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11일 토요일

"장발이라고, 침 뱉었다고 고성방가 등 잡아가"…삼청교육대 피해자들이 전한 진실, 2018년 대법원, 법적 근거 ’계엄포고’ 위헌 판결,“군홧발에 지옥 같은 시간”…“삼청교육대 4만 명 전원 구제”이유도 모른채 끌려가…구타에 성추행까지,,,

"장발이라고, 침 뱉었다고 고성방가 등 잡아가"…삼청교육대 피해자들이 전한 진실,  2018년 대법원, 법적 근거 ’계엄포고’ 위헌 판결,“군홧발에 지옥 같은 시간”…“삼청교육대 4만 명 전원 구제”이유도 모른채 끌려가…구타에 성추행까지,,,

"장발이라고, 침 뱉었다고 고성방가 등 잡아가"…삼청교육대 피해자들이 전한 진실,  

"삼청교육대 입소 모두 피해자" 첫 판단...국가 상대 줄소송 전망,

진실화해위원회 "삼청교육, 대규모 인권침해사건",

"위법한 공권력 행사" 명시…국가 기관 첫 인정,

2018년 대법원, 법적 근거 ’계엄포고’ 위헌 판결,

“군홧발에 지옥 같은 시간”…“삼청교육대 4만 명 전원 구제”

이유도 모른채 끌려가…구타에 성추행까지,

"하루도 맞지 않고 지나간 날이 없었습니다.
6만여 명 검거…범죄 무관한 시민들도 상당수,
'삼청교육피해자법' 제정했지만 소수만 피해 보상,
"입소자 전원이 피해자, 정부가 구제해야"
삼청교육대의 일과는 어땠을까?.
식사는 어땠을까?.

 

"장발이라고, 침 뱉었다고 고성방가 등 잡아가"…삼청교육대 피해자들이 전한 진실,  

전두환 정권 시절 국가에 의한 대표적인 인권 유린 사건인 삼청교육대 피해들의 삶이 재조명됐다.

지난 9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1980 불량배 소탕 작전’이라는 부제로 43년 전 그날을 조명했다.

18살 00와 24살 00 씨, 그리고 23세 00 씨는 제각각의 이유로 어딘가로 끌려갔다.

누군가와 시비가 붙었다거나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침을 뱉었다거나 팔에 문신이 있다는 것이 바로 그 이유였다.

당시 삼청교육대에 수용된 인원은 무려 4만 명에 달했는데 그중 무전과가 40%였다.
 
이들은 매일매일 유격훈련부터 목봉 체조 등 혹독한 훈련을 견뎌야 했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아야만 했다.


이렇게 인간답지 못한 대우를 받으며 그곳에서 갖가지 이유로 사망자도 발생했는데 공식적으로 확인된 인원만 54명에 달했다.

이렇게 돌아온 이들은 후유증이 생기거나 삼청교육대 출신이라는 낙인이 찍혀 일상으로도 돌아갈 수 없었다.

세월이 흘러 2004년 삼청교육 피해보상법이 제정됐지만 보상 신청은 쉽지 않았다.
 
가혹 행위로 숨지거나 다친 사람만 피해자로 인정해주는 것도 큰 벽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용자 4만여 명 가운데 피해 보상을 받은 사람은 3600여 명에 불과했다.

이에 2기 진실화해위원회(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 7일 삼청교육대 사건을 국가가 위법한 공권력을 행사한 대규모 인권침해로 판단하고, 입소자 모두에 대해 피해 구제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앞서 2018년 대법원이 삼청교육의 근거였던 계엄포고 13호를 위헌이자 무효라고 결정한 만큼, 강제 입소 자체를 위법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진실화해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삼청교육 입소자 모두가 법적 ‘피해자’로 인정된다면 4만여 명의 입소자들과 가족은 앞으로 국가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적극적으로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삼청교육대 입소 모두 피해자" 첫 판단...국가 상대 줄소송 전망,

진실화해위원회 "삼청교육, 대규모 인권침해사건",

"위법한 공권력 행사" 명시…국가 기관 첫 인정,

2018년 대법원, 법적 근거 ’계엄포고’ 위헌 판결,

19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 불량배를 소탕하겠다며 만든 삼청교육대가 그 자체로 위법이라는 국가 기관의 판단이 처음으로 나왔습니다.

삼청교육대의 인권 침해 사실을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어서 관련 소송도 잇따를 것으로 보이는데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취재기자 연결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삼청교육 피해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는데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요?

네. 국가 기관인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1980년대 발생한 삼청교육 사건을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발생한 대규모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공식적으로 정의했습니다.
 
관련 동영상 = https://youtu.be/Db1FYUmOTQE

전두환 정권이 만든 삼청교육대가 그 자체로 위법이었다는 걸 국가 기관이 처음으로 밝힌 겁니다.

정부는 그동안 삼청교육 자체가 국가의 인권 침해였다는 걸 제대로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

 지난 2018년 말 대법원이 삼청교육의 법적 근거인 '계엄포고 13호'를 위법으로 판단하긴 했지만 사법부의 결정이라 가해자인 국가의 공식 인정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런 만큼 국가 기관에 속하는 진실화해위원회가 삼청교육대를 인권침해로 규정한 이번 결정은 향후 상당한 파장이 예상됩니다.

삼청교육대는 전두환 정권 시절 악명 높은 수용시설로 알려졌는데 당시 강제 입소한 피해자 규모만 4만여 명이라고요?

그렇습니다.

1980년 8월 삼청교육대 출범 당시 전두환 정권은 불량배를 소탕하려는 목적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시민이 대다수였습니다.

거리에 침을 뱉거나 머리가 길다는 이유로 젊은 청년들이 잡혀가 사실상 강제 수용소 생활을 해야 했는데요.

이렇게 붙잡혀 1981년 1월까지 군부대 강제 노역에 동원되거나 인권 침해를 당한 시민은 4만여 명 정도로 추정됩니다.

가혹 행위를 견디지 못해 사망한 피해자만 최소 421명에 달합니다.

그럼 당시 피해자들은 그동안 손해배상을 받지 못했나요?

지난 2004년 '삼청교육 피해자법'이 만들어지긴 했습니다.

그러나 강제 입소자 4만여 명 가운데 피해자로 인정을 받은 경우는 고작 3천6백여 명에 불과했습니다.

법 제정 당시 '삼청교육 피해자'의 법적 정의를 '삼청교육에 의해 다치거나 사망한 자'로만 제한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진실화해위원회는 이번에 삼청교육대에 강제 입소한 사람 모두를 인권침해 피해자로 봐야 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러면서 '삼청교육 피해자법'에 대해서도 개정해야 한다고 권고한 상태라 상당한 파장이 예상됩니다.

파장이라고 하면 국가를 대상으로 한 손해배상 청구가 줄 이을 것이란 의미인가요?

그렇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삼청교육 입소자 모두가 법적 '피해자'로 인정된다면 4만여 명의 입소자들과 가족은 앞으로 국가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적극적으로 제기할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로썬 작년 11월 삼청교육 피해자와 가족 22명이 국가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청구를 내고 법원의 심사가 진행 중인 기록이 있습니다.

이들에 더해 다른 피해자들이 집단 소송에 동참하기 시작하면 국가의 손해배상 규모는 한층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40여 년간 고통을 호소해온 삼청교육 피해자와 가족들이 이번에는 국가로부터 제대로 된 명예 회복과 배상을 받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립니다.
 
 
 

“군홧발에 지옥 같은 시간”…“삼청교육대 4만 명 전원 구제”

A 씨는 또래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구두 닦는 일로 돈벌이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와 사소한 말다툼을 하다 고성이 몇 차례 오갔는데 이를 본 한 중년 남성이 A 씨를 경찰서로 끌고 갔습니다.
삼청교육대 피해자 A 씨 의 인터뷰

이유도 모른채 끌려가…구타에 성추행까지,

A 씨는 폭력을 휘두른 것도 아니고 말다툼했을 뿐이라고 항변했습니다.
 
그런 A 씨에게 돌아온 건 경찰의 매질이었습니다.
 
흠씬 두들겨 맞고 있는 A 씨 주변엔 이유도 모른 채 끌려온 사람들 천지였습니다.

경찰서에서 하루를 보낸 뒤 호승줄에 묶인 채 버스에 몸을 실은 A 씨는 강원도 철원 삼청교육대에 도착했습니다.
 
소총을 든 군인들에 둘러싸인 A 씨와 일행들은 그날부터 군홧발에 걷어차이며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당시 A 씨 나이, 고작 18살이었습니다.
 
"하루도 맞지 않고 지나간 날이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잠을 잘 때 코를 곤다고 맞았고, 돌아누워 잔다는 이유로 맞기도 했습니다.
 
한겨울 실외에서 속옷만 입힌 채 세워놓고 찬물을 끼얹었는데 이때 움직이면 주먹이 날아왔습니다.
 
어린 입소자들은 조교들로부터 성추행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 삼청교육대 피해자 A 씨-

'12.12' 군사 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군부세력은 집권 초기 사회 풍토를 해치는 범죄자 등을 소탕하겠다며 군 부대에 삼청교육대를 설치했습니다.
 
불량배와 범죄자들을 순화 교육시켜 사회로 돌려보낸다는 명분이었습니다.


 
6만여 명 검거…범죄 무관한 시민들도 상당수,

신군부가 내세운 검거 목표는 2만 명. 하지만 실제로는 6만여 명이 영장도 없이 검거됐습니다.
 
삼청교육대 강제 입소자는 4만 명에 달했습니다.

이들 가운데는 군부 정권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길거리에서 싸움했다는 이유 등으로 잡혀 온 시민들도 상당수였습니다.
 
당시 경찰서마다 배정된 검거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범죄와 무관한 시민들까지 무분별하게 잡아들인 것입니다.


1988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삼청교육대 피해자들에게 보상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실제 이뤄지진 않았습니다.


 
'삼청교육피해자법' 제정했지만 소수만 피해 보상,

2004년엔 '삼청교육피해자법'이 제정돼 피해 보상이 이뤄지는 듯했지만, 삼청교육의 피해자 범위를 가혹 행위를 당해 숨지거나 다친 사람들로 제한하면서 3,650명만 보상을 받는 데 그쳤습니다.

2018년 대법원은 삼청교육의 법적 근거였던 계엄포고 제13호는 해제 또는 실효되기 이전부터 위헌·무효라고 결정함에 따라 삼청교육은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공식 확인됐습니다.
 
강제 입소 자체가 위헌적이며 위법하다는 판단이었던 것입니다.
 

 
"입소자 전원이 피해자, 정부가 구제해야"

대법원 결정 이후 삼청교육 사건 재조사에 착수한 진실화해위원회는 삼청교육대 입소자 전원을 피해자로 규정하고, 정부가 이들에 대한 적절한 피해 구제에 나서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또, 현재까지 극심한 신체·정신적 후유증을 호소하고 있는 삼청교육 피해자에 대한 트라우마 치유센터 설립 등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권고도 내놨습니다.

이재승 진실화해위원 상임위원,

진실화해위원회 이재승 상임위원은 "진실화해위원회의 이번 결정에 따라 삼청교육 피해자는 약 4만 여명으로 늘었다"면서 "사회적 낙인이 찍힐까 피해 사실을 숨겨 온 피해자들이 실질적인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삼청교육법 개정 등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삼청교육대=전두환 명분…피해자들 "평생 암울하게 살아"
 
1980년대 삼청교육대에 억울하게 끌려갔던 피해자들이 그곳에서 겪은 비인간적인 상황들과 평생 암울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털어놨다.

9일 방송된 SBS 예능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삼청교육대의 가혹행위와 피해자들의 호소를 들여다봤다.

이날 삼청교육대의 피해자였던 이승호(가명) 씨의 인터뷰가 공개됐다.
 
이 씨는 "주변에서 굳이 왜 인터뷰를 하냐고 한다.
사진 sbs 겹쳐,
 
아무리 사회가 좋아졌어도 안 좋은 인식을 갖고 있는데, 굳이 할 필요가 있냐고. 지금 아내하고 우리 아이들은 모른다"며 감춰온 이야기를 털어놨다.
 
그는 "아직까지 인식이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더라. 43년을 안 바뀌었는데 그렇겠냐"고 호소했다.

때는 1980년 여름, 서울. 18살이던 이00는 여름방학에 친구들과 근처 식당에 들어가 초등학교 국어책을 발견했다.
 
반가워 책을 읽던 00 씨에게 누군가 "조용히 안 하냐"며 소리쳤다고. 순식간에 몸싸움으로 상황은 번졌고 경찰이 출동했다.

00 씨는 결국 파출소에 가게 됐다.
 
다행히 다친 사람도, 파손된 물건도 없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합의나 훈방 조치가 아니었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경찰서로 넘기더니 유치장에 집어넣고, 또 검찰청까지 불려가더니 조사를 받고 구치소에 갇혔다.
 
00와 친구들, 상대 일행까지 모두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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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후 어느 날, 승호와 일행들은 200여명 사람들과 함께 의문의 버스에 올라야 했다.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얘기를 안 해줘 행선지도 모른 채 무작정 실려갔다.

버스가 멈춘 건 검은 산 속. 주변에 건물 한 채 없이 바닥에선 흙먼지가 뿌옇고, 이중 삼충 철조망이 쳐진 곳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조교들이 몽둥이로 실려온 이들을 마구 폭행했고, 잠시 후엔 공포탄까지 터졌다.
 
도망가면 사살을 하겠다는 위협이 있었던 것.

끌려온 사람들도 각양각색이었다.
 
손주 볼 노인부터 앳돼 보이는 소년까지. 그곳은 다름아닌 삼청교육대였다.

1980년 8월 4일, 사회악 일소 특별조치라는 것이 발표됐다.
 
한마디로 불량배 소탕 작전. 불량배들을 삼청교육대에 보내 새사람으로 만들겠다는 것.

해당 문서에 적힌 '소탕 대상'은 그 기준이 매우 모호했다.
 
불건전한 생활 영위자, 재범 우려자 등 정확한 기준점이 없었다.
 
환갑잔치 중 싸움이 나서 구경을 한 사람, 외상값 있던 사람, 술을 마시고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른 사람. 삼청교육대 소탕 대상에 따르면 셋 다 '불량배'에 해당했다는 사실에 이날 패널로 등장한 임지연, 윤균상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형과 같이 사진관을 운영하던 야구광 청년 박이수 씨,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야구장 입장 전 줄을 서있던 중 갑자기 끌려갔다.
 
그의 형 박광수 씨는 "야구표를 들고 대기하던 중에, 사람들 많은데 침을 뱉었단 이유로 바로 끌려갔다"고 증언했다.
 
그저 이유를 만들어 붙여 마구 잡아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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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말도 안 되는 케이스도 있었다.
 
당시 23살이던 한일영은 동네 친구들과 한강으로 물놀이를 갔다.
 
한창 물놀이를 하던 중 누군가 나와보라며 시비를 걸어서 봤더니 경찰이었다.
 
바로 파출소로 연행됐다.

알고보니 한일영의 몸엔 문신이 있었다고. 그는 "정확히 모르고 추정만 할 뿐"이라 말했다.
 
삼청교육대에 잡혀갈 정도면 어떤 문신이었을까.
 
그 문신은 바로 손목에 자그맣게 적혀있는 '삶'이란 것에 불과했다.

한일영 씨는 "난 나쁜 쪽으로 로또 두 번 맞았다 생각이 든 게, 10대 때는 선감학원으로 20대 땐 삼청교육대로, 두 가지 다 경험하게 된 것"이라 털어놨다.

야구장서 침 뱉었다고, 작은 문신 있다고, 식당서 다퉜다고.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소시민들이 체포영장도, 항변할 기회도 없이 삼청교육대로 끌려갔던 건 당시 경찰들의 할당량 때문이었다.

당시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인원은 무려 4만 명. 그중 전과가 하나도 없던 인원은 40%에 달했다.
 
최고령 73세, 최연소는 14살. 중학생도 17명, 여성도 319명 포함돼 있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끌려간 것.


 
삼청교육대의 일과는 어땠을까?.
 
오전 6시부터 밤 10시까지 총 16시간 동안 연병장 훈련을 반복하고 장비 손질 등 일과를 따라야 했다고. 오전 4시간, 오후 4시간 총 8시간의 훈련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훈련은 목봉체조였다고. 전봇대만한 나무를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하는 훈련이었다.
 
목봉의 무게는 최대 300kg이었다고. 보통 10명이 합을 맞춰 훈련하는데, 합이 한 사람이라도 안 맞으면 무게가 몇 배로 더 무겁게 느껴지고 당연히 떨어지게 돼있었다고. 그럼 바로 매타작을 당하게 되는 것.

그렇게 매타작을 몇 번 당하면 겨우 균형이 맞춰지고, 그런 다음엔 목봉에 조교들 2~3명씩 올라탔다.
 
조교들이 땅에 떨어지면 또 매타작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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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는 어땠을까?.
먹기 전에는 "돼지보다 못하면 돼지고기를 먹지 말자, 소보다 못하면 소고기를 먹지 말자"고 복명복창해야 했다고. 그렇게 밥을 주고선 10초만에 밥을 먹으라고 했다.
 
당사자는 "먹는 게 아니라 넣는 것"이라 토로했다.
 
정상 식사에 비교하면 3분의 1 정도 양에 씹을 것조차 없었다고.

장도연은 "적게 주는 이유가 뭔지 아냐"며 그 이유가 적힌 문서를 읽었다.
 
공복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육체적 반발과 저항력을 감소시키고, 질서 유지에 필요한 복종심을 키우고, 본인의 과오에 대한 회개 속도를 증가시키겠다는 이유였다.

훈련 중 조교들 눈에 거슬렸다면 그나마도 안 줬다고. 한00 씨는 잘못했다며 먹을 것을 달라 호소했고, 사정사정했더니 조교가 한 쪽으로 데려갔다고 전했다.

한 씨는 "우린 배고파서 남길 것도 없는데 조교들은 막 남기고 그랬다"며 주방 짬통 앞에 자신을 데려갔다고 회상했다.
 
그는 "먹다 남긴 거, 거기 구더기가 바글바글했다,
 
여름이다보니. 먹든지, 말든지, 하고 발로 찼다"고 설명했다.

그는 "살기 위해 구더기가 있든 말든 먹게 됐다.
 
그거라도 안 먹으면 죽을 것 같더라"고 토로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더 최악의 상황은, 화장실도 단체로 조교가 보는 앞에서 볼 일을 봐야 했던 것. 또 야외 웅덩이를 빙 둘러서고 소변을 보게 했다고. 그 웅덩이는 '지옥탕'이라 불렸다는데. 오물 웅덩이 속에 개구리를 여러 마리 집어넣은 다음 개구리를 잡으라고 시켰다는 것.
 
물에 들어가면 잠수를 시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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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장서 침을 뱉었다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던 박00씨, 어느날 형 박00 씨는 경찰로부터 전화를 받아 00 씨를 데려왔다.
 
하지만 멀쩡하던 동생 00 씨는 완전히 정신이 나가있었다.
 
가족을 못 알아보는 건 물론, 밥을 먹다가도 시도때도 없이 비명을 지르고 벽에 머리를 부딪치고, 자해하고, 툭 하면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고.

어쩔 수 없이 00 씨는 10여년 후 요양원으로 옮겨갔고. 국어책 때문에 끌려갔던 00 씨도 4주 후 집으로 돌아왔더니 동네에서 자신을 보는 분위기가 달라져있었고 다니던 학교에서도 이미 퇴학 처리가 돼있었다.

또 식당서 시비 붙어 고등학생 때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던 00 씨는 "내가 피해를 당했는데, 현장에 서 있었단 이유만으로 고등학교 퇴학이 됐다.
 
학력이 중졸 아니냐. 어디 가서 뭘 해먹고 사냐.
 
인생이 그냥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세상을 원망하며 살고, 삼청교육대 갔다온 뒤 제가 엇나갔다.
 
어떻게 감당할 수가 없더라. 집도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던 중, 승호 씨의 어머니가 아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마음 아파하시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셨다.
 
나라를 원망하지 않고 자신이 자식을 못 구한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그렇게 됐던 것.

승호 씨는 "저 때문에 돌아가셨다.
 
할 말이 없고 미안함 뿐"이라며, 그때부터 어머니께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이를 듣던 장도연은 "가해자가 따로 있는데 피해자들끼리 죄책감을 느끼는 이런 게 너무 화가 난다"며 분노했다.

한편 일영 씨는 4주간의 순화교육 후 근로봉사까지 하게 됐다.
 
무려 6개월 동안 험한 산 속에서 진지 구축, 도로 개간 등 혹독한 작업을 시켰던 것.
 
이 근로봉사로 강원도의 지형이 바뀌었단 말이 있을 정도였다고.

결국 일영 씨는 두 번째로 탈출을 감행했다.
 
하지만 삼청교육대는 철조망으로 둘러싸였고 잘못했다간 지뢰를 밟을 수도 있는 상황. 00 씨는 지뢰가 없는 곳을 알게 된 후부터 숲을 기어다녔고, 기차 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일영 씨는 기차에 탑승했지만 수상한 행색을 숨기려 화장실로 숨었다.
 
기차는 천천히 출발했다.
 
그런데 기차 복도를 걸어오는 군홧발 소리가 들려왔고, 헌병은 문을 열더니 수갑을 채웠다.

일영 씨는 돌아가면 죽는단 생각에 그 자리서 혀를 깨물었다.
 
탈출에 실패한 일영 씨는 곧바로 군사재판에 회부됐다.
 
00 씨는 삼청교육대가 아닌 감옥에 가는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난 죄가 없었으니까.
 
군사재판이 내겐 희망이고 구세주나 마찬가지였다"고 했지만 그는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1년 후, 00 씨는 출소 후 가장 먼저 '삶'이란 문신을 지우러 갔다.
 
굵은 소금으로 살갗이 벗거져 피가 흐르도록 미친듯이 문질렀다.
 
삶의 희망을 가지려 새겼던 단 한 글자였는데, 지워내야만 했던 것.

00 씨는 그 후 어렵게 공장에 취직했지만 또 경찰이 찾아왔다.
 
동네에 무슨 일만 생기면 용의선상에 무조건 올랐다고. 경찰이 삼청교육대 정보를 전산화해 10년 가까이 수사에 활용해온 것.
 
00 씨는 "이사를 가도 따라붙더라"며 삼청교육대는 지울 수 없는 낙인이 됐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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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교육대가 만들어진 이유는 더 충격을 안겼다.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기 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 위원장으로 있었고, 대통령이 되기 위한 명분이 없었던 것.

그렇게 전두환은 '정의사회구현'이란 플랜카드를 붙이고 전국의 불량배를 소탕하겠다고 하며 삼청교육대를 탄생시켰다.
 
곧바로 대대적으로 홍보를 시작했고, 삼청교육대 덕에 사회가 개선됐다는 기사가 쏟아졌다고.

삼청교육대 안에서의 가혹행위는 모두 빼고 건전한 교육을 한다는 영상을 만들어 공개했고, 그걸 본 국민들은 "깡패들은 삼청교육대로 보내댜 한다.
 
역시 전두환 박력있다"며, 실상도 모른 채 좋게 판단했던 것.

이후 삼청교육대 피해자들은 직장 해고, 가정 파탄 등 세월이 지난 후로도 괴로움을 겪어야 했다.
 
이후 1989년 5공 청문회에서 전두환은 "유감된 일"이라는 한마디만 남겼단 사실이 공개돼 분노를 안겼다.

삼청교육대 후유증으로 인한 사망자 397명, 정신 장애 등 상이자 2768명. 그 후로도 끔찍한 삶의 상흔을 남긴 삼청교육대의 창시자는 '유감'이란 한마디만으로 죄악을 갈음한 것. 피해자 00 씨는 "43년이 지났는데 항상 수면제를 먹고, 쫓기는 꿈을 꾼다"고 털어놨다.

야구장서 끌려 간 00 씨는 아직도 요양원 생활을 하고 있는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청교육대에 가기 전 00 씨의 모습은 건장하고 밝은 모습으로 안타까움을 더했다.
 
요양원에서 형 00 씨와 영상 통화를 한 00 씨는 아직까지도 자신의 이름, 형의 존재, 자신의 나이조차 모르는 모습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삶'이란 시를 좋아했던 00 씨. 하루는 딸이 "우리 왜 지금 이렇게 가난하냐"고 했다고. 하지만 일영 씨는 도저히 삼청교육대 얘기를 꺼낼 수 없었다고 전했다.
 
그런 그에게 아내는 "당신이 죄인이 아니잖냐. 피해자는 당신이고 잘못한 건 국가"라고 말해줬고, 그 덕에 용기를 내게 됐다고.

이후 00 씨는 재심을 청구했고 40여년 만에 무죄 선고를 받았다.
 00 씨는 "저를 위해서 인권단체 등 많은 분들이 와주셨다.
 
전부 만세 해주시고, 거기서 뒤돌아 나올 때 울음밖에 안 나오더라"고 말했다.
 
이어 "평생 암울하게 살아왔다.
 
20살 청년 때 무죄판결이 나왔다 좀 더 나은 삶을 살지 않았을까"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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