다 해서 붙여진 것이다.
한라산은 해발 1,950m로 남한 최고봉이면서도 사람들을 가까이하여 친숙함을 느끼게 하는 산이다.
해안지대에는폭포와주상절리등 아름다운화산지형이 펼쳐지고,해발고도에 따라아열대·온대·냉대등 1,800여 종에 달하는고산식물이 자생하여식생의 변화가 뚜렷하다. 봄의철쭉·진달래·유채, 가을의단풍, 겨울의 설경과운해가 절경이며, 곳곳에서 한라산의 상징인노루를 볼 수 있다.
사계절이 뚜렷한 변화를 보이는 가운데 하루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를 보이기도 하는 신비롭고 갖가지 레저를 즐길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갖고 있으면서도 아직 순수한 자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명산이 바로 한라산이다.
한라산의 겨울은 아름답다. 고사(枯死)된지 오래된 구상나뭇가지에 피어난 눈꽃들의 기묘함을 감상하며 드넓은 설원을 걷는 눈 속에 잠긴 설경의 한라는 절경 중의 절경으로 꼽힌다. 산마루에는 분화구였던 백록담이 있으며 고산식물의 보고로서 식물의 종류도 무려 1,800여종이나 되어 울창한 자연림과 더불어 광대한 초원이 장관을 이룬다. 뿐만 아니라 높은 절벽과 깎아지는 듯 한 비탈, 눈 덮힌 백록담과 백록담을 둘러싼 화구벽, 왕관능의 위엄, 계곡 깊숙히 숨겨진 폭포들,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의 전설이 깃든 영실, 이렇듯 오묘한 모습들이 한라산을 이루는 명소들이다. 정상부근의 진달래 군락과 구상나무군도 한라산의 경관으로 꼽힌다.
계절별 경관으로는 봄의 철쭉,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이 유명하며 특히 500~1,300 미터에 이르는 지역에서의 수빙현상(樹氷現象)과 1300미터 이상의 구상나무 숲에서 볼 수 있는 겨울철 한라산 경관, 그리고 백록담, 곰보바위 등의 빙판과 Y 계곡, 탐라계곡 등의 빙폭(氷爆)은 장관을 이룬다.
남한에서 가장 높은 우리나라 3대 영산의 하나로 산마루에는 분화구인 백록담이 있고 1,800여종의 식물과 울창한 자연림 등 고산식물의 보고이며 국립공원으로 지정(1970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되었다 남한의 최고봉으로서 백록담, 탐라계곡, 안덕계곡, 왕관릉, 성판암, 천지연 등이 유명하다.
백두산, 금강산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영산으로 꼽히는 한라산은 백록담이 있으며 고산식물의 보고로서 울창한 자연림과 더불어 광대한 초원이 장관을 이룬다. 산행철인 가을, 눈 덮힌 백록담과 백록담을 둘러싼 화구벽, 봄의 철쭉이 장관을 이룰 때 많이 찾는다.
1970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해마다 1월 마지막 주에는 어리목을 중심으로 눈꽃축제가 열린다. 동북쪽 기슭에 대한불교조계종 제23교구 본산인 관음사가 있다.예로부터 산 정상에 오르면 멀리 남쪽 하늘에 있는 노인성(老人星)을 볼 수 있었으며, 이 별을 본 사람은 장수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진산이란 보통 도읍의 뒤에 위치하여 그 지방을 편안하게 지켜주는 의미를 가진다. 한라산을 진산이라고 불렀던 까닭은 한반도로 밀려오는 남태평양의 큰 바람을 한라산이 막아주어 한반도의 안녕을 지켜 주기 때문이다. 원산이라는 이름은 산의 중앙이 제일 높아 무지개 모양으로 둥글고, 사방 주위가 아래로 차차 낮아져 원뿔 모양을 이루기 때문에 붙여졌다.
맑은 날 해남이나 진도에서 한라산을 바라보면 산 전체가 완만한 원뿔로 보인다. 두무악이란 머리가 없는 산을 의미하는데, 전설에 의하면 옛날에 한 사냥꾼이 산에서 사냥을 하다가 잘못하여 활끝으로 천제(天帝)의 배꼽을 건드렸는데, 이에 화가 난 천제가 한라산 꼭대기를 뽑아 멀리 던져 버렸다고 한다. 이 산정부가 던져진 곳은 지금의 산방산(山房山)이며, 뽑혀서 움푹 팬 곳은 백록담(白鹿潭)이 되었다고 한다.
원산이라는 이름은 산의 중앙이 제일 높아 무지개 모양으로 둥글고, 사방 주위가 아래로 차차 낮아져 원뿔 모양을 이루기 때문에 붙여졌다. 맑은 날 해남이나 진도에서 한라산을 바라보면 산 전체가 완만한 원뿔로 보인다.
영주산이란 중국의 『사기(史記)』에서 유래한다. 바다 가운데에 봉래(蓬萊)·방장(方丈)·영주 등 삼신산이 있는데, 그곳에는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약초가 있어 신선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진시황(秦始皇)은 서기 전 200년경 역사(力士) 서불(徐市)에게 그 약초를 구해 오도록 명하였다고 한다.
정조 연간에 간행된 읍지에 의하면, 한라산을 등산하는 데는 대정현 쪽으로 험한 산길이 하나 있어서 사람들이 이를 따라 수목 사이를 헤치며 올라가는데, 위에서 소란을 피우면 곧 운무가 사방을 덮어버려 지척을 분간하지 못하였다 한다.
5월에도 눈이 남아 있어 얼음이 필요하면 산에 올라가서 가죽 부대로 운반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녹담만설(鹿潭晩雪)이라는 것으로 제주 10경 중의 하나이다. 부악이란 산정의 깊고 넓은 분화구가 연못으로 되어 있어 마치 솥[釜]에 물을 담아 놓은 것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연못은 성록(聖鹿)인 흰 사슴이 물을 마시는 곳이라 하여 백록담이라고 하였다.
『세조실록』에 의하면 1464년(세조 10) 2월에 제주에서 흰 사슴을 헌납하였다[濟州獻白鹿]고 기록되어 있다. 제주도의 전역을 지배하며, 동심원상의 등고선을 나타내어 순상화산(楯狀火山)에 속한다.
한라산은 약 360개의 측화산(側火山)과 정상부의 백록담, 해안지대의 폭포와 주상절리(柱狀節理: 다각형 기둥모양의 금) 등의 화산지형, 난대성기후의 희귀식물 및 고도에 따른 식생대(植生帶)의 변화 등 남국적(南國的)인 정서를 짙게 풍겨 세계적인 관광지로 발전할 수 있는 자원을 갖추고 있다. 그리하여 1970년에 한라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한라산은 신령스러운 산이라 하여 조정에서 해마다 산정에서 국태민안을 비는 산제(山祭)를 지냈는데, 산제를 지내러 갔던 백성들이 동사하기도 하였다. 1469년(예종 1) 목사 이약동(李約東)은 지금의 산천단(山泉壇)에 산신묘를 세우고 이곳에서 산제를 지내도록 하여 그 석단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신생대 제3기 말에서 제4기에 이르는 5기(期)의 화산분출로 형성되었다.
제1. 화산분출은 기저현무암과 서귀포층을 형성하여 해저 기반을 이루며,
제2. 화산분출은 표선리 현무암과 서귀포 조면암 및 중문 조면암을 형성하여 육상지형을 이룬다.
제3. 분출기는 열로분출(列爐噴出)에서 중심분출 형태로 전환되는 시기로서, 제주 현무암·하효리 현무암·법정리 조면암 등이 분출하여 한라산 화산체(火山體)가 950m에 달하였다.
제4. 화산분출은 고산 지대에 집중되어 시흥리현무암·성판악현무암·한라산현무암 등을 형성 되었으며,
제5. 분출기는 백록담 화산폭발로 백록담 현무암이 분출하였고 고산 지대에는 300여 개의 분석구(噴石丘)가 형성되었다.
제2 분출기에 형성된 조면암질 기생화산은 산방산·화순월라봉(和順月羅峰)·군산(軍山) 등으로 동일 구조선상에 분포하며, 수중파쇄암 기생화산은 성산봉(城山峰)·두산봉(斗山峰)·고산봉(高山峰) 등으로 해중분출지형이고 산의 사면은 고도와 경사에 따라 네 부분으로 구분된다.
고도 200m 이하 해안저지대는 경사도 4° 이하로 완만하며, 고도 200∼600m 사면은 중산간지대이고, 600∼1, 200m의 산악지대는 경사도 10∼20°로 다소 가파르며, 1,200m 이상의 정상부는 경사도 20°이상의 고산 지대를 이룬다.
한라산의 사면에는 약 360개의 측화산이 발달하였으며, 산일대의 안산암(安山岩)에는 철분이 풍부한 감람석(橄欖石)이 많고, 현무암에는 알칼리 성분이 풍부하다. 이처럼 한라산체는 알칼리감람석현무암질 마그마의 분출로 이루어져 내태평양 지역에 산재하는 화산도와 비슷하다.
기생화산의 60%를 차지하는 분석구는 제5 분출기에 형성되었으며 200m 이상의 사면에 분포한다.
하천은 정상부를 중심으로 방사상 형태를 나타내며, 기반암이 불투수층인 경우 조밀하다. 경사가 완만한 용암대지(熔岩臺地) 지역에는 용암동굴이 많이 분포한다. 만장굴(萬丈窟)은 길이 1만 3268m로 세계에서 가장 긴 동굴이며, 빌레못동굴은 길이 1만 1748m로 단일동굴로서는 세계 최장(最長) 이다.
하천은 대체로 직류하며, 사면의 경사가 급하여 침식력이 크기 때문에 계곡이 깊고, 지반의 융기 및 해수면 변동과 관련하여 강정천(江汀川)·창고천(倉庫川) 양안에는 하안단구가 발달하였다.
용암동굴은 대체로 직선적·수평적이며, 용암동굴선반·용암종유·새끼구조용암 등의 미지형이 발달하였고, 2, 3층의 구조를 나타나있으며 토양은 화산재·화산모래·화산력 등을 모재로 한 화산회토로서, 유기물과의 결합력이 큰 치양토(埴壤土)가 대부분이다.
이 토양은 유기물 함량과 염기 치환 용량은 높으나 염기의 흡착력이 약하고 배수가 양호하여 용탈이 심하기 때문에 작물 생장에 양호한 편은 아니다. 이처럼 해안저지에서는 아열대성기후의 특성이 나타나지만 고도가 증가함에 따라 기온이 하강하여 고도별 기후대의 차이가 뚜렷하다.
중위도 난대성에 속하고 해양성이 강하며 남북의 지역 차가 심하다. 연평균기온은 15.5℃이나 남사면이 약 0.7℃ 높다. 연강수량은 북사면이 1,440㎜, 남사면이 1,718㎜로 우리나라 최다우 지역에 속하는데, 계절별로는 겨울철에는 북 사면이, 여름철에는 남사면이 강수량이 많은편이고, 산의 식물군집은 무기적 자연환경과 지질사적 요소 및 인위적인 요소에 의하여 성립된 것이다.
편의상 우점종(優占種)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상록활엽수림은 북쪽에서는 해안선에서 고도 600m까지, 남쪽에서는 700∼1,100m에까지 이른다. 표시종은 남오미자·참식나무·사스레피나무·굴거리나무·좀굴거리나무 등이분포해있으며,
식물상은 300여 종의 특산 및 희귀식물을 포함하여 1,800여 종의 육상식물이 한라산의 높이에 따라 다양하게 분포한다. 식물분포 구계상 중일식물구계(中日植物區系) 중 한일난대아계(韓日暖帶亞系)에 속하며, 표시종(標示種)은 붉가시나무·구실잣밤나무·동백나무 등의 상록활엽수(常綠闊葉樹)이다. 이 구역에는 287종의 수목이 있는데 이 중에서 31%(89종)가 상록수이며, 그 중 62%는 난대성으로 해안에 가까운 계곡과 평지 및 산록지대에서 자생한다.
한라산 보존구역의 중심이 되는 한라산의 식물군집은 고도에 따른 수직적 분포대의 구분이 현저하다. 이 산은 섬에 있어 다른 산들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았기 때문에 내륙의 산들에 비하여 그 환경이 비교적 단순하다.
한라산 중복(中腹)의 온대림은 한반도에서와 같이 서나무·졸참나무·단풍나무·산벚나무 등으로 구성된다. 그 윗부분에는 물참나무의 순림(純林)이 발달하였으며, 더 높은 곳의 한대림은 구상나무·고채목 등이 대표적인 종이다. 정상부에는 떡버들·털진달래·눈향나무·시로미·설앵초·담매·들꽃나무 등이 자란다.
난대상록수림은 녹나무속·가마귀쪽나무속·후박나무속·벌꿀속·모밀잣밤나무속·가시나무아속·모람속·돈나무속·다정큼나무속·굴거리나무속·호랑가시나무속·보리수과·담팔수속·동백나무속·사스레피나무속·후피향나무속·산유자나무속·황칠나무속·식나무속·쥐똥나무속·마삭줄속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난대성 상록활엽수의 80%는 일본과의 공통종이며, 고유종은 8%에 불과하다. 이와 같이 한라산에는 난대·온대·한대의 식물대가 분포하는데, 그 한계선은 남쪽이 북쪽보다 높다.
해류의 영향에 따른 기온·강수량·설선(雪線)의 차이 및 계절풍의 영향 등 주로 기상 조건의 차이 때문에 바다바람 에강한 이고장의 특산 식물로는 바늘엉겅퀴·한라구절초·좀민들레·한라송이풀·애기솔나물·두메대극·섬바위강대·게주황기·제주달구지풀·솔비나무·제주당귀·한라개송이·바위젓가락나물·한라꿩의다리·섬쥐송이·섬매자나무·좀갈매나무·병개암나무·시옥물참나무·가시복분자·제주조릿대 등 약33종이 분포해있다.
이 밖에 우리나라의 중부·북부와 일본의 고산 지대에만 분포하는 들쭉나무, 일본의 서남단부에서만 자라는 참꽃나무, 북방분자로서 우리나라에서는 백두산에서만 자생하는 담매·시로미, 난대성식물로서 다른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해녀콩·문주란·파초일엽·한란·목련·환근·비자나무·솔잎란·왕벚나무 등이 있다. 특히, 일본이 나라의 꽃으로 삼고 있는 왕벚나무의 자생지도 제주도이다.
1997년 식생의 구성은 20여 개의 군집으로 구분되는데 이 중 서어나무·개서어나무 군집이 전체 면적의 53.7%를 차지하고, 물참나무·졸참나무 군집이 25.7%, 소나무 군집이 8.3%, 구상나무 군집이 4.5% 로 되어 있다.
동물상은 분포 구계상 구북구(舊北區) 중 북부중국아계의 한국구(韓國區)에 속한다.
제주도는 대륙과 일본 사이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한대성과 열대성이 섞여 서식한다. 예를 들면, 평지에는 아열대성의 맹꽁이와 난대성의 청개구리가 서식하며, 중복 삼림지대에는 북방산개구리가 살고 있고 산정의 백록담 연안에는 무당개구리가 있다.
북방산개구리와 무당개구리는 모두 북방분자이며, 특히 무당개구리는 중국 윈난성(雲南省)의 고지와 한라산 지대가 분포상 남한계선을 형성한다.곤충류에서도 한대성인 산굴뚝나비와 아열대성인 암붉은오색나비·남방공작나비 등이 함께 서식한다.
지역의 동물상은 곤충류 1,602종(제주도 특산 12종 포함), 양서·파충류 17종, 조류 240종, 포유류 19종 등이다.
특산종으로는 모주둥이노린재·제주양코스커딱정벌레·제주풍뎅이·제주은주둥이벌참위영벌 등이 있다.
포유류로는 맹수는 없으나 노루가 많고 제주족제비가 서식한다. 조류로는 팔색조가 번식하고 제주딱다구리·꿩 등이 많다. 산지 동물들 가운데 멧돼지·대륙사슴은 전멸하였고 큰노루·살쾡이·원앙기러기·두루미·흑두루미·재두루미·무당개구리 등은 멸종 위기에 놓여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어음리의 빌레못동굴유적에서 긁개·첨기·홈날석기·돌날 등의 타제석기와 갈색곰·순록 등의 화석과 뼈가 발견되었고, 조천읍 북촌리유적에서 삼각형 점렬(點列)무늬토기와 원형 점렬무늬토기가 발견되어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는 전역에서 발견되며, 고인돌·옹관묘·석곽묘·공렬토기(孔列土器) 등도 발견된다. 도의 삼성신화(三姓神話)에 의하면 고(高)·양(良)·부(夫) 3신이 모흥혈(毛興穴, 삼성혈, 사적 제134호)에서 나와 자손을 번창하게 하였으며, 그 뒤 고을나(高乙那)의 15세 손이 신라에 내조(來朝)하였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고려 후기에는 삼별초(三別抄)가 여몽연합군에 밀려 들어와 분전하다가 항파두리(缸坡頭里)에서 패하였다.(이것을 삼별초 의난 이라고함) 그 후 원나라는 1276년(충렬왕 2)에 몽고말 160필을 들여와 성산읍 수산평(水山坪)에 방목하였고, 말 사육의 전문가인 목호(牧胡)를 파견하여 직접 관리하였다.
제주도의 목장은 조선 시대에까지 이어졌으며 성종 때에 100개로 정리되었다. 이 지역은 자연경관과 식물에 관련한 천연기념물과 기념물은 많으나 사적문화재는 빈약하다. 사찰로는 관음사(觀音寺)·천왕사(天王寺)·산방산사(山房山寺) 등이 있고, 성읍(城邑)에는 향교와 성지(城址)·현청사·돌하루방 등이 있다.
도민들은 11세기 초에 두 차례 있었던 한라산의 화산 폭발로 많은 희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그러한 한라산을 버리지는 못하였다. 화산 폭발이 있을 때마다 동굴에 숨거나 잠시 테우(배)를 타고 바다로 피신하였을지언정 그들 스스로 이곳에서의 삶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비록 바람 많고 재난 많은 땅을 유산으로 물려받기는 하였으나 한라산이 곧 삶의 터전으로 한라산없는 섬 생활이란 생각지도 못하였다. 더욱이 태풍과 가뭄과 풍랑은 제주도민들에게 있어서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것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고난의 역사는 재해뿐만 아니라 인위적인 여건에 의해서도 끊일 줄 몰랐다. 몽고의 야만적인 지배생활이 그랬으며, 근세에는 일부 파견 관리들의 수탈에 시달림을 받았다.
태풍과 전쟁 및 굶주림의 역사를 잘 알고 있다. 원나라가 고려에 침입하였을 때 삼별초를 이끌고 온 김통정(金通精)은 항파두리전투에서 패하고 붉은오름의 싸움에서 전우들을 모두 잃자 산 위로 올라가 비분을 참지 못하고 자결하였다. 그런가 하면 제주도에는 유난히도 민란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