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14일 금요일

영상편집 프로그램,

영상편집 프로그램,
1, 다빈치 리졸브(Davinci Resolve)
타임라인을 기반으로 한 영상편집과 색보정이 가능한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이다.
 국내 광고나 드라마에도 많이 사용되며, 영화에도 많이 사용된다고 하는데 유료버전과 무료 버전이 존재하지만 무료 버전 만으로도 유료버전의 90% 수준의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하니 굳이 유료버전을 사용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수준의 영상을 제작하는 데는 문제가 없지 않을까 한다.
 다만 원활한 프로그램 사용을 위해서는 외장 그래픽카드가 거의 필수 수준으로 요구되는 데다가 AMD 계열의 그래픽 카드의 경우 정상 작동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참고하는 것이 좋다.
다빈치 리졸브 다운로드,
우선 아래의 링크를 통해 사이트에 접속하도록 하자.
사이트에 접속하면 프로그램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이 나오는데 다빈치 리졸브 다운은 페이지의 가장 아래 부분에서 찾을 수 있다.
다운로드 버튼을 클릭하면 설치하려는 컴퓨터의 운영체제(맥, 윈도우, 리눅스)를 선택하는 부분이 나타난다.
 자신의 운영체제에 맞는 버튼을 클릭하도록 하자.
그다음은 간단한 정보를 입력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표시 있는 부분만 입력하면 되며, 굳이 정확한 정보를 넣지 않아도 크게 문제는 없는 듯하다.
여기까지 입력이 끝났다면 이제 바로 다빈치 리졸브의 다운로드가 시작될 것이다.
 다운로드가 바로 시작되지 않으면 직접 버튼을 클릭하여 다운로드를 하도록 하자. (용량은 약 920MB)
다빈치 리졸브 설치,
 파일의 다운로드가 끝났다면 우선 압축을 풀고 파일을 실행하면 되는데 처음 컴포넌트 부분은 일단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조금만 기다리면 셋업 창이 나타나며 설치를 할 수 있는데 이 부분부터는 다른 프로그램의 설치와 같이 별다른 특이 사항이 없으니 안내대로 진행하면 쉽게 설치가 가능하다.
 (라이선스 동의 체크, 설치 경로 지정 등)
설치가 완료되면 Resolve아이콘으로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으며 처음 실행하면 기본적인 확인 및 설정 후에 프로그램이 실행될 것이다.
실행되지 않거나 에러가 나는 경우,
1) 관리자 권한으로 실행 혹은 재설치.
 의외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며 설치된 폴더가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어서 재설치 시에 폴더를 변경해보는 것도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2) 호환성 실행.
 윈도우 10을 사용 중이라면 윈도우 8k 버전으로 호환성 설정하여 실행 하면 문제 해결이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3) 그래픽 드라이버 업데이트.
 그래픽 카드를 많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인 만큼 드라이버 최신 드라이버로 업데이트하는 것으로 해결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2, Google Play에서 다운로드,
Android 5.1 이하에서 앱 권한 검토,
Android 5.1 이하 버전을 실행하는 기기에서 Google Play의 앱을 다운로드하려면, 먼저 기기의 특정 기능이나 정보에 액세스할 권한(권한 그룹)을 앱에 부여해야 할 수 있습니다.
도움말: 사용 중인 기기의 Android 버전을 확인하려면 기기의 설정 앱 
을 열고 시스템 
휴대전화 정보 또는 태블릿 정보를 탭합니다.
앱 다운로드 화면에서 앱 권한 검토,
Google Play에는 앱에서 액세스할 수 있는 권한 그룹이 표시됩니다. 이 정보는 앱 설치 여부 결정에 참고가 될 수 있습니다.
모든 다운로드 화면에는 가장 중요한 권한 그룹이 표시됩니다. 앱이 기기에 액세스할 수 있는 전체 권한 목록을 보려면 아래 '특정 앱에 대한 모든 권한 보기'의 안내를 따르세요.
앱이 권한 그룹에 액세스하도록 허용하면 앱은 해당 그룹에 포함된 모든 권한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미 허용한 권한 그룹에 포함된 개별 권한 업데이트는 직접 승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Google Play의 추가 앱 보안,
Google Play의 앱은 Google Play의 정책도 준수해야 합니다. 이 정책을 위반하는 앱은 삭제됩니다. 또한 Google에서는 잠재적으로 유해한 소프트웨어로부터 사용자를 보호하기 위해 개발자 계정과 함께 새 앱 및 기존 앱을 분석하는 시스템도 갖추고 있습니다.
특정 앱의 모든 권한 보기,
Google Play 스토어에서 앱의 최신 버전이 사용하는 개별 권한과 권한 그룹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play.google.com/store로 이동합니다.
  2. 앱의 세부정보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3. '추가 정보'에서 '권한'을 찾아 세부정보 보기를 선택합니다.
권한 그룹의 정의,
아래 그룹 중 하나를 선택하면 권한 그룹에 포함된 정보를 자세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권한 그룹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권한은 모두 '기타'로 표시됩니다.
참고: 향후 Android 운영체제에서는 특정 권한이 추가되거나 재분류되는 등 권한 작동 방법에 변경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앱 업데이트 동안 권한 승인 관리,
앱을 업데이트할 때 업데이트하는 앱에 대한 권한 그룹에 변경이 생길 수 있습니다.
관련 도움말,
Android 6.0 이상을 실행하는 기기에서 개별 권한을 변경하는 방법을 자세히 알아보려면 앱 권한 관리를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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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13일 목요일

안동 하회마을, 봉정사, 만휴정,

안동 하회마을, 봉정사, 만휴정,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천년 고찰 안동 봉정사,
우리나라의 종합 승원을 묶어서 유네스코 세계유산 중 문화유산에 등재한 사찰의 하나인 안동의 봉정사,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안동 봉정사. 672년에 지어진 절 입니다. 대략 1400년 이나 되었습니다. 대단하다는 말 밖에 표현할게 없습니다. 우리 건축물의 아름다움과 이미 자연의 부분이 되어버린 고운 사찰의 정취를 더듬어 보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위안과 마음의 정화를 안길 것 입니다,

갈림길에서 만세루로 향하다가 돌아보니 무심코 보고 온 화단의 모습에 깜짝 감동! 아름답게만 만든 게 아니라 부처의 형상으로 꾸며져 있읍니다, 지나온 세월의 두께만큼 단장한 만세루는 기묘한 소나무 한 그루를 수문장으로 내세우고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잔잔한감동이~~~

절의 출입문이 되는 만세루 아래로 들어서니 돌계단 너머로 모습을 드러내는 대웅전! 이 비경만으로도 문화유산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읍니다,~~​

신라 신문왕 12년(672)에 능인대사가 창건한 봉정사의 중심인 대웅전(국보 311호)! 건축물의 아름다움은 당연하지만 날 것같은 자연석 축대와 세월대로 퇴색한 단청이 위엄을 돋보이게 합니다,

극락전에서 바라본 조망은 이곳이 이미 자연의 풍경이 되어버렸음을 알겠어요! 3층 석탑을 중심으로 오른쪽은 고금당(보물 449호), 왼쪽은 화엄강당(보물 448호)의 뒷편입니다~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촬영지인 영산암의 정면 모습인데요, 별다른 대문이 없이 관심당과 일체로 된 우회루가 대문 역할을 합니다~ 소박하지만 친근한 첫인상과 더불어허리를 굽혀 조심히 들어가야 하는, 스스로를 낮추는 가르침도 베푸는 구조가 가슴에 진하게 와닿읍니다, 건물이ㅁ'자형으로 건물이 배치된 이 암자의 송암당 전각! 반석에 생명의 근원을 심은 멋스러운 소나무가 선물한 이름일까요?

영산암의 중심 건물인 나한전과 작은 석등! 절집이라기보다는 전통 한옥의 정원에 들어서 있는 느낌으로, 고건축의 아름다움과 소소한 것도 자연의 풍경이 되는 정취는 찾아온 이들에게 안겨주는 고귀한 선물이에요~ 안동 봉정사는 종교적 의미를 넘어서한국인 정서의 바탕을 일깨워주고 우리의 감성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너무나 아름다운 곳 입니다, 버스를 타고 온다면 안동 초등학교에서 봉정사로 오는 버스로 351번을 타면 봉정사에 하차할 수 있다고 해요. 봉정사에 입장할 때는 입장료가 따로 있는데요. 매표소에서 바로 현장 결제하면 되는데 비용은 성인 기준 2천원(청소년/군인 1,300원, 아이는 600원)이고 주차료는 따로 없읍니다.

봉정사는 2018년 국내의 여러사찰들과 함께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 극락전이 있는곳이기도하다. 하지만 정작 그 창건에 대한 역사가 문헌이나 여러곳에서 알려져 있지가 않은 아이러니한 그런곳이기도 하다.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이 오래전 방문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던 안동의 봉정사 가있읍니다,

봉정사 입구에서 맨먼저  만세루가 위치하고 있으며 만세루는 1680년(숙종6년) 건립된것으로 전해진다,

국보 제15호 봉정사 극락전은 우리나라 목조건축물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1972년 해체수리시 1363년에 중창 되었다는기록이 발견되면서 이전까지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부석사의 무량수전이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로 알려져있었다.

삼성각 앞에 있는 고목나무인데 기골이 장대한 장군처럼 멋진 모습을 하고 있음니다, 스님한테 꾸중듣고 오신분들께 인사드려라 하고 줄을 풀어주니 돌아가면서 인사도 하는망이,(개이름)안동 하회마을, 봉정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천년 고찰 안동 봉정사,
우리나라의 종합 승원을 묶어서 유네스코 세계유산 중 문화유산에 등재한 사찰의 하나인 안동의 봉정사,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안동 봉정사. 672년에 지어진 절 입니다. 대략 1400년 이나 되었습니다. 대단하다는 말 밖에 표현할게 없습니다.
우리 건축물의 아름다움과 이미 자연의 부분이 되어버린 고운 사찰의 정취를 더듬어 보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위안과 마음의 정화를 안길 것 입니다,

갈림길에서 만세루로 향하다가 돌아보니 무심코 보고 온 화단의 모습에 깜짝 감동! 아름답게만 만든 게 아니라 부처의 형상으로 꾸며져 있읍니다, 지나온 세월의 두께만큼 단장한 만세루는 기묘한 소나무 한 그루를 수문장으로 내세우고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잔잔한감동이~~~

절의 출입문이 되는 만세루 아래로 들어서니 돌계단 너머로 모습을 드러내는 대웅전! 이 비경만으로도 문화유산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읍니다,~~​

신라 신문왕 12년(672)에 능인대사가 창건한 봉정사의 중심인 대웅전(국보 311호)! 건축물의 아름다움은 당연하지만 날 것같은 자연석 축대와 세월대로 퇴색한 단청이 위엄을 돋보이게 합니다,

극락전에서 바라본 조망은 이곳이 이미 자연의 풍경이 되어버렸음을 알겠어요! 3층 석탑을 중심으로 오른쪽은 고금당(보물 449호), 왼쪽은 화엄강당(보물 448호)의 뒷편입니다~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촬영지인 영산암의 정면 모습인데요, 별다른 대문이 없이 관심당과 일체로 된 우회루가 대문 역할을 합니다~ 소박하지만 친근한 첫인상과 더불어허리를 굽혀 조심히 들어가야 하는, 스스로를 낮추는 가르침도 베푸는 구조가 가슴에 진하게 와닿읍니다, 건물이ㅁ'자형으로 건물이 배치된 이 암자의 송암당 전각! 반석에 생명의 근원을 심은 멋스러운 소나무가 선물한 이름일까요?

영산암의 중심 건물인 나한전과 작은 석등! 절집이라기보다는 전통 한옥의 정원에 들어서 있는 느낌으로, 고건축의 아름다움과 소소한 것도 자연의 풍경이 되는 정취는 찾아온 이들에게 안겨주는 고귀한 선물이에요~ 안동 봉정사는 종교적 의미를 넘어서한국인 정서의 바탕을 일깨워주고 우리의 감성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너무나 아름다운 곳 입니다, 버스를 타고 온다면 안동 초등학교에서 봉정사로 오는 버스로 351번을 타면 봉정사에 하차할 수 있다고 해요. 봉정사에 입장할 때는 입장료가 따로 있는데요. 매표소에서 바로 현장 결제하면 되는데 비용은 성인 기준 2천원(청소년/군인 1,300원, 아이는 600원)이고 주차료는 따로 없읍니다.

봉정사는 2018년 국내의 여러사찰들과 함께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 극락전이 있는곳이기도하다. 하지만 정작 그 창건에 대한 역사가 문헌이나 여러곳에서 알려져 있지가 않은 아이러니한 그런곳이기도 하다.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이 오래전 방문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던 안동의 봉정사 가있읍니다,

봉정사 입구에서 맨먼저  만세루가 위치하고 있으며 만세루는 1680년(숙종6년) 건립된것으로 전해진다,

국보 제15호 봉정사 극락전은 우리나라 목조건축물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1972년 해체수리시 1363년에 중창 되었다는기록이 발견되면서 이전까지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부석사의 무량수전이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로 알려져있었다.

삼성각 앞에 있는 고목나무인데 기골이 장대한 장군처럼 멋진 모습을 하고 있음니다, 스님한테 꾸중듣고 오신분들께 인사드려라 하고 줄을 풀어주니 돌아가면서 인사도 하는망이,(개이름)


하회마을

안동의 상징과도 같은 하회 마을낙동강 지류가 마을을 휘감아 지나가는 물돌이 마을로 그 모습이 하회(河回)’라는 마을 이름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201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지 벌써 20년이 흘렀다그동안 수많은 매체를 통해 하회 마을에 대해 보고 들었기에 더욱 궁금했다잠깐이었지만 선비의 마을하회에서 옛 역사를 잠시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낙동강이 감싸 흐르는 하회 마을에는 127개의 가옥에 하회 마을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조선시대로 타임슬립을 한 것 같다가도 곳곳에 위성 방송 송신기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면 현재로 돌아오곤 한다돌아다니며 낮은 담 사이로 슬쩍 슬쩍 집 구경을 했다옛 것을 보관하는 박물관이 아닌 옛 것과 지금이 뒤섞여 함께 흘러가는 삶이 있는 곳안동.

만휴정,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배경지인 만휴정복잡한 고민도 없어질 만큼 고요한 산길로 5분 정도 들어가면 가파른 암벽을 따라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존재 자체가 신비로운 장소랄까요즘은 SNS를 통해 알려져 안동에서 꼭 찍어야 할 인증샷 장소이기도 하다.
 
만휴정은 보백당 김계행이 연산군 6년에 지은 정자로 관직을 역임하다 연산군의 폭정에 벼슬을 버리고 내려와 만휴정을 지었다고 한다.

병산서원

구불구불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가면 병산서원이 나온다안동 시내에서 차로 40올해 2019년 세계유산
으로 지정된 병산서원은 안동 여행 필수 코스다.
 
화산 자락의 양쪽에는 하회 마을과 병산서원이 있다앞으로는 강이 흐르고 뒤로는 산이 있는 배산임수 명당이 이런 게 아닐까풍수지리는 잘 모르지만 딱 봐도 좋은 입지에 지어진 병산 서원.

복례문을 지나 처음으로 보이는 만대루그 옛날도 지금처럼 아름다웠을까오랜 나이를 나타내는 나뭇결이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자연과 조화를 이룬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당시 휴식과 강학의 복합 공간으로 쓰였던 만대루는 200여 명을 수용하고 남을 정도로 장대하다.

안동찜닭거리 전국 3대 빵집 맘모스제과,

현지에서 먹은 안동 찜닭은 양이 엄청 많고 칼칼하게 매콤한 맛이다서울에서 먹는 대 사이즈가 안동에서는 중 사이즈프랜차이즈와는 맛도 다르니 안동에서 안동 찜닭은 먹어보길 추천한다.


안동의 명물이자 전국 3대 빵집 랭킹에 빠지지 않는 빵집대표 빵인 크림치즈빵은 쫀득한 빵 안에 크림치즈가 꽉 차 있다가깝다면 정말 자주 방문하고 싶은 곳이다.
 
음식의 색감을 참 잘 담아낸다어딜 가든어떤 조명에서든 눈으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재료 각자의 색을 구현하고 먹음직스러운 요리 비주얼을 포착한다덕분에 안동에서 먹었던 음식들을 생생하게 담아올 수 있었다.

#안동 # 하회마을 #봉정사 #엘리자베스 여왕 #국보 제15호 #영산암 #전통 한옥 #극락전 #목조건축물 #유네스코 문화유산 #만세루 #고목나무 #하회탈/ 


영주, 부석사 [浮石寺],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鳳凰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의상이 창건한 사찰. 문화재자료.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 2018년 6월에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676년(문무왕 16) 2월에 의상(義湘)이 왕명으로 창건한 뒤 화엄종(華嚴宗)의 중심 사찰로 삼았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이 절의 창건설화가 수록되어 있다. 당나라로 불교를 배우기 위하여 신라를 떠난 의상은 상선(商船)을 타고 등주(登州) 해안에 도착하였는데, 그곳에서 어느 신도의 집에 며칠을 머무르게 되었다. 그 집의 딸 선묘(善妙)는 의상을 사모하여 결혼을 청하였으나, 의상은 오히려 선묘를 감화시켜 보리심(菩提心)을 발하게 하였다. 선묘는 그때 “영원히 스님의 제자가 되어 스님의 공부와 교화와 불사(佛事)를 성취하는 데 도움이 되어드리겠다.”는 원을 세웠다. 의상은 종남산(終南山)에 있는 지엄(智儼)을 찾아가서 화엄학을 공부하였다. 그 뒤 귀국하는 길에 의상은 다시 선묘의 집을 찾아 그 동안 베풀어준 편의에 감사를 표하고 뱃길이 바빠 곧바로 배에 올랐다.
선묘는 의상에게 전하고자 준비해 두었던 법복(法服)과 집기(什器) 등을 넣은 상자를 전하기도 전에 의상이 떠나버렸으므로, 급히 상자를 가지고 선창으로 달려갔으나 배는 이미 떠나가고 있었다. 선묘는 의상에게 공양하려는 지극한 정성으로 저만큼 떠나가는 배를 향해 기물상자를 던져 의상에게 전하고는, 다시 서원(誓願)을 세워 몸을 바다에 던져 의상이 탄 배를 보호하는 용이 되었다.
용으로 변한 선묘는 의상이 신라에 도착한 뒤에도 줄곧 옹호하고 다녔다. 의상이 화엄의 대교(大敎)를 펼 수 있는 땅을 찾아 봉황산에 이르렀으나 도둑의 무리 500명이 그 땅에 살고 있었다. 용은 커다란 바위로 변하여 공중에 떠서 도둑의 무리를 위협함으로써 그들을 모두 몰아내고 절을 창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의상은 용이 바위로 변하여서 절을 지을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해서 절 이름을 부석사로 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부석사의 무량수전(無量壽殿) 뒤에는 부석(浮石)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선묘용이 변화했던 바위라고 전한다.
창건 후 의상은 이 절에서 40일 동안의 법회를 열고 화엄의 일승십지(一乘十地)에 대하여 설법함으로써 이 땅에 화엄종을 정식으로 펼치게 되었다. 특히, 의상의 존호를 부석존자(浮石尊者)라고 칭하고 의상의 화엄종을 부석종(浮石宗)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모두 이 절과의 연관에서 생겨났다.
의상 이후의 신라 고승들 가운데 혜철(惠哲)이 이 절에서 출가하여 『화엄경』을 배우고 뒤에 동리산파(桐裏山派)를 세웠고, 무염(無染) 또한 이 절에서 석징(釋澄)으로부터 『화엄경』을 배웠으며, 절중(折中)도 이 절에서 장경(藏經)을 열람하여 깊은 뜻을 깨우쳤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이 절을 선달사(善達寺) 또는 흥교사(興敎寺)라고 하였는데, 선달이란 선돌의 음역으로서 부석(浮石)의 향음(鄕音)이 아닐까 하는 견해도 있다. 고려 정종 때의 결응(決凝)은 이 절에 머무르면서 대장경을 인사(印寫)하고, 절을 크게 중창한 뒤 1053년(문종 7)에 이 절에서 입적하였다. 1372년(공민왕 21)에는 원응국사(圓應國師)가 이 절의 주지로 임명되어 퇴락한 당우를 보수하고 많은 건물들을 다시 세웠다. 그 뒤 조선시대의 역사는 자세히 전하지 않으나 1580년(선조 13)에 사명당(泗溟堂)이 중건하였으며, 1746년(영조 22)에 화재로 인하여 추승당(秋僧堂)·만월당(滿月堂)·서별실(西別室)·만세루(萬歲樓)·범종각 등이 소실된 것을 그 뒤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국보 제18호인 부석사 무량수전과 국보 제19호인 부석사 조사당(浮石寺祖師堂)을 비롯하여, 조선시대 후기의 건물인 범종루(梵鐘樓)·원각전(圓覺殿)·안양루(安養樓)·선묘각(善妙閣)·응진전(應眞殿)·자인당(慈忍堂)·좌우요사(左右寮舍)·취현암(醉玄庵) 성보전시관 등이 있다. 이들 가운데 범종루와 안양루는 대표적인 누각이고, 원각전·응진전·자인당은 법당이며, 선묘각은 부석사의 창건연기와 인연이 있는 선묘의 영정을 봉안하여둔 곳이다.
범종루는 사찰의 중문(中門)에 해당하며, 본전을 향하는 입구 쪽에서는 팔작지붕을 하고 반대방향은 맞배지붕이므로 일반 사찰건축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특이성을 보이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4칸의 2층 누각으로서, 누각에는 ‘鳳凰山浮石寺(봉황산부석사)’라는 편액이 있을 뿐 범종은 없다.
안양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집으로서, 누각 안에는 부석사의 현판기문을 모아두었는데, 그 안에는 사명당이 쓴 「안양루중창기」가 있다. 또, 취현암은 원래 조사당 옆에 있었던 부석사의 선원(禪院)이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이전되어 현재는 주지실과 종무소(宗務所)로 사용되고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국보 제17호인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과 국보 제45호인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국보 제46호인 영주 부석사 조사당벽화, 보물 제249호인 영주 부석사 삼층석탑, 보물 제255호인 영주 부석사 당간지주, 보물 제735호인 영주 부석사 고려목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7호인 영주 부석사 원융국사비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원융국사비는 절의 동쪽 500m 지점에 위치하며 1054년에 건립한 것이다. 그 외에 삼층석탑 두기와 동쪽 언덕에는 1기의 고려 말 부도를 포함한 10여 기의 부도가 있다. 이 밖에도 이 절에는 석룡(石龍)을 비롯하여 대석단(大石壇)·선묘정(善妙井)·녹유전(綠釉塼)·선비화(禪扉花)·석조(石槽)·맷돌 등이 있다. 석룡은 절의 창건과 관련된 것으로 현재 무량수전 밑에 묻혀 있는데, 머리 부분은 아미타불상 바로 밑에서부터 시작되며, 꼬리 부분은 석등 아래에 묻혀 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이 절을 개수할 때 이 거대한 석룡의 일부가 묻혀 있는 것이 발견되었으며, 자연적인 용의 비늘 모습이 있었다고 한다.
선묘정은 절의 동쪽에 있는데, 가뭄이 있을 때는 기우제를 드렸다고 한다. 대석단은 신라시대에 축조한 것으로 절의 입구에 있다. 거대한 축석(築石)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면석(面石)을 섞어 쌓은 것이 특징이다. 이 석단은 3단으로서 극락세계의 구품연화대(九品蓮花臺)를 상징한다는 설이 있으나 명확한 근거는 없다. 무량수전 앞에 안양루를 오르는 석단이 2단으로 조성되었으므로, 대석단과 합하여 상·중·하의 셋으로 보는 가람 경영방법의 하나로 볼 수도 있다. 녹유전은 가로와 세로가 14㎝의 정방형 기와로서 두께는 7㎝이며, 벽돌 표면에 0.3㎜ 정도의 녹유를 발라 광택을 내게 한 신라시대의 유품이다. 이것은 『아미타경』에 극락세계의 땅이 유리로 되어 있다고 한 것에 입각하여 무량수전의 바닥에 깔았던 것이다.
선비화는 의상이 사용했던 지팡이를 꽂아 놓았더니 살아난 것이라 하는데, 『택리지(擇里志)』에 의하면 의상이 죽을 때 “내가 여기를 떠난 뒤 이 지팡이에서 반드시 가지와 잎이 날 것이다. 이 나무가 말라죽지 않으면 내가 죽지 않으리라.” 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무량수전(榮州浮石寺無量壽殿),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에 있는 고려시대 목조 건물로 아미타불이 봉안된 사찰건물.   불전. 국보.
국가지정문화재 관람요금/ 어른 2000원 단체 1800원/ 중.고 군인 1500원 단체 1300원/ 초딩 1000원 단체 800원/ 단체 30명이상./ 65세이상, 장애인, 국가유공자, 만6세이하 무료./ (주차비 1000cc 이하 2000원, 이상 3000원)
​청왕문에 이르면 유독 많은 계단이 108개라고 합니다. 계단을 오르면 허리와 고게를 살짝 숙여지는데 이는 부처님을 만나러 올때 겸손한 마음과 자세를 의미함이라네요. 분야건축유형문화재유적시대 고려지정기관 문화재청지정 부류국보지정 번호제18호 부석사 무량수전은 고려시대 목조 건물로서 내부에 무량수불(無量壽佛)주 01)인 아미타불(국보 제45호)을 봉안하고 있다. 정면 가운데 칸에 걸린 편액은 고려 공민왕이 썼다는 기록이 있다. 공민왕이 홍건적의 침입 때 안동으로 피난 왔다가 귀경길에 부석사에 들러 쓴 것이라고 전한다. 한편, 부석사 무량수전 서쪽에는 부석(浮石, 일명 뜬바위)이 있는데 이 바위는 의상대사를 흠모하던 당나라 선묘(善妙)낭자가 변한 것이라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역사적 변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아 부석사를 창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봉황산부석사개연기(鳳凰山浮石寺改椽記)」 등에는 창건연대를 676년(신라 문무왕 16)이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창건 후 부석사는 신라 말 또는 고려 초기에 병화로 소실되었다고 전한다. 경내에 있는 대석단(大石壇)과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제17호)이 9세기 후반에 제작되었음을 볼 때 비슷한 시기에 대규모 불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무량수전 동쪽 언덕 위에 있는 「원융국사비문(圓融國師碑文)」에는 원융국사(圓融國師)가 부석사에 머물면서 부석사를 중창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원융국사는 1041년(정종 7)에 부석사로 들어와 화엄종통(華嚴宗統)을 이어받았고 입적할 때까지 부석사에 머물렀다.
이후 무량수전은 1358년(공민왕 7) 왜구의 침략으로 불에 타 큰 피해를 입었고, 1376년(우왕 2) 진각국사(眞覺國師) 원응(圓應)이 고쳐 지었다. 1611년(광해군 3)에는 보가 비바람에 부러지는 피해를 입었는데 이듬해 중수하면서 서까래도 함께 교체하고 단청도 다시 하였다. 「무량수전불상개금기(無量壽殿佛像改金記)」와 「무량수전미타존상개금기(無量壽殿彌陀尊像改金記)」에 따르면 1723년(경종 3)과 1767년(영조 43)에 각각 본존불의 금칠을 다시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인 1919년에는 조사당과 함께 해체수리공사가 이루어졌다. 1969년과 1999년에는 기와를 교체하였으며, 2001년에 주변 정비와 함께 정밀실측조사가 실시되었다.
부석사는 경사지를 따라 여러 단의 석단(石壇) 위에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범종각을 지나면 진입축이 꺾이면서 높은 축대 위에 안양루(安養樓)와 무량수전이 서 있다. 안양루 밑을 지나 계단을 오르는 과정에서 무량수전은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낸다. 무량수전의 누하진입(樓下進入)방식은 공간의 닫힘과 열림에 의해 호기심을 유도하고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무량수전 앞마당에 올라 무량수전을 뒤로하고 바라보는 소백산맥의 풍경도 아름답다.
무량수전은 지대석, 면석, 갑석 등을 잘 다듬어 조성한 가구식 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 초석은 원형 주좌를 가공한 초석을 사용하였고 그 위에 배흘림이 뚜렷한 원기둥을 세웠다. 공포는 기둥 위에만 짜여 있으며 바깥에 출목(出目)이 있다. 주두는 하부가 곡선형이며 굽받침이 있다. 주두 위에는 첨차 하부에 연화두형(蓮花頭形: 일명 쌍S자형 곡선)이 조각된 소첨차와 대첨차를 반복하여 사용하였다.
가구 구조(架構構造)는 2고주 9량(梁) 형식이다. 툇보는 고주(高柱, 높은 기둥)의 머리부분에 결구되어 헛첨차가 받치고 있으며 건물 밖으로 빠져나오면서 가늘어진다. 툇보 머리는 소첨차와 십(十)자로 짜이면서 짧은 장여와 외목도리를 받도록 했다. 고주 위에는 공포를 짜서 충방(衝枋)을 결구하고 그 위에 초공(草工)을 놓은 후 대들보를 걸었다. 대들보 위에는 충방과 초공을 놓고 종보를 걸었으며, 소슬합장이 종보 위에서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추녀 하부에는 활주를 세워 받쳤다. 천장은 상부의 부재들을 모두 노출시킨 연등천장이다. 건물 내부 바닥에는 전돌(塼石)을 깔고, 불상 위에는 닫집(唐家)을 설치하여 장엄하였다. 무량수전은 아미타불을 모시는 전각이지만 내부에 모신 불상은 석가모니불의 수인(手印)인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어 불상의 종류에 대한 논란도 있다,
일반적인 불전은 건물 중심에 불단을 놓고 불상을 건물의 향(向)과 같게 한다. 그러나 부석사 무량수전은 불단을 건물 서쪽에 치우쳐 배치하고 불상이 동쪽을 향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내부 바닥에는 본래 녹유전(유약을 바른 전돌)을 깔았었다. 이것은 아미타불이 서방(西方) 극락세계에 있고 극락세계는 바닥이 유리로 만들어졌다고 하는 불경의 내용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무량수전과 같은 평면 구성은 건물의 깊이를 확보하고 불단으로 향하는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구조적인 특징은 보와 도리 등 주요 가구재들을 단면 크기가 작고 곧은 부재를 사용하면서 뜬창방·뜬장여·충방·초공·귀잡이보 등 여러 부재들을 사용하여 보강한 것이다. 특히 보의 단면은 항아리 모양을 하고 있어 오래된 건축 수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의의 와 평가
부석사 무량수전은 배흘림기둥, 공포의 구성 형식, 가구재의 구성 등에서 주심포 건물의 기본 수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비슷한 시기의 건축물과 비교할 때 장식적인 요소가 적으면서 목조 건축의 형태미와 비례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고려시대 건물 중 하나로서 안동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 예산 수덕사 대웅전(국보 제49호)과 함께 고려시대 불전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건축물이다.
가을 단풍!!!

영주 부석사,
고려목판,

고려목판, 高麗木板,
榮州 浮石寺 高麗木板. 고려 후기인 13~14세기에 제작된 삼본화엄경(三本華嚴經)의 불교 목판. 총 3종 634판. 현재 경상북도 영주시의 부석사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보물 제735호로 지정되어 있다. 크기 24.3cm×45cm, 634판 1,250장

고려 후기, 1200~1300년대에 만들어진 한국의 불경 목판들로, 보물 제735-1호인 대방광불화엄경 진본(大方廣佛華嚴經晋本) 239판 472장, 보물 제735-2호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大方廣佛華嚴經周本) 273판 538장, 보물 제735-3호인 대방광불화엄경정 정원본(大方廣佛華嚴經貞元本) 122판 240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은 사라진 거란본(契丹本) 대장경을 저본(底本)으로 하여 주조된 것으로, 거란장경이 우리나라에 1063년, 1099년, 1107년에 세 차례에 걸쳐 수입되었는데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현재 거란인들의 작품은 거의 완전히 멸실된 상태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거란본계 세자무주의 34자본으로 제작한 이 목판은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같은 고려시대 목판인 합천 해인사 고려목판(국보 제206호, 보물 제734호)과 함께 1982년 5월 22일에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되었다.
영주 부석사 고려목판(榮州 浮石寺 高麗木板)은 부석사에 있는『화엄경』정원본 40권, 진본 60권, 주본 80권 등 3종의 대방광불화엄경을 나무판에 새긴 것이다.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화엄종의 근본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경전이다.

정원본(貞元本)은 반야가 번역한 화엄경 40권을 가리키고, 진본(晋本)은 불타발타라가 번역한 화엄경 60권을, 주본(周本)은 실차난타가 번역한 화엄경 80권을 가리킨다. 이 판은 모두 합쳐 634판이며 한 줄에 34자씩 글자를 배열한 특이한 형식이다.

13∼14세기경 거란에서 불경을 수입하여 나무판에 다시 새긴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전해지는 유일한 거란본 계열의 각판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우리나라 화엄종의 창시자인 의상대사가 창건하여 화엄사상을 발전시켜 나간 부석사에 소장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더욱 크다.
출처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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